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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Mar 25. 2021

이터널 선샤인 (초고-1)


"누가 나 낳아 달래? 엄마 멋대로 낳은 거잖아."


결국, 그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시작이 어디서부터였더라. 몰래 가방에 숨겨 놓은 화장품을 발견했을 때부터였나, 그걸 사느라 학원을 빠지고 아르바이트를 해왔던 걸 들켰을 때부터였나. 내가 너한테 부족하게 해 준 게 뭐였는지로 시작된 엄마의 잔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져 나를 차근차근 열 받게 만들었고, 결국 취사가 완료된 밥솥처럼 내 입에선 김이 뿜어져 나갔다. 당황한 엄마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더 독한 말이 쏟아졌다.


"엄마가 뭘 알아. 이 정도도 못 가지고 다녀? 공부나 잘하라고? 그러게 용돈이나 좀 넉넉히 주지 그랬어."


안 돼. 그 입 다물어. 그만 말해. 제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입. 결국, 엄마와 내 눈에서 차례대로 눈물이 터지고 나서야 나는 겨우 눈을 뜬다.


또 그 꿈을 꿨다.




엄마, 미안해.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엄마의 뒤로 다가가 슬그머니 포옹하며 말을 건네자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눈이 잠시 깜빡이며 나를 응시하고, 이내 온 얼굴에 번지는 미소.


“우리 딸, 잘 잤어? 엄마가 밥 차려 줄게. 앉아 있어.”


흰 머리가 대부분인 머리카락을 집게 핀으로 고정한 엄마가 작고 곧은 등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흰 쌀밥, 계란 후라이, 된장찌개, 햄구이, 김치, 김. 언제나 한결같은 우리 집 아침상.


“자, 우리 아기가 좋아하는 햄구이 나왔습니다.”


그 아기가 지금 40살이 넘었어. 어릴 때는 유난히 입이 짧아서 햄을 구워 주지 않으면 아침밥을 한 술도 뜨지 않았다. 쓴웃음을 삼키며 밥을 뜨자 엄마는 햄을 작게 잘라 그 위에 올려 준다. 밥 한 공기를 다 먹을 때까지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그녀.


“엄마는 밥 안 먹어?”

“엄마는 우리 아기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


내가 출근하고 나서 꼭 챙겨 먹겠다는 다짐을 받고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간다. 뜨거운 물을 맞으며 오늘 일정을 생각하고 있는데 멀리서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우리 집에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종소리와 덜컥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대충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현관으로 뛰쳐나간다.


“해원이 엄마! 집에 있었네. 택배가 잘못 갔다고 해서요.”

“누구세요?”

“네?”


무기질적인 시선을 던지는 그녀가 몹시 당황스러울 만도 하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아온 이웃 주민을 못 알아봤으니. 이래서 엄마에게는 절대 초인종 소리에 반응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두었는데.


“죄송해요. 여기 택배요. 엄마가 좀… 제가 다음에 설명해 드릴게요."


얼른 택배 상자를 건네고 들어오자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소파에 앉아 있다. 허공을 응시하다가 나를 향하는 시선. 다시 번지는 미소. 나는 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모아 넘기고 그녀의 두 손을 모아 꼬옥 잡는다.


“엄마, 현관에서 무슨 소리 나도 절대 나가지 말고. 사람들 눈에 띄지 말고. 나 금방 올 테니까. 응? 알았지?”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그녀는 곱게 웃고만 있다.






김동식 작가와 함께하는 초단편소설 책쓰기 (5월 1일 출간 예정) 중 저의 원고 "이터널 선샤인(가제)" 도입부입니다. 엄마, 미안해. 엄마, 보고싶어. 그 말이 하고 싶어서 쓰게 된 소설이에요. 중학생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요. 와. 처음 써보는 소설은 참... 작가님들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 같네요.


응원해주실거죠?












(C) 2021. 권윤경. BY-NC-ND.

1일 1책 1글을 행하며 나를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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