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간송미술관에 다녀왔다. 간송 전형필은 24살 때 할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거부가 되었다. 그 돈으로 조선의 국보급 문화재들을 수집했다. 모아진 문화재들로 서울에 사립 미술관을 세웠다. 엄혹한 일제시대에.
대구에는 2024년 9월에 세워졌는데 이제야 갔다 왔다. 서울 미술관은 4월-5월, 9월-10월에 연다. 대구 미술관은 상시 전시관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다. 판매자가 당시 가격으로 1,000원만 달라고 했다. 간송은 제 값을 치러야 한다며 10,000원을 주었고 추가로 1,000원은 수고비로 주었다(부가세 별도?). 만원은 당시 집 10채 값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아무리 돈이 많고 국보급 문화재라고 하더라도 서울 아파트 10채 값을 내줄 사람이 얼마나 될지.
쇳복이 있다. 는 말을 안다. 쌔복. 쌔뽁. 이라고도 한다는데 돈복이 있다는 뜻이다. 인생의 성공은 대부분 운이라던데 간송을 보면 돈을 어떻게 쓸 줄 알아야 쇳복도 붙는 거구나 싶다.
‘희망가’라는 1930년대 유행가가 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로 시작했다가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고 좋기만 하겠는가. 그렇다고 담소화락談笑和樂, 주색잡기酒色雜技에 침몰하겠는가.‘로 끝나는 노래다. 그때에도 돈을 제대로 쓸 줄 몰랐던 사람들이 많았었나 보다.
어디에, 어떻게 재화를 써야 할까. 지금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우습고, 답을 내리기도 어렵다. 간송을 보니 역사와 사람에 활용하는 것이 가장 잘 쓰는 게 아닐까 싶다. 간송 시절 조선총독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간송의 이름은 아직도 남아있다니 정말이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