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강제로 끄면 행복해지나요?
워라밸은 라이프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워크와 라이프가 대립항처럼 보이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워크는 라이프와 대립하지 않는다. 워크는 라이프 안에 있다. 자본주의 안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은 삶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워크는 라이프와 싸워야 하는 게 아니라, 워크와 라이프는 함께 공존해야 한다.
레이 달리오의 책 «원칙»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책의 표지에는 짙은 검은색 배경이 있고 하얀색 글씨로 PRINCIPLES라고 쓰여있다. 부제목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표지에서 부제목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의 부제목은 짙은 빨간색으로 쓰여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었다. 부제목은 LIFE&WORK다. 레이 달리오가 살면서 그리고 일하면서 겪은 크고 작은 실수, 그리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원칙에 대한 책이다.
좋은 원칙들이 많이 나온다. 워라밸과 관련하여 인상 깊은 구절을 꼽자면, '출장을 갈 때 아이와 함께 간다'는 부분이다. 워크와 라이프를 어떻게 싸우지 않고 공존시킬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 요소가 일, 사랑, 놀이라고 생각한다. 이 3가지 요소를 균형감 있게 분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일은 4시간, 놀이는 4시간, 사랑은 4시간으로 나누면 삶이 행복해진다고 믿지는 않는다. 균형이 중요한데, 똑같은 비중으로 나눠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균등 분배가 평등이 아닌 것처럼.
일, 사랑, 놀이가 내 일상 안에서 균형감 있게 공존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어떤 기준으로 균형을 맞춰야 하는가? 잘 모르겠다. 근데, 레이 달리오의 책에서 조금 힌트를 얻은 것 같다. 교집합을 만드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사랑) 출장(일)을 가는 것처럼 말이다.
덕업일치도 중요하다고 본다. 일과 놀이의 교집합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좋아하는 게 일이 되고, 일이 됐을 때도 계속 좋다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을 것 같다. 함께 일하는 동료를 사랑하는 것도 좋겠다. 일과 사랑의 교집합을 만드는 거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멋지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취미 생활을 함께하는 것도 좋겠다.
모두가 하루 8시간만 일해야 하는 건 아니다. 모두가 야근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전기차 회사 테슬라를 운영하는 일론 머스크는 주당 100시간씩 일하라고 한다. 물론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고 단서가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100시간은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일하고 싶으면 그렇게 일하면 된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꼭 세상을 바꿀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배우자를 잘 만나고 내 아이 잘 키우는 게 중요할 수도 있고, 취미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며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개인의 선택이다. 밸런스를 어떻게 잡을지는 자신이 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기준은 내면의 욕구다. 일, 사랑, 놀이를 내가 어느 정도로 원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에 맞게 밸런스를 정하는 거다. 100시간 일하는 것도 틀린 게 아니고 35시간 일하는 것도 틀린 게 아니다.
100시간도 좋고, 35시간도 좋고 잘 선택하길 바란다. 다만 평범해지려 노력하지는 말자.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렵다. 사회에서 말하는 평범함에 나를 맞추려고 하면 끝이 없다. 이미 우리 사회에선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꿈이다. 가만히 있으면 평범해지는 게 아니고, 노오력을 해야 겨우겨우 평범해질 수 있을까 말까다. 간단한 예로,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서울 근처에 사니까 서울 근처에 사는 게 평범한 일이다. 근데 서울에 집 마련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제 평범함의 조건에 워라밸이 추가되는 느낌이다. 야근 없이 적당히 일하고도 적당한 월급을 받아 서울에 살 수 있어야 한다. 어렵다.
그런 평범함의 조건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파악하려 노력하는 게 좋겠다. 내면의 욕구를 바라보고 내가 어떤 걸 원하는지 파악해서, 그에 맞게 일하고, 그에 맞게 사랑하고, 그에 맞게 놀았으면 좋겠다. 6시가 되면 컴퓨터가 꺼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칼퇴를 한 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칼퇴가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그렇다고 야근이 무조건 정답인 것도 아니다. 정답은 없다. 선택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