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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e Oct 28. 2021

길 위에서 인생의 길을 찾다. - 유럽

소매치기, 그리고 잡상인의 탈을 쓴 소매치기

두 달간의 유럽 여행을 결정하고 처음으로 주변에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여행에 대해 알렸을 때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혼자? 두 달? 미쳤어?'

'여자 혼자, 그것도 동양 여자 혼자 가면 소매치기당한데~! 유럽에는 강도도 많데!'

'너 혼자 다니는 건 너무 위험한 거 아냐?! 혼자 다니다 납치되는 거 아냐?! 유럽은 납치도 많이 한데!'

'내 친구도 혼자 유럽여행하다가 소매치기당해서 지갑 잃어버렸어!'

등등..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다들 하나같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별일 없었어?'


결과적으로 나는 두 달간의 여행에서 '별 일'이 있었다.

그 유명한 유럽의 소매치기를 직접 만났고, 야간열차에서는 강도에게 지갑과 카메라를 도둑맞기도 했다.

그리고 잡상인을 가장한 소매치기를 만나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물건 하나라도 건네고 돈을 가져간 사람은 그나마 매너가 좋은 소매치기에 속했다.

여행을 끝내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그나마 신변에 이상이 없었다는 것에 안심을 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여행 중간중간 이어지는 소매치기와의 조우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만남의 연속이었다.






가장 먼저 소매치기를 만난 건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이었다.

거리에 늘어선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며, 파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었기에 잔뜩 기대를 하며 찾아갔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일만큼의 높이라서 그런지 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케이블카를 타거나 직접 걸어 올라갈 수 있었다.

언덕 아래에서 계단을 올려다보니 조금은 막막한 느낌이 들어 케이블카를 타볼까 싶었지만, 천천히 구경하며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언덕을 오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실을 온몸에 감싸고 있는 남자 하나가 나타났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가오더니 뭐라 말을 할 틈도 없이 내 손 하나를 가져가 손목에 실을 감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실을 감으며 빠르게 팔찌 모양을 만드는데, 필요 없다며 손을 빼내려 해도 행운을 주는 거니 괜찮다면서 더 빠르게 감아내기 시작했다.

얼굴은 아주 상냥하고 밝게 웃으면서 계속해서 내 눈을 응시하고 끊임없이 말을 걸며 시선을 돌리려 하는 게 느껴졌다.

두 번이나 손을 빼내 봤지만 그럴수록 더 손에 힘을 주고, 더 환하게 웃으며 말은 많아지고 손놀림은 빨라졌다.

그렇게 빠른 손놀림으로 금세 팔찌를 만들더니 내 손목에 딱 맞게 조여 메고는 매듭을 잘라냈다.

그리고는 20유로를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미소와 친절한 말투는 유지한 체 내가 당연히 돈을 줘야 하는 것처럼 말하며 돈을 요구하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너무 친절한 모습에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는 요구한 적 없고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 말하며 팔찌를 빼내려고 하니 내 손목을 확 잡아채고는 날 위해 만든 거라 뺄 수도 없고 빼버리면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없다며 내 손목을 잡고 있던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가면서도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얼굴에는 친절한 척하는 미소를 끝까지 유지했다.

그 모습이 더 역겹고 그런 사람이 내 손을 잡고 있다는 것도 짜증 나서, 힘껏 팔을 쳐내며 한번 더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새 벌겋게 손자국이 난 팔을 보니 더 화가 났다. 그 사람에게 잡혔던 손목을 쓸어내며 필요 없으니 안 산다고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하며 고개를 드는 순간, 그 남자의 어깨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들 무리가 보였다.

중동계 외모를 가진 남자들이었는데, 한눈에 봐도 내 손목에 실을 감은 남자와 일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그중에 한 남자는 난간에 걸터앉아 한쪽 손을 재킷 안쪽에 넣은 채 뭔가를 꺼낼 듯 말 듯 하면서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비웃고 있었다.

