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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조 Dec 04. 2024

비상계엄령을 겪는 언론인의 소회

한국인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아직 사건이 모두 정리되지 않았습니다만,

오늘 새벽녘에 있었던 비상계엄령 선포의 모든 것을 지켜본 언론인으로서

지금 이 순간의 소회는 남겨두려 합니다.



저는 집에 있던 22시 30분 경

비상 계엄이 선포되었다는 것을 보도를 통해 인지하고

우선 실시간 생중계 뉴스와 각종 신문 보도를 보며 사태 파악을 했습니다.


기사를 보는 내내

정말 이것이 실화인지,

대통령이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인건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저는 한 번도 비상계엄령을 겪지 않은 세대로서

이 사태의 심각성을 온전히 알 수는 없었지만

고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민주화 운동 영상들은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흑백 영상 속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작은 몸을 던져 민주화를 부르짖고 있었고

총포와 최루탄 연기 속을 헤치며

불의를 막고 싶어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면

단연 '생명'이겠지요.


단 하나의 생명을 세상에 내놓고

옳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마음은 대체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을지

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계엄령 선포 이후 회사에서 출근 공지가 떨어지는 순간에서야

저는 분명히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요.

(언론사는 긴급 사태 보도를 위해 새벽이라도 출근합니다)


영상쪽 인력인 저는

우선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는데요.


당시 여의도 근처 저희 집 위로

헬리콥터들이 날아 국회의사당으로 날아가고 있었고

공기를 쳐대는 헬리콥터 날개 소리가 온방을 웅웅 울리는 통에

잠이 들긴 커녕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온몸에 '전쟁', '독재', '군부'라는 활자들이 지나가며

세포 하나하나가 오돌토돌하게 서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국회의사당 쪽으로 가야하는지,

회사의 오더에 따라 기다려야하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언론을 하겠다고 한 사람이 집에 있어도 되는건지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출처는 뉴시스



실시간 방송에서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하기 위해

창문을 깨는 모습이 나오자

저는 기도하며

제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다시 독재정부가 들어서고

군인들이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어 죽이고

언론이 입막음 당하는 그 모든 역사 속 이야기가 되풀이될까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어떻게 대피해야할지

해외를 간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여권이 없는 부모님은 어디로 가셔야 하며

나의 친구들과 동료들을 지켜줄 방법은 없는 것인지

이기적이게도 저는

저에게 가까운 사람들을 우선 걱정습니다.


그리고 새벽 1시 1분

비상계엄 해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 되고서야

조금 안도했습니다.



대통령이 조금,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많이 허술한 사람이어서 다행이었을까요.

아직도 대통령이 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랬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만

어젯밤 적어도 정상의 범주에 들어있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새벽 4시 47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비상 계엄은 해제되었고

그제서야 저는 팀원들에게

"주민등록증을 꼭 소지하시고 정시 출근하시면 된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군인이 무력진압을 통해 이 나라를 장악한 것이

5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모든 것이 다 괜찮아졌고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라고 자찬했습니다.


저는 오늘 그런 말들이 참으로 하잘것 없다고 생각하며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영혼들에 대한 험한 말을 하는 이들이

진심으로 밉습니다.







우리는

많은 분들에게 오늘의 평화를 빚졌습니다.

제발 이 평화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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