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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만추 Oct 25. 2021

내게는 손잡이가 없다

11p. 19살의 구하나

2008년 11월 21일

숨이 하얗게 물드는 추위(*가와사키 마나미의 소설 『사랑합니다』에서 가져옴)


수능 때가 되기만 하면 기온이 뚝 떨어진다니. 정말 신기하고 이상하다. 말도 안 된다며 웃고 넘겼는데, 수능 지나고 나니 너무 추워졌다. 스타킹을 신고 그 위에 반 스타킹을 신었는데도 다리가 떨린다.


이제는 교실에서 외투를 입고 있어도, 치마 아래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어도 딱히 뭐라고 하는 선생님들이 없다. 며칠 전에 은영이가 화학 선생님한테 교복 제대로 안 입고 있는 거 걸렸는데, “다 큰 아가씨가 돼서. 꿀밤을 때릴 수도 없고” 이러면서 그냥 보내줬단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꿀밤 날리던 그 선생님이 맞나 싶다.


오늘 복도에서 마주친 정민이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혹시라도 마음이 쓰일까 봐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 정민이랑 계속 이런 상태로 지내게 되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내게는 손잡이가 없다. 그러니 문을 열 수 없다.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정민이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너 가. 너 오지 마.”


수능 다음 날 복도는 시끌벅적했다. 수능 전까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고3이 되고 나서 우린 복도에서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공부만 하라는 뜻이었다. “오늘 좀 쌀쌀하지 않아?” 같은 말도 하면 안 됐다. 차가운 복도에 엎드려 맞고 싶지 않다면. 그런 복도가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고3이 되고 나의 모의고사 점수는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3, 4등급이나 떨어진 점수는 3학년 내내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더니, 수능 날 기적적으로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민이는 그 반대였다. 조금씩 오르던 점수가 하필이면 수능 날 무너졌다.


수능 다음 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애들 표정만 봐도 대충 누가 잘 봤고 못 봤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시끌벅적한 복도에서 만난 정민이의 표정이, 정민이의 어제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정민이와 은영이와 오랜만에 함께 집에 가려던 참이었다. 내가 이용하던 통학버스도 수능을 기점으로 운행을 하지 않기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나를 보고 정민이가 한 말이 바로,


“너 가. 너 오지 마.”

 

내가 정민이의 표정으로 정민이의 어제를 읽을 수 있다면, 정민이도 나의 표정만 보고 나의 어제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더는 정민이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은영이와만 함께 하교했다. 은영이는 이미 수시 1차로 대학에 합격해서 수능이 상관없는 애였다.

  

아마, 2학년 때였을 거다. 한문 선생님이 우리에게, 선배들이 수능 성적표 받는 영상을 보여줬던 게. 1학년 때 오셨던 교생 선생님이 영상에 나오는 걸 보니 꽤 오래된 영상인 듯했다. 한 선배가 성적표를 받고는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옆에 앉아있던 다른 선배가 위로하는 것도 쳐다보는 것도 하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하다 고개를 떨궜다.


대충 우리 정신 차리라고 보여준 영상이었고, 책상에 엎드린 선배는 수능을 망쳤고 옆에 있던 선배는 이미 좋은 대학에 붙은 상황이었다. 한문 선생님은 이렇게 위로해줄 수도 없는 관계가 되니 서로 잘 봐야 한다고,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


은영이는 정민이 말에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고 했다. 서운하지 않았다. 어떻게 서운할 수 있겠어. 오히려 정민이의 마음을 너무 잘 알겠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 마음은 내가 3학년 내내 나보다 좋은 점수를 받던 친구들에게 품었던 마음이기도 했으니까. 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품고 있을 마음이기도 하니까.

  

정민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게 됐고, 같은 중학교를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친해졌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내가 은영이와 싸우고 통학버스를 신청하기 전까지, 정민이 어머님이 우리를 학교까지 함께 태워다 주셨었다. 내가 은영이와 싸웠을 때도, 은영이가 제 잘못은 하나도 모르고 내 탓만 할 때 내 편을 들어주던 게 정민이였다. 은영이가 본인이랑 화해 안 했으니 자기네 차 타지 말라고 했을 때도(정민이 어머님과 은영이 어머님이 번갈아 가며 데려다주셨다) 내 마음을 살펴주던 게 정민이와 정민이 어머님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나한테 정색한다고 꼽주고(지가 더 정색하면서) 막말해대는 우리 반 XX가(이름도 거론하기 싫음) 시험 망쳤다고 자기한테 오지 말라 그랬다면, 그러든가 말든가 별 신경도 안 썼을 텐데. 정민이니까, 정민이라서.


정민이에게 뭐라고 건넬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좋을 텐데, 나는 아직 그 말을 찾지 못했다. 정민이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이 있기는 한가. 이제는 잘 모르겠다. 나에게는 손잡이가 없어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정민이가 문을 열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정민이가 조금이라도 빨리 걸어 잠근 마음을 열기를.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본 프로젝트는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추진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1년 아동·청소년 대상 예술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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