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기를 모집합니다. 평소 존경하던 편성준 선생님의 브런치 글에서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미국에 있었다. 며칠 뒤엔 새롭게 2023년이 시작될 시기였다. 가슴이 뛰었다. 시차를 신경 쓸 새도 없이 신청서를 보내놓고 답신을 기다렸다. 50세를 넘기면서 그런 결심을 했었다. 30년 가까이 제품 카피와 프레젠테이션 기획으로 남의 이야기를 대신 해왔으니 인생 후반은 내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 살리라고. 내게도 기회가 왔다.
그런데, 귀국을 해보니 엄마가 많이 편찮으셨다. 아이도 독립해 신경 쓸 일이 줄었고, 프리랜서 작업도 줄여 오롯이 글쓰기에 집중하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많이 부담스러웠지만 나중에 후회하기 싫어서 엄마를 ‘국이 식지 않을 거리’에 모시기로 했다. 워크숍이 시작되는 5월이 되기 전에 집수리와 이사 준비를 마쳐야 해서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5월의 첫날, 응원해주고 싶다는 35년 지기 친구와 함께 성북동 한옥 <소행성>으로 가는 골목길에 접어드는데 뭔가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한옥 마루에서 만난 동기들의 얼굴에서도 긴장감과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다. 아마도 내 표정도 그랬겠지 싶다.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는, 책을 내고 싶다는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처음 만났는데도 내 속 얘기를 하는 게 하나도 부끄럽거나 망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려운 길을 함께 갈 사람들이 생겨서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가 오래 품어온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으며 조금씩 동화되고 있었다.
마지막 워크숍을 마치고 동기들과 소행성 마당에서 기념 촬영
워크숍 초반 회차를 담당하시는 윤혜자 선생님은 내가 쓰고 싶은 책의 방향성과 의미에 대해 따끔한 분석을 해주셨고, 실제 작품 쓰기에 들어가면 편성준 선생님이 세심한 피드백과 새로운 제안으로 채워주셨다.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는 말로 풀어낼 때 한 번 달라지고, 글로 쓰이면서 또 모양을 바꾸었다. 내가 하려던 이야기가 뭐였지 싶을 때가 많았다. 선생님들 말씀대로 내 이야기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인지 글의 주제가 명료하지 못하고 흐릿했다. 어려웠다. 그래서 워크숍 회차가 절반을 지날 무렵 나는 진지하게 중도하차를 고민하기도 했다. 마침 걸린 코로나 핑계를 댈까 아니면 엄마 간병으로 인한 시간 부족을 토로해볼까 하면서 말이다.
막연한 안개 속을 운전하는 것 같은 불안감이 조금씩 걷혀간 것은 두 선생님과 동기들의 격려 덕분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회차가 지날수록 글은 조금씩 틀이 잡히는 것 같았다. 내가 쓰고 싶던 엄마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한 두 문장에서 시작해서 한 문단, 한 편으로 몸집을 불려 나가는 것이 신기했다. 과제 마감일 자정까지 속을 끓이다가도 워크숍 당일에 선생님들의 피드백을 듣고 내려오는 심야 우등버스에서는 작은 희망 때문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도 동기들도 매번 절망하고 자주 방향을 잃었지만 ‘내 책을 쓰겠다’라는 소망을 품고 여기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워크숍 기간 내내 책상 위에서 때론 의자 사이를 지나가며 우리를 지켜봐 주던 고양이 순자의 조용한 응원도 빼놓을 수 없다. 순자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동기들과 도원결의를 맺을 땐 역시 냉면이지!
하이퍼그라피아(Hypergrapia).
심혜경 작가의 책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를 읽다가 알게된 단어이다. 작가에 따르면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나거나 글을 쓰지 않으면 조바심이 나는 증상을 의학적으로 일컫는 말’이라 한다. 아직 하이퍼그라피아까지는 아니지만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나도 서서히 이런 조바심에 물들어갔다. 친구가 방금 한 이야기, 엄마와의 대화, 뉴스 속 멘트 한 줄도 모두 글감이 될 수 있는데 바로바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해서 발을 굴렀다. 내 일천한 글솜씨가, 병원을 따라다니느라 늘 부족한 시간이, 코앞의 마감 작업과 자원봉사로 분산된 집중력이 발목을 잡는 것 같았다. 아니었다, 모두 핑계다. 자신의 마음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할 이야기를 깊이 생각하는 동기들은 뚜벅뚜벅 글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하게 글을 쓰고 있었다, 조바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 시간에 그들의 글을 한 편씩 읽어보면서 감동도, 반성도, 다짐도 많이 했다.
쉽게 말하자면 하이퍼그라피아는 글쓰기 중독이고, 멋지게 이야기하면 ‘창조적 열병’을 뜻한다. 뇌의 특정 부위에 변화가 생길 때 나타나는 증상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다. 측두엽 간질, 조울증 등이 그 원인이라는데, 애드거 앨런 포는 이를 두고 ‘한밤중에 걸리는 질병’이라고 불렀다. 히포크라테스는 이를 두고 ‘신성한 질병’이라고 했으니, 정말 신성한 질병인가 보다. 도스트옙스키와 김동인 역시 대표적인 하이퍼그라피아였다고 한다.¹⁾
워크숍을 마무리 하던 날, 선생님들과 동기들에게 고백했다. 2023년, 내 최고의 행운은 워크숍을 만난 것이라고. 하나의 책쓰기가 목표였지만 그 이상의 것을 갖게 되었다. 멈추지 않고 내 이야기를 글로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 말이다. 그 길에 두 선생님과 ‘동기 작가들’이 함께 해주리라 믿는다. 나 역시 동기들에게 힘을 주는 ‘작가’ 친구로 남고 싶다.
즐겨보는 브런치에는 온통 사랑스러운 고양이 천지인데 모두 남의 고양이다. 순자는 선생님들의 고양이다. 나만 고양이가 없다. 그래도 내겐 글이 남았다. 계속 글을 써서 책을 남기자. 내 이야기를 의심하지 말고 한 줄이라도 시작하자. 내가 성북동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을 마치고 배운 귀중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