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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Feb 06. 2022

Gravity

"그런데 넌 그런 내 모든 곳에 있어."

그런 느낌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가까워지게 되고 이내 마음이 닿아 좋은 인연이 된다는 것은, '저 이제 연애합니다!'라고 말한다는 것은 서로의 안에 있는 각자의 세계를 마주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비슷한 사람은 있을지언정 완벽히 똑같은 사람은 없기에 첫 연애든, 닳고 닳아 베테랑이 된 후의 연애든 우리는 서서히 혹은 곤두박질치듯이 서로의 세계 속에 빠져듭니다. 사랑에 '빠진다'라고 하는 표현은 어쩌면 이렇게 서로의 세계 속으로 쑤욱하고 들어가 버리고 마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연애를 한다는 것은 그런 느낌이 아닐까 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서로의 모습을 닮아가게 되고, 중간에 헤어지더라도 상대의 일부는 내가 인지하든 못 하든 이미 나와 하나가 되어버린 채 내게 녹아듭니다. 대체로 나와 잘 맞는 부분이 녹아들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던 하찮은 모습일 수도, 심지어 싫어했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여느 때와 똑같은 하루가 지나갑니다. 저의 이 하루는 박복하고 고달픈 삶을 사는 어디의 누군가가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하루일지 모르겠지만 그건 내 알 바는 아닙니다. 그냥... 그냥 대부분 지루합니다. 비율로 따지자면 지루함이 80, 평범하거나 아무 생각 없음이 10, 즐거움이 10 정도입니다. 즐거움의 10은 대부분 퇴근 이후의 시간들이고, 고작 이 10으로도 사람은 80을 이겨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은 지루함이 30에서 50 정도로 감소하니 우리가 주말을 평일보다 더 즐거워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물론 언젠가 주 4의 시대가 온다면 이 부분에 대한 수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숫자놀음이 적용되지 않는 시간이 있습니다. 모든 시간이 지나가고 잠자리에 들면 그때부터의 나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됩니다.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왜 이런 생각이 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 내 모습을 쭉 돌아보는 것이 바로 저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는 일인데요.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은 보다 나은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일 텐데 제 글을 읽는 여러분은 도대체 그게 왜 엉망진창이 된다는 건지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면 제가 매일 돌아보는... 찾아내는 것은 제 스스로의 모습이 아니라 그날 하루를 살아낸 제게 묻어 있는 유리의 모습이라는 걸 내가 아직 여러분께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리의 생각을 하지 않으면... 유리의 모습을 찾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물어보실 수 있을 듯합니다. 좋은 지적이에요.


얼마 전에 본 건데 인간의 뇌는 부정의 개념이 없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예를 들어 여러분에게 치킨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순간 여러분은 치킨을 떠올려버리기 때문에 뇌한테 뭔가를 하지 말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유리의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저는 유리의 생각에 파묻혀버리고 맙니다. 한동안 생각에 휩싸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문득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생각을 안 하려고 하기보다 유리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 생각의 방향을 돌려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습니다. 생각에 집중한다는 것은 관점의 차이라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길을 갈지는 스스로가 선택하는 거라고 하지만 나의 어떤 생각에서도 어떤 길에서도 어떤 모습에서도 나에게는 유리가 진득하게 묻어 있고 나는 그런 유리를 찾아내고야 맙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요. 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걸까요.


