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을 좋아한 내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교회 언니네 집에는 책이 많았다.
세계명작 시리즈 같은 게 있어서 근처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 당시 세계명작 전권이 있다는 것은 꽤나 부유한 집으로 분류됐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엄마는 책을 팔러 온 한 아주머니에게 넘어가 과학 전집을 구매했다. 비싼 전집을 아빠와 상의 없이 구매해서 아빠에게 한 소리 듣긴 하셨지만 그래도 엄마는 우리가 그 책을 읽고 멋진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과학 전집은 컬러북으로 질도 좋았고 사진도 멋있었지만 사실 내 동생도 나도 전권을 다 읽지는 못했다. 무척 지루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책을 많이 읽었다는 기억은 없다. 그냥 연애 소설 정도 몇 번 읽었을까. 나는 책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인지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냥 책을 읽는다는 그 모습이 너무 우아해 보였다. 지적으로 보였다고 할까? 그래서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책을 들고 다녔다.
일기 쓰기를 좋아하고 다이어리 쓰기를 좋아하면서 여전히 책 구경을 좋아했다. 읽지 않아도 가끔 책을 사서 서점에서 나올 때면 이미 책을 읽는 지식인이 된 듯 책을 가슴에 품고 걸음을 좀 더 똑바르게 걸어가곤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리고 아이들이 좀 자라난 이후에도 항상 나는 비슷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멋져서 그 모습을 그저 따라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가끔은 책을 좋아해요 하고 이야기하면서도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막상 정말 책 읽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친한 동생이 내게 물었다.
"언니. 한국 가면 뭘 제일 하고 싶어?"
"응. 난 서점에 가고 싶어. 책을 구경하고 문구류를 사고 그러고 싶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했다.
얼마 전 남편이 내게 물었다.
"여보. 이번에 누가 인도로 오시는데 혹시 뭐 시킬 것 없냐고 물어보는데."
그 순간 나는 내가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던 책들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책을 든다.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상황과 사람들을 잊고 책 속에서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느낌이어서 꼭 여행을 하는 것 만 같다.
오늘도 여러 가지 문제들로 마음이 힘들었다.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고 책을 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나를 위로하고 내 문제들에서 떠나 작가와의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도 힘들고 지칠 때면 나는 조용히 나만의 공간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의 안온함은 언제나 내 삶을 무너지지 않게 하는 단단한 장막이 되어준다." - <은둔의 즐거움>, 신기율
나는 이 은둔의 즐거움을 책을 읽으며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교 때부터 독서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왔다면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진짜 독서쟁이가 되었다.
진짜 책을 읽는 사람이 되는데 긴 시간이 걸린 셈이다. 역시 바라는 대로 된다고 했던가. 독서하는 모습이 그저 멋있어서 책만 들고 다니던 내가 이제는 진짜 독서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책을 내가 읽을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책 읽는 할머니로 불리고 싶다.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책을 읽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