마치 ‘그냥 갈 수 있으면 한번 가봐~’라며 비웃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워낙 많은 곳이라 일부러 부딪히며 물건을 가져가는 소매치기는 있을지 몰라도 대놓고 위협을 가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남자가 내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 때도 나 역시 지지 않고 손을 뿌리치며 싫다며 강하게 반박했던 것이다.

그런데 뒤편에 서 있던 남자들이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서 일순간 살기가 느껴졌고, 그곳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유럽에서 소매치기를 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유럽의 관광지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기 때문에 그 한복판에서 실을 감은 그 남자처럼 물건을 파는 척하며 돈을 빼앗거나 아예 일행들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서서는 그 안에서 흉기로 위협을 가해 금품을 갈취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특히 유명 관광지일 경우 현지인보다는 여행객이 훨씬 많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심리를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들 역시 그런 점을 노린 건지 대범함이 하늘을 찌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이미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만 확고해졌다.

지갑에서 20유로를 꺼내 주고는 그 자리에서 팔찌를 빼내어 그 남자 앞에서 던져 버리고 돌아섰다.

그렇게 돌아서니 내 뒤에 대고 ‘Thank you~’를 연발하며 웃어대는 소리에서 그들이 일행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느새 모여들었는지 ‘Thank you’를 외치는 목소리가 한둘이 아니었다.

가서 침이라고 뱉어주고 싶었지만 20유로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관두기로 했다.

그렇게 그냥 돌아선 것이 며칠 동안 분했었지만, 후에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이나 유럽여행 경험이 있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그냥 돌아선 게 잘한 거라며 입을 모았다.

유럽에서 소매치기나 강도짓을 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유럽이나 중동 지역의 빈민 국가에서 넘어오는 경우가 많고, 모국에서 할 수 있는 경제 활동이 없다 보니 무단으로 국경을 넘어오는 것이다. 당연히 합법적인 절차를 이용해 넘어오는 것이 아니라서 대부분 불법체류자 신분이고 그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유럽 각지에서 소매치기나 관광객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것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두려운 건 없다. 한마디로 다음이 없고 내일이 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두려운 것도 망설임도 없다. 여차하면 누군가를 해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그들과 불필요한 시비가 붙거나 그들을 도발해서 필요 이상의 접촉을 하면 정말 신변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상황을 피하는 게 좋다고 했다.

파리에서의 그 일은 여행 초반 처음 겪은 일이라 순간의 감정으로 그들을 대하려 했지만, 후에 열차에도 강도를 만나고 뒤이어 소매치기까지 만나다 보니 더더욱 여러 사람들이 잘했다고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심지어 나중에는 파리에서 실 팔찌를 만들어 주고 돈을 가져간 남자는 그나마 양심이 있는 소매치기였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몽마르트르 언덕에 오르는 길




파리에서의 경험과 스페인에 들어가면서 카메라와 지갑을 도둑맞는 일이 이어지자, 여행 중후반부터는 계속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코 프라하의 지하철에서는 그 틈을 노리는 소매치기를 만나기도 했다.

프라하에서 한인 민박에서 머물게 됐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틀 정도 일정을 같이 하면서 돌아다닐 때였다.

오전에 일정을 시작해 프라하 중심지를 돌아보다가 저녁에는 민박집에서 몇 가지 요리를 해 같이 먹기로 하고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숙소까지는 지하철로 두정거장 정도 이동해야 했고, 구입한 물건들을 들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프라하의 지하철은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계단을 내려가면 양쪽으로 열차를 탑승할 수 있는 승강장이 있는 구조였다.

일행들과 함께 짐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 승강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그대로 얼어 버렸다.

승장강 양쪽으로 3개씩 6개의 기둥이 있었는데, 각 기둥마다 두세 명이 무리 지어 서 있었고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 일제히 우리를 쳐다봤다. 그들의 표정은 익숙한 모습이었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만났던 그 남자들과 같은 표정이었다.

