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화 Feb 27. 2022

집을 보면 그 사람의 작업이 보인다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기로 했다>라는 책을 보고 미니멀리스트로 살기로 시도한 적이 있다. 사실 책의 저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책의 내용에 관한 모든 기억이 지워졌지만 정작 지우고 싶은 한 가지 기억이 살아있다. 그게 뭐냐면 그 당시 내가 안 쓰는 것 같다고 여긴 물건들을 모두 버린 바보 같은 내 모습이다. 나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지 않는 옷을 모두 버렸고 깔끔한데 예쁘다고 생각되는 소품 정리함을 마구잡이로 사들였다. 그런데 정리를 위해 산 물건들이 몇 번 사용하지도 못하고 보관만 하는 짐 신세가 된 것도 많았다. 집에서만큼은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 리스트 그 어떤 것도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이유는 집을 가꾸는 건 함께 사는 사람의 생활 동선, 그 사람의 작업도 함께 고려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아서다.


결혼은 내가 중요시 여기는 작업과 그 사람이 중요시 여기는 작업 간의 충돌이 분명 존재하고 그 둘의 조율이 필요하다. 무작정 혼자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결심한다면 시간낭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집에서 하는 작업들이 무엇인지, 무엇이 중한지 오빠랑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무엇보다 건강관리를 가장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강아지 슬개골 관리를 위해서 강아지 생활 동선 전체에 매트가 다 깔려있고 사료의 양을 정확히 확인해서 주기 위해 계량기가 있다. 그리고 우리 부부를 위한 각종 영양제, 운동용품, 의료기기들이 갖춰져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우리 집은 개인위생을 중요시 여기는데 그래도 다행히 개인위생에서 만큼은 서로 생각이 비슷한 것 같다. (물론 꾀를 종종 부리는 나와 반대로 오빠가 더 FM처럼 잘 실천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세탁실에 바구니가 2개로 구분되어있는데 하나는 일반 옷들을 넣는 바구니, 나머지 하나는 속옷만 넣는 바구니다. 속옷이 일정 부분 쌓이면 바구니에서 속옷을 꺼내어 애벌빨래를 한 후 속옷만 따로 돌린다. 그래서 우리 집 화장실엔 과탄산소다가 꼭 필요한 존재다. 과탄산소다만큼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또 있는데 스프레이 타입 발가락 샴푸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수자와 수희에게 집에 속옷 바구니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두 친구 모두 속옷과 옷을 같이 돌린다고 했다. 그러니 그 친구들 집에는 속옷 바구니라는 물품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오빠와 같이 고민하면서 느낀 사실은 내가 여기는 작업의 중요도가 크다고 해서, 또 그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이 다 있다고 해서 내 작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진 않았다.


자주 사용을 해야 작업 만족도가 높아질 텐데 깔끔한 집을 위해 물품들이 다 구석에 숨겨져있다 보니 사용빈도가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깔끔한 집보다는 조금 지저분해 보여도 우리의 작업 루틴을 고려하면서 물건들을 배치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움직이는 동선을 바탕으로 물품들의 위치를 조금씩 옮겨보았다. 예를 들어, 빨래를 돌리기 전에 돌돌이를 한 번 하고 돌리는데 우리는 그 작업을 세탁실 위치와 제일 가까운 꼭 부엌 바닥에서 한다. 그런데 돌돌이는 펜트리에 보관되어있기 때문에 늘 복도까지 꺼내와야 했다. 그런데 아래 사진과 같이 돌돌이 집을 변경했더니 작업의 효율성이 확 올라갈 수 있었다.

돌돌이와 세탁실

누군가는 부엌에 돌돌이가 있다는 게 이상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최적의 장소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며 조율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알아갈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이슈는 거실에 있는 tv. tv대신 거실에 서재를 두어 여가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vs tv 보면서 가지는 휴식을 지키고 싶어 하는  (내가 져야하는 걸까?)


나를 알고 서로를 알아야 가정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중요하게 여기는 작업이 무엇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똥쟁이와 오줌싸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