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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만추 Jun 29. 2021

[이 시국에 장막 희곡] 이렇게 가라앉는가?

노만추의 Write with me (10)


4월부터 7월까지 장막 희곡을 완성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웠으나, 
계획은 무너지고 연재도 무너지고….
'창작집단 담' 작가들에게 묻는다! <이 시국에 장막 희곡> 프로젝트 이렇게 가라앉는가?


1.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키나와 여행에 몰두해 있다 보니, 벌써 6월의 끝자락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대본을 쓰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 손엔 쓰고 있는 대본도, 트리트먼트도 없다. 간략한 시놉시스조차 없다. 식은땀이 흐른다.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대체 난 뭘 한 거지?

   

침착하자. 작업 노트를 펼쳐보니,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다행인가? 아무튼, 지금까지 작업해 온 것들을 살펴보니, 주제는 정했고 주요 인물의 이미지 정도는 가지고 있다. 이야기의 전체 흐름은 없지만 쓰고 싶은 몇몇 장면들도 스친다. 그리고 배경을 만들기 위해 조사했던 오키나와에 대한 자료들….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자료수집을 하고 있는 거냐 묻는다면, 나도 같은 생각이다. 대사를 써야 하는 시점에 오키나와를 여행하고 있는 나 자신이 당황스럽고 답답하다. 심지어 손에 넣은 자료들이 모두 일본어로 되어있어 더욱더 막막하다. 원서를 사서 일일이 해석하며 봐야 하는데, 나의 어눌한 일본어로 그게 가능한가? 어찌어찌 가능은 하다 치자 올해 안에는 끝날 수 있는 건가? 얼마나 걸릴지 가늠도 안 된다.


매력적인 배경을 만들고, 인물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다는 믿음에 이 여행을 몇 주 동안 붙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에 갇혀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 같다.


2. 왜 그곳에 있는가?

이렇게 쓰고 보니, 오키나와에 대한 자료조사에 열중하느라 희곡 집필이 늦어진 것처럼 보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처음 연재를 시작한 4월 5일부터 지난주까지 올린 게시물을 살펴보았다. 매주 월요일마다 글을 올리기로 했는데, 놀랍게도 마감 시간 안에 올라온 글은 단 2개뿐이었으며(4월 5일, 6월 7일), 남은 7개의 글은 마감으로부터 짧게는 하루 길게는 6일이 지나고 나서야 업로드되었다. 무단으로 휴재를 한 횟수는 3회나 됐다.


무, 물론 모든 지각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아래 사진은 지난 4월의 스케줄러 일부를 뜯어 온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마감과 마감 사이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예-지원서 작성, 공연 업무 등)이 끼어 들어온다. 물론, 마감이 끝나고 빈둥거리는 시간을 줄이면 좋았겠지만, 정말 바쁜 주에는 이 빈둥거리는 시간에도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끼어든다.


덜 바쁜 시기, 그러니까 <이 시국에 장막 희곡> 프로젝트가 우선순위 1번에 놓일 수 있는 시기에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좀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비교적 여유로운 시기에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더라도 같은 결말이 나왔을 수 있다. 이번 연재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점이 있다. 바로 나는,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으면 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작년 희곡 쓰기 수업을 들을 때도 그랬다. 매주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내가 만족하는 수준만큼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그것을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만드는 걸 극도로 힘들어했다.


생각이라는 게 그렇다. 어떤 날에는 내가 예상했던 만큼 혹은 그보다 많이 발전하지만, 어떤 날에는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가만히 멈춰 있곤 한다. 심한 경우 한 주가 그럴 때도 있다. 생각이 멈춰 있는 주에는 손도 움직일 수 없었다. 열어놓은 서랍의 정리를 마치지 못했는데 어떻게 문을 닫고 다음 칸 서랍을 열란 말인가?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매주마다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설정해 놓았다. 그러나, 그 목표에 한참 미치지 못했을 때 나는 글을 써서 올리는 걸 포기하곤 했다. 연재 종료를 앞둔 지금 이런 생각을 한다. 정리가 안 된 서랍을 보여주는 게 뭐 어때서? 이건 과정을 보여주는 거지 결과를 보여주는 게 아니잖아.


작년에 들었던 희곡 쓰기 수업의 과제도, 이번 프로젝트의 연재 글도 미완을 향해 나아가는, 즉 미완을 보여주어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과정 하나하나를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만들려고 했었던 것 같다. 중요한 건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는데 그걸 몰랐다. 그래서 내 배는 항구에 도착하지 못하고 망망대해에 멈추어 있다.


3.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오키나와에 대한 공부를 조금 더 이어가고 싶다. 8월이 되기 전까지, 우선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템페스트〉는 마지막까지 볼 예정이다. 류큐처분 직전의 오키나와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키나와 문학 선집』을 읽으며 변화하는 오키나와 사회와 그 변화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려 한다.


류큐처분 시대를 공부할 수 있는 원서를 살지는 조금 고민이다. 오히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무단통치를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과정을 좀 더 브런치에 남기고 싶지만, 7월부터 여러 개의 작업이 동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아마 연재를 이어가는 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또 모른다. 언젠가 기회가 생겼을 때 ‘여행지에서 온 편지’를 들고 브런치를 다시 찾게 될지도.




결국 저는 장막 희곡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맞는 번호가 하나도 없는 로또 복권처럼 제가 세운 계획은 자꾸 어긋나곤 했지만, 브런치 연재를 위해 여러 시도를 하며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저의 여정을 지켜봐 주신 분들께 죄송함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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