brunch

매거진 담다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만추 Jun 22. 2021

[이 시국에 장막 희곡] 여행지에서 온 편지(2)

노만추의 Write with me (9)


B에게.


편지 잘 받았어. 읽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여기 온 지 벌써 5년이 넘었다고? 체감상으론 1년 겨우 넘은 것 같은데, 시간 참 빠르네.


집은 어때? 엄마는 아직도 산딸기 따러 다녀?

여행을 무슨 몇 년씩이나 하냐고 소리치는 엄마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어제는 장 보러 가다가 길에서 새로운 여행객을 하나 발견했어.

말 그대로 발견이야. 인적 드문 길에 쓰러져 있더라고.

반시뱀에 물린 건가 싶어서 냅다 들쳐 없고 뛰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더라.


숙소로 돌아갈 수 있겠냐고,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려주겠다니까

이 사람이 지도라면서 종이를 한 장 꺼내는데, 너가 그걸 직접 봤어야 돼. 아무튼 흰 종이에 점만 달랑 두 개 찍혀있는 거야. 시작점 도착점. 아니 이게 무슨 지도야?

“이거 가지고 여행을 시작했어요?” 하니까,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나침반을 꺼내더라? 그리고는 가방을 뒤지면서 수줍게 말하는 거야. “여행 책자를 얻었는데, 읽을 수가 없어요.”


…이러니까 여행을 하다가 길을 잃지.


일단 우리 집으로 데려와서 밥 좀 먹이고, 아와모리(泡盛) 홀짝이면서 이야기 좀 했는데,

답답해. 답이 없어. 미래가 안 그려져.

 

2주 전에 무작정 티켓 끊고 날아와서 류큐처분에 관한 물건을 수집 중이라는데, 얻은 게 거의 없는 모양이야.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봤지만, 본인이 원하는 물건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소문을 듣고 어렵게 구한 물건류큐처분 이전의 것이라나 봐.


가지고 있는 여행 책자를 해석하거나, 다음으로 넘어가거나, 아예 짐을 싸서 돌아가거나.

어떤 게 좋은 선택인지 몰라,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길을 잃은 사람마냥 뱅뱅 돌다 깨어보니 내 등이었대.


나한테 여행한 지 얼마나 됐냐고, 언제 돌아갈 거냐고 묻는데 뭐라고 답을 해줘야 할까.

10년이 넘게 여행한 작가를 소개해줘야 하나, 여행은 짧을수록 좋다고 말해줘야 하나.


대답을 고민하다 보니 문득 궁금해지더라.

나는 왜 5년이 넘도록 여행을 하고 있지? 내 여행은 어떻지? 괜찮은 건가? 나도 길을 잃은 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이 시국에 장막 희곡] 여행지에서 온 편지(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