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분기 회고

숙제 한다고 잠을 안 잘 수는 없잖아요?

by 아리당스

육아를 위해 내 인생을 바치겠다는 생각은 감히 해본 적도 없고 그럴만한 깜냥(?)도 안 되는 사람인지라 언제나 할 수 있는 만큼 적당히 하는 쿨한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작년 퇴사를 하고 전업맘으로 지내기 시작하면서 사실 내가 이렇게 아이들 교육에 무심해도 되나 하는 약간의 죄책감 같은 것이 생겨났지만 부지런히 자라나기만 해도 바쁜 아이들을 두고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유치원에서도 딱히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어 보였다. 그냥 약간의 인간스러움을 갖추는 데에 집중하는 느낌이랄까. 나도 그래서 생활습관을 바로잡는 데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약간의 사회화만 된 채로 6살이 되었다. (물론 완벽하지은 않지만) 밥을 스스로 먹고 옷을 스스로 입고 화장실을 혼자 가고 동네 주민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할 줄 아는 작은 인간 정도면 적당한 표현인 것 같다. 여전히 우리 아이들이 글자를 읽을 줄 몰라도, 숫자를 제대로 못 세어도 난 괜찮은 엄마였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크면 다 하게 될 텐데.




그런데 6살이 되고 나니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바라는 바가 급격히 많아졌다. 소위 말하는 '숙제'라는 것이 생긴 건데 그 숙제의 양이 내 예상과 너무 달라서 과연 숙제를 제대로 다 할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 싶을 정도다. 우리 아이들은 하원 후 학원 하나를 갔다가 보통 6시쯤 집에 와서 8시에 잠에 든다. 그러니까 2시간 안에 저녁 먹고 씻고 놀고 추가로 숙제까지 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능한 것 같은가?


당연히 필수로 해야 하는 저녁 먹기, 씻기가 우선이고 놀기나 숙제하기는 하는 날도 있고 안 하는 날도 있는 일관성 없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커갈수록 아이들의 놀이 세계도 확장되는데 그것을 다 충족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아침마다 유치원을 가지 않고 집에서 놀고 싶다고 떼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유치원에서의 일과도 작년보다 늘어난 프로그램을 소화하느라 지친 기색이 그대로 전해져서 내가 지향하던 바와 뭔가 조금은 다르게 흘러가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답답한 마음에 원래는 다른 엄마들과 교류를 잘 안 하는 편인데, 요즘은 만나면 이것저것 물어본다. "OO 이는 숙제는 다 하나요? 너무 많지는 않나요? 언제쯤 자요?" 한참을 질문 폭탄을 쏟아붓고 나면 어느샌가 조용히 상대 엄마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몇 명의 아이친구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느낀 점은 이렇다.


- 대부분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고 진지하더라. 그동안 나만 육아가 생존이었나.

- 같은 '숲 속'유치원을 다니지만 다들 나처럼 마냥 뛰놀았으면 하는 마음에 보낸 건 아니더라(가장 놀라웠음).

- 내가 올해 처음 시작한 사교육을 이미 몇 년 전부터 경험한 아이들이 많더라.

- 아이들이 자기 이름 정도는 이제 다들 쓰더라.




아니 다들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오시는 거죠...?

이제서라도 내가 그들의 대세의 흐름에 살짝이나마 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아니면 정말 발등에 불 떨어졌으니 정신 차리고 아이 교육에 바짝 열을 올려야 하는 걸까.


여러 고민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던 3월이었다.

올해 초, 이 브런치 연재를 시작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치고 싶은 것들을 정하고 그에 맞게 사교육을 시작했다.

https://brunch.co.kr/@aristories/47

다른 것보다 언어는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기에 한국말은 곧잘 뱉으니(?) 영어노출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에 태권도 학원 수업을 줄이고 영어 학원을 끼워 넣었다. 초반에는 좀 적응하기 어려워했지만 몇 달 지나고 나니 조금씩 발화의 낌새가 보이는 중이다. 일부러 좋아하는 영상은 영어버전으로 보여주고 흥미를 잃지 않도록 엄마인 내가 집에서 간단한 표현들은 자꾸 영어를 쓰면서 친숙해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추가로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금융지식과 AI는 아이들이 아직 좀 어리다는 판단에 아주 조금씩 얘기를 해주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돈에 대한 의미를 알려줘도 될 것 같아서 좋아하는 뽑기를 할 때 현금을 주면서 돈의 크기와 교환의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설명하는 나 조차도 사실 좀 난감했는데 의외로 아이들은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지난 주말, 아빠와 아침산책을 다녀오며 빵을 한 아름 사온 아이들이 질문을 했다. "엄마, 왜 빵을 살 때는 카드를 줬다 받아요? 뽑기 할 때는 동전을 넣었는데." 아이들 눈에는 돈이라는 걸 줘야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까지는 이해를 했는데 카드는 주는 게 아니라 다시 돌려받는 게 신기했나 보다. 카드결제라는 시스템을 이해시키기 위해 은행, 통장, 신용카드와 선구매 후결제 시스템까지 한참을 얘기했다. 당연히 아이는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일단 돈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 뭐가 맞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첫 번째 브런치 연재 글 말미에 언급했듯, 부모로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고는 했지만 자꾸만 흔들린다.


주말 영어 뮤지컬 문화센터 수업을 갔는데,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영어유치원을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 아이들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될 때.

키즈노트 속 다른 아이들이 학습지에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써놓은 것을 발견했을 때.

아이들 같은 반 친구는 미술, 수학(사고력), 한글, 영어 등 다양한 사교육을 받으면서 유치원 숙제도 완벽히 해가는 모습을 봤을 때.


매번 조바심이 가득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조금은 더 내 방식대로 밀고 나가보자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글자 쓰기를 서두르는 것보다는 일상 속에서 더 많은 말을 건네보는 것으로, 숫자 연산법을 알려주는 것보다는 실생활에서 숫자가 어떻게 쓰이고 왜 알아야 하는지 아는 것부터, 바른 자세로 공부습관을 기르는 것보다는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며 호기심 가득한 자세부터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2026년 2분기까지 보내고 나면 나름의 진행사항에 대한 결과를 확인해 볼 계획이다. 그동안 사내 녀석들 둘 데리고 해외여행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꿈도 못 꿨는데, 올해는 한번 도전해 볼까 한다. 다른 나라에서 왜 영어가 필요한지, 돈에 대한 개념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AI를 활용해서 여행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다는 점들을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닫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때 되면 알지 않을까, 내 교육의 방향성이 맞는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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