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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May 17. 2023

이토록 무궁무진한 가지 요리의 세계

가지 키우기 (2)

막 심은 가지 모종 / 두 달 뒤 가지 모종


처음 흙에 뿌리 내린 5월 중순, 자그마했던 가지 모종이 이렇게 거대해지는데 걸린 시간은 단 두 달. 타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7월의 한여름에 접어들면서 가지가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했는데, 9월이 넘어 가을이 될 때까지도 무서울 정도로 많이 열렸더랬다. 본래 가지는 가을에 수확을 더 많이 할 수 있고, 크기도 여름보다 두 배는 자란다고 한다. 이래서 가지가지한다 라는 표현이 생긴 걸까? 


보이시나요? 따도 따도 계속 열려...


실제로 양도 양이고, 크기도 날로 날로 커져갔다. 사실은 따야 할 적정 시기를 계속 놓치기도 했고. 2인 가족이 먹는 속도는 가지나무 두 그루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맞벌이 부부는 거의 주말에만 텃밭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지라 너무 커지기 전에 제때제때 수확하기가 쉽지 않았다. 


적당한 크기일 때 수확하는게 가장 맛 좋은 것 같긴 하지만, 덕분에 신기방기한 거대 가지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제 손은 작지 않습니다


9월까지 수북한 가지들을 안겨주고 떠난 두 그루의 가지나무. 주변에 나눠주기도 많이 나눠줬고, 가지로 (내 수준에서)시도해 볼 만한 요리는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신기한 건 확실히 9월로 넘어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식감이 다소 질겨지고 맛도 떨어져갔다. 아래의 마지막 가지 수확을 끝으로 2022년도의 가지는 안녕!





가지 요리 중 단연 1등이었던 가지파스타. 좋아하는 요리 유튜버 혜니쿡 님의 레시피로 만들었는데, 정말 정말 맛있어서 여러 번 해먹었다. 쯔유 베이스라서 일식 느낌이 나는 파스타인데, 이탈리안 파스타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으로 여름에 잘 어울리는 산뜻한 맛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가지파스타가 먹고 싶어 얼른 올해 가지를 수확하고 싶을 정도.



가지 파스타와 같은 방식으로 가지만 요리해서 밥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심플하게 소금 뿌려 구워 알리오올리오에 토핑으로 올려 먹기도 하고, 여름을 꽉 채워준 각종 가지 요리들. 


어릴 때는 특유의 식감과 비주얼이 싫어 쳐다도 안 보던 나였는데, 한 번 가지의 매력에 빠지고 나니 끝이 없다.



한식 버전으로는 가지 강정, 깐풍 가지(중식인가?), 가지 무침, 가지전 등을 해먹었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을 가지 요리가 지배하던 날들. 개인적으로는 역시 무침이나 나물보다는 볶고 튀긴 가지가 더 취향이었다. 


가지 강정은 가지 본연의 달큰한 맛에 바삭달콤한 튀김맛이 더해져 맛이 없을 수 없는 메뉴였고. 굴소스, 물엿, 케첩 베이스로 매콤하게 버무린 깐풍 가지는 술안주 느낌이 나면서도 자극적으로 입에 착 붙는 맛이었다.



가지 파스타 다음으로 많이 해먹었던 가지 쌈밥! 마침 텃밭에서 난 깻잎도 넘쳐나던 터라 두 가지를 동시에 소진할 수 있는 메뉴로 즐겨먹었다.


양념장 비율만 맞춰서 만들어두면 가지는 썰어 굽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요리인데, 메인 메뉴로 손색이 없어 데일리 반찬으로 정말 좋았다. 깻잎에 가지 한 점 올리고 양념장 듬뿍, 청양고추 하나 얹어 먹으면 고기쌈 부럽지 않은 풍부한 맛.



맛도 백점, 비주얼은 만점이었던 가지 멜란자네. 멜란자네는 이탈리아어로 가지를 뜻하고, 이 요리의 풀 네임은 멜란자네 알 폴노(melanzane al forno) 이다. 통으로 구운 가지 위에 토마토 소스와 토핑을 얹어 만드는 요리로, 쉽고 간단한데 비해 굉장히 있어보이는 장점이 있다.


나는 주로 토마토 소스와 채썬 양파,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바질, 소금, 후추로 요리하는데, 토마토 소스와 치즈를 좋은 걸로 쓸수록 이국적이고 고급스러운 요리가 된다. 구워나오자마자 입에 넣으면 가지 채즙이 팡 터지는게 피자 부럽지 않은 맛! 


보통은 타원형으로 썰어서 하는데, 이 날은 특별하게 세로로 바나나 모양으로 썰어보았다. 별 거 아닌데 훨씬 맛있어 보인다. 손님 접대할 때 요렇게 해서 내놓으면 칭찬 좀 듣지 않을까? 


가지 멜란자네


올해의 가지도 착실히 잘 자라나고 있다. 작년의 교훈으로 올해는 모종을 하나만 심었는데, 무사히 주렁주렁 열매를 보여주길. 



마지막은 작년 여름 동안 우리 빌라에서 출산하고 아기를 키우며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에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던 엄마&아기 고양이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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