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5년 안에 일어날 조금은 무서운 사실
이건 나만의 생각은 아니고 많은 분들이 이미 예측하고 있는 것으로 나도 실제로 그렇게 될 것만 같아서 안일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기록하는 글이다. 사실 조금 무섭거든.
어릴 적 나는 작은 동네에서 자랐다. 큰 도시에 있긴 했지만 내가 지냈던 환경은 그 속 작은 동네였고 행복하게 누릴 거 다 누리며 부족함 없이 자랐다. 본인들의 젊은 시절을 어렵게 사셨던 부모님이 늦게 낳은 하나뿐인 외동딸에게 만들어 주고 싶은 환경이었을 거다.
하지만 고향을 벗어나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면서 나의 작았던 세상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세상이 얼마나 작았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이 자라 온 환경이 궁금했고, 그들이 살아온 세상이 궁금해졌다.
서울살이 20년을 채운 지금의 나는 더 많은 세상을 알게 되었고 한국을 벗어나 해외에서의 삶도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요즘 다시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우리 아이들의 삶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맞이했을 때 내가 겪었던 작은 방황을 알고 있기에 아이들에게는 어릴적부터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 더 깊게 고민을 하는 것 같다.
세상은 늘 누군가에게는 기회를 주고 또 누군가에게는 시련을 준다. 물론 지금은 알고 있다. 이건 '운'이라는 영역으로 보기보다는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기회이기도 시련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난 10여 년간 돌이켜보면 나의 삶에도 많은 기회들이 존재했다. 그중에는 준비가 덜 되어 놓친 기회들이 있었고 운 좋게 손에 쥔 기회들도 있었다. 그렇게 살면서 했던 몇 건의 굵직한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주변에 넘쳐나는 성공사례들을 보며 속이 쓰린 적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기에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기도 한 10년이었다.
그런데 만약 내가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까?
사실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까 10년 전의 나도 미래의 10년을 바라보며 선택을 하진 못했을 거다. 당장의 갖고 있는 정보와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때의 선택이 좋았다, 나빴다 얘기할 수 있는 거지 그 당시에는 잘 모르지만 일단 베팅을 하는 심정으로 했던 선택이 아니었을까.
자, 그럼 이제 나름의 데이터가 쌓인 지금. 어떤 뷰를 가지고 앞으로의 10년을 살아갈 것인가. 이 10년은 우리 아이들에겐 학창 시절의 전부일 거고 '배움'이라는 영역에서 본다면 골드타임이라고 봐야 한다. 부모인 내가 하는 선택들이 이 친구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해진다. 요즘 자꾸만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게 그 속에서라도 힌트를 좀 얻고 싶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선구안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며 아이들에게 좋은 길을 제시해 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있겠냐만은, 난 그저 평범한 한 인간일 뿐이고 10년 후의 미래는커녕 당장 다음 내년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아마도 유튜브 어딘가에서 들었던 얘기가 남아있는 것일 수도 있고 남편과의 대화에서 나온 얘기일 수도 있는데 자꾸만 떠오르는 걸 보면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의 세상은 감히 상상도 못 한 삶이 펼쳐질 것 같다는 거다. AI가 본격 우리 삶으로 침투한 것을 챗GPT의 등장이라고 본다면 겨우 3년여밖에 지나지 않았단 사실을 알고 있는가. 기술의 발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심지어 전 세계 모든 자본이 AI를 향하고 있기에 속도는 더욱더 빨라질 거다.
세상이 정말 너무나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내가 감히 예측할 수 있을까. 이 격한 변동성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길일까.
그렇게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왔던 한 소시민으로서 내린 결론은 이거다.
극한의 변동성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는 자유도를 높여두는 것.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체력을 마련해 두는 것. 그게 전부인 것 같다. 그 뒤에 얼마나 현명하게 선택을 하는지는 살아가면서 대응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살아오면서 해왔던 선택 중 후회되는 것들은 그때의 내가 감당할 여력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한 경우였다. 물론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무리를 하며 베팅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 정도의 배짱은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준비라고 한다면 나의 체력을 키워두는 것. 말 그대로 신체의 체력이든, 자본의 체력이든, 혹은 지식의 체력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그리고 조금은 무서운 얘기이지만 그 알 수 없는 미래인 10년이 지금의 발전 속도로 본다면, 어쩌면 5년으로 당겨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얘기를 하자면, 우리 아이들의 세상을 넓어주기 위해 부모인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겨우 5년밖에 주어지지 않을 거란 얘기다.
앞으로 5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변화가 큰 시간이 될 것이지만 AI의 발전이 어느 정도 완성된 이후에는 그 변동성이 극도로 줄어들 것 같다. 변동성이 없는 세상에서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이 단순히 노력만으로는 힘들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전에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 준비를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