우리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행동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일행 중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언니 한 명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하라고 말하며 우리가 열차를 타야 하는 방향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우리처럼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아주머니와 회사원처럼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자 사이에 가서 서는 게 좋을 것 같다며 그쪽으로 이동했다.

이미 많은 눈이 우리를 향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퇴근 시간의 지하철에서 크게 위험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었다. 최대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을 따돌려야 했고, 두정거장만 이동하면 되는 거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가 들어왔다. 열차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가 있던 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은 생각보다 좁았고 퇴근 시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떠밀리듯이 지하철에 타게 됐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일행들과 떨어져 나 혼자 문 바로 앞에 있는 기둥에 서 있었다. 의자 기둥에 기대어 자리를 잡고 서 있는데 내 앞에 불쑥 키가 큰 남자 두 명이 나타났다. 키가 2미터는 될 것 같은 남자 둘이 기둥을 붙잡고 서서는 뒤에서 밀려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행동을 취하며 'Sorry'를 연발하고 있었다.

한순간에 사람들과 엉키는 바람에 그런 걸까? 나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떠밀리다 보니 그새 잊어버렸다. 지하철 타기 전의 그 시선과 우리가 느꼈던 그 긴장감을..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둘이 최대한 나와 몸이 닿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는 있었지만 마주 보는 자세에서 거리가 너무 가깝다 보니 그 사람들이 나와 더 가까워지는 것을 막으려고 팔을 살짝 뻗어 그 남자들이 한 번씩 넘어질 듯 기대는 힘을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지하철 타기 전의 일은 까맣게 잊은 체 그 남자들과의 접촉만 피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이었고 계속해서 미안하다며 웃는 사람 앞에서 딱히 뭐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아 그냥 괜찮다며 간격만 유지하려고 신경 쓰고 있는데, 갑자기 그 남자들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저 이름만 부른 것뿐이었는데 목소리에서 다급함과 긴장감이 느껴졌고, 그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앞에 있던 내 가방을 두 손으로 확 낚아챘다. 그러자 열린 지퍼 사이로 나와 바로 마주 보고 있던 남자의 손이 확 빠져나왔다.

아마도 손을 넣자마자 내가 가방을 잡았던 건지 다행히 빈손만 급하게 빠져나갔다.

하지만, 단 몇 센티의 거리를 두고 나를 마주 본 상태에서 소매치기를 하려고 했다는 것에 너무 놀라웠고 그 소매치기를 이렇게 가까이에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더욱 놀라 그대로 얼어 버렸다.  열차에서 물건을 도둑맞으면서도 사람은 직접 마주한 적이 없었는데 그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를 직접 내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아무 생각이 안 들고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너무 놀라고 당황한 채로 멍하니 그 사람을 올려다보는데, 그사이에 열차는 다음 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다음 역에서 열차 문이 열리자 그 남자는 나를 내려다 보고는 싱긋 웃으며 윙크를 하더니 열차에서 내려 유유히 사라졌다. 열차 문이 닫힐 때는 다시 한번 뒤돌아서서 신나게 손을 흔들고는 일행들과 함께 웃으며 뛰어갔다.

어이없고 황당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계속 얼어 있다가 마지막 손을 흔드는 모습까지 보고 나니 나도 모르게 '허!..'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헛웃음이 나왔다. 그들의 대담한 행동과 끝까지 뻔뻔하고 두려울 것이 없는 듯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넋이 나가 멍하니 서있는데 일행들이 다가왔다.

일행들은 내가 있는 쪽으로 타려고 보면서 따라 들어갔는데 갑자기 남자 둘이 그 사이에 들어와 나를 감싸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어떻게든 그 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일부러 막는 것 같았고, 일행들 역시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소매치기 수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를 계속 불렀던 거라고 한다.

상황 설명을 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이 열차는 다음 역에 도착했다.

