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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주 Sep 10. 2023

크렘린 같은 엄마가 웃다

80대 엄마와 50대 딸의 역할 바꾸기

크레믈린. 이 단어를 듣고 무엇인지 바로 안다면 그는 분명 옛날 사람이리라. 냉전시대에는 크레믈린으로 표기했는데, 러시아와 왕래가 활발해진 2000년대 이후에는 크렘린이 올바른 표기가 되었다. 원래 러시아어로 ‘성채, 요새’를 뜻하는 말이지만, 비밀스럽고 접근하기 어렵던 구 소련 시대 권력의 상징으로 통용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몇몇 지인이 부르던 엄마의 별명이기도 했다. 엄마는 입이 무거워서 비밀 얘기도 하소연도 안심하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동네 아주머니들이나 친척들은 엄마를 찾아와서 뒷담화를 비롯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한참이나 풀어놓고는 했다.


그렇게 엄마는 이야기를 담기만 하고 내보내지는 않는 세월을 보냈다. 비단 남의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도 함부로 내보이지 않았다. 입을 다물고, 속으로 삭이고, 말을 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일까? 요즘 엄마에게 어떤 이야기를 물으면 자꾸만 기억이 없다고 하신다.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은 잊었다고 하신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계속한다. 엄마가 살아 온 어느 시절이든 소중하게 기억하고 기록해보고 싶어서이다.     


사진 출처 위키 백과


며칠 전, 엄마만 모시고 카페에 갈 일이 있었다. 내가 사는 곳으로 이사 올 때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물어보다가 뜻밖의 말을 들었다. 당시의 건강 상태로는 더 오래 살 자신도 없고, 혼자 남을 남편이 시골 읍내를 슬퍼하며 돌아다닐 것 같았다고 했다. 큰딸이 가까운 곳으로 오시라 하니 그리되면 남편이 혼자서도 남은 생을 잘 적응하고 마무리할 수 있겠다 싶어서 이사 왔노라고.

하지만 막상 이사 온 후 아빠는 낯선 지명, 복잡한 동네 규모에 마음이 위축되었는지 엄마에게 불안함을 불만으로 표출하시곤 했다. 어느 날을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가,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면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되는데 라고 하시며 이사를 강행한 엄마에게 은근히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고.     


“어쩌라고! 언제부터 인생에 대해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랬는지, 원.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즐겨야 할 것 아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엄마의 이런 표현에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엄마도 모처럼 환하게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86세 노인의 입에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놀라웠다. 한 시간쯤 지나 아빠를 위한 아메리카노를 포장해서 나오며 엄마는 오늘 얘기는 둘만 아는 것으로 하자고 당부하셨다. 이렇게 아빠의 뒷담화를 하며 어쩐지 엄마와 더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 웃음이 바람이 되어 엄마 마음속에 담아둔 오래된 기억의 먼지를 조금이라도 날려 주었으면 좋겠다. 조금씩 밖으로 나오는 기억에 삭였던 속마음도 함께 딸려 나와 마음 속을 산뜻하게 환기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들의 답답하고 지질하고 힘든 이야기는 다 들어주었던 엄마의 깊은 속. 그러나 엄마는 정작 본인의 속을 얘기할 곳이 있었을까? 아니면 후회되는 말이 있었을까? 이제라도 내가 듣는 귀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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