여하튼 그렇게 일상 속 지루함과 즐거움의 힘싸움이 무색해지게 매일 밤 나는 무너집니다. 근데 또 완전히 부서져버리느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딱 어떤 선까지만, 와르르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무너지고 부서져 버립니다. 그런 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언제 무너졌냐는 듯 일어나 또 하루를 살아갑니다.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존재가 그렇게 나를 흔든다면 내가 무너지기 직전의 임계점을 그렇게까지 정확히 알 수 없을 테니 어쩌면 매일 나를 붙잡고 흔드는 건 나 스스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마 이게 맞는 것 같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제가 제시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까지 그리우면 찾아가서 만나보면 되지 않냐고요? 만나주지 않더라도 먼발치에서라도 얼굴이라도 보고 나면 마음이 조금 낫지 않겠냐고요? 이것도 좋은 지적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두 개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지루함과 즐거움 그 사이 어디쯤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세계, 다른 하나는 어두컴컴한 잠자리에서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생각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세계. 10의 즐거움이면 80의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지만, 대체 뭘 얼마만큼 가져와야, 뭘 얼마나 준비해야 유리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요? 아마 운동에 집중해보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보라는 조언이 아마 가장 떠올리기 쉬운 조언일 것입니다. 조언에는 감사 말씀을 드리지만 놀랍게도 앞서 이야기한 10의 즐거움에서 운동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운동은 유리를 만나기 이전부터 꾸준히 해 오고 있었던 저의 훌륭한 일당백 스트레스 해소 수단입니다. 더불어 지금 저는 다른 사람을 소개받아 잘 만나고 있으며, 함께 하는 시간도 꽤 즐거운 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에 밀려드는 어두운 것들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듯 첫 번째 세계에서 겪는 일들은 두 번째 세계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더군요. 하지만 반대로 두 번째 세계의 일들은 가끔 첫 번째 세계에 종종 영향을 끼치려고 하기에 저는 그때마다 이를 악물고 그것을 막느라, 그곳에 완전히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 하곤 합니다. 무너져버리기엔 제가 첫 번째 세계에서 쌓아 온 것들이 꽤 많거든요. 그건 그렇고 유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첫 번째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일 텐데 왜 그 방법은 시도해보지 않냐고요? 음... 당신은 집요하거나 눈치가 없는 사람이군요. 제가 위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교묘하게 다른 이야기로 넘겼음에도 굳이 그 점을 되물으신다면 나는 굳이 되새기고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은 사실을, 유리가 더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께 알려드려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유리는 나의 두 세계 중 그 어디에도 없지만 나는 언제나 모든 곳에서 유리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우리는 서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 가르쳐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이기에 몰라도 어떻게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만 서로의 세계 속에서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입니다. 서로의 세계를 만나고 알아버린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세계를 만나기 전의 우리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 곡, 그래비티를 들었을 때는 참 바보같이 사랑하고 또 많이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적인 가사, 그리고 중력이라는 자연법칙이 주는 느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문&이과의 콜라보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이 노래를 다시 들었을 때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력은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 실체를 눈으로 볼 순 없습니다. 다만 중력이 일으키는 여러 자연현상들을 볼 뿐이지요. 이처럼 노래 가사 속 나도 어떠한 이유에서든 지금 존재하지 않는 상대방을 그리워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다만 내 곁에 없어 만날 수 없고 볼 수 없는, 존재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이끌릴 뿐입니다. 마치 중력처럼요.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헤어져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살아있지 않다는 의미로도 생각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 생각에서 출발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해서 쓰던 기존과는 다른 100%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번에 한 번 다룬 노래인데 조금 다르게 써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근데 제가 카톡이랑 술자리에서는 소설을   쓰는데 막상 써보려니 마음처럼  되네요. 그동안 운동에 빠져 사느라   버릇하는  소홀히 했는데 앞으로 종종 다시 뭐든 이것저것 끄적여 보겠습니다.




※의역으로 가득 찬 가사입니다. 반박 시 대체로 당신 말이 맞습니다:)


[Sara bareilles - Gravity]


Something always brings me back to you

항상 뭔가가 나를 네게 다시 데려가


It never takes too long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지.


No matter what I say or do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뭘 하더라도


I'll still feel you here'til the moment I'm gone

나는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이곳에서 널 느낄 거야.


You hold me without touch

너는 만지지 않고서도 나를 붙잡고 있고


You keep me without chains

사슬 없이도 나를 묶어두고 있어.


I never wanted anything so much than to drown in your love and not feel your rain

너의 사랑에 흠뻑 젖어서 네가 비처럼 내리는 것도 못 느끼는 것. 내가 그렇게나 원하던 건 그뿐이었는데...



Set me free

나를 놓아줘.


leave me be

나를 내버려 둬.


I don't want to fall another moment into your gravity

너에게 이끌려 또 다른 순간으로 빠져들고 싶지 않아.


Here I am and I stand so tall just the way I'm supposed to be.

난 여기 이렇게 내가 있어야 할 모습으로 당당히 서 있는데...


But you're on to me and all over me

그런데 넌 그런 내 모든 곳에 있어.



You loved me'cause I'm fragile

부서질 것 같은 나를 사랑한다고 했었지.


When I thought that I was strong

난 내가 강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But you touch me for a little while

하지만 네가 아주 잠시만 나를 만져도


and all my fragile strength is gone

내 연약한 힘은 사라져 버리더라.



 Set me free

나를 놓아줘.


leave me be

나를 내버려 둬.


I don't want to fall another moment into your gravity

너에게 이끌려 또 다른 순간으로 빠져들고 싶지 않아.


Here I am and I stand so tall just the way I'm supposed to be.

난 여기 이렇게 내가 있어야 할 모습으로 당당히 서 있는데...


But you're on to me and all over me

그런데 넌 그런 내 모든 곳에 있어.  


I live here on my knees as I try to make you see that you're everything I think I need here on the ground

나는 여기 무릎을 꿇은 채 네가 내게 필요한 전부라는 것을 네가 알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But you're neither friend nor foe though I can't seem to let you go

넌 내 편도 적도 그 무엇도 아니지만, 난 너를 보내줄 수가 없을 것 같아.


The one thing that I still know is that you're keeping me down

내가 여전히 알고 있는 것 하나는 네가 나를 붙잡고 있다는 거야.


keeping me down

날 붙잡고 있다구..



Something always brings me back to you

항상 뭔가가 나를 네게 다시 데려가.


It never takes too long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Sara bareilles 데뷔 앨범 'Little Voice' (200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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