숙소가 있는 역에 내리면서도 또 따라붙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잔뜩 긴장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나에게 다가웠던 그 무리가 이미 작업을 시작해서 인지, 자기들끼리의 암묵적인 룰이 있어 순서가 정해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다행히도 그 남자들 외에 더 이상 우리에게 다가와 소매치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프라하의 야경




소매치기, 강도 등의 단어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여행을 준비하고 여행을 시작하면서도 ‘설마, 그게 그렇게 흔한 일이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여행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는 사건 사고가 이어지자  '나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 그리고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나처럼 혼자 다니는 여자 여행자는 아주 쉽게 타깃이 되고, 남자라고 해도 일단 혼자 다니는 사람이라면 위험에 노출되기가 쉽다.

하지만 여러 명의 일행이 있다고 해도 강도나 소매치기를 당할 위험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경우 더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중에 한 방법이 캐리어를 통째로 들고 가는 일이다.

간혹 기차역이나 공항에서 대기를 하기 위해 일행이 모두 모여 짐을 한데 모아 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 틈을 노리는 방법이라고 한다.

일행들 짐을 한 군데에 모아 두고 그중에 몇몇 사람들이 볼일을 보느라 여기저기 흩어지는 상황이 되면, 두세 명의 강도들이 후다닥 뛰어가 가방 한두 개를 집어 들고 그대로 도망가 버린다고 한다.

짐을 지키던 사람은 나머지 짐 때문에 그 사람들을 쫓아갈 수도 없고, 만약 쫓아간다고 해도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아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일행 중 한 명의 캐리어가 앞에 지퍼가 있는 수납공간이 있어 그곳에 일행들의 여권과 열차표 등을 한 번에 넣어 두었는데 그걸 들고 가버린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 역시 대여섯 개가 되는 짐을 한 명이 지키고 있다가 당하게 되었고, 쫓아가고 싶었지만 워낙 빠르게 도망가서 잡을 수도 없어 그대로 그 가방 하나를 날려 버렸다고 한다.

일행 모두의 기차표와 몇몇은 여권까지 들어있는 상태에서 도난당한 거라 그 사람들은 여행 전체 일정 자체가 변경되고 몇 명은 그냥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어느 나라든지 여권을 잃어버리면 한국 대사관에서 단수여권을 재발급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국가의 대사관은 각국의 수도에 위치하기 때문에 현재 여행하는 도시가 어디든 무조건 해당 국가의 수도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재발급 신청을 하고 발급받기까지 짧게는 1일에서 길게는 3~4일 이상이 될 수도 있다.

해당 도시가 아직 여행 전인 곳이라면 며칠 여행을 하며 기다릴 수 있겠지만 일단 여행 계획 자체는 아주 많이 변경될 수밖에 없다.

거기다 단수여권의 특성상 한번 해당 도시에서 이동하면 다시는 그 도시로 돌아갈 수 없다.

만약 발급받은 도시가 파리라고 하면 그대로 파리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도시로 이동해 그곳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도시에 갔다가 다시 파리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런데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아웃 도시를 같은 곳으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

거의 유럽 한 바퀴를 돌아보는 일정을 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시 처음 시작점인 도시로 돌아가서 한국으로 가는 것인데, 차라리 여행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서 아예 다른 나라에 있다면 그 나라의 수도에서 일을 처리하면 되지만 여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잃어버렸다면 해당 국가만 짧게 여행하고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여권 분실은 여행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건이 될 수가 있다.

물론 그 외에 모든 소지품이 잃어버리면 안 될 중요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여권이나 유레일패스를 잃어버리는 것은 여행 계획을 변경하거나 아예 취소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내가 만난 열차의 도둑과 소매치기들은 그나마 '매너가 있는 나쁜 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경험한 일들도 처음 듣는 사람들은 다들 놀라워하고 너무 무섭다는 반응을 보였던 일이었지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그나마 신변의 이상 없이 물건이나 돈만 잃어버린 게 다행이고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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