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와 아마추어, 그 사이 어디쯤에서.
20대 나의 가장 큰 수입원은 주로 통번역과 방송 코디였다. 학생 신분이 길었던 나에게 단타로 치고 빠질 수 있으면서도 꽤 묵직한 벌이가 되었던 이 두 가지는 부모님께 용돈은 못 드릴지언정 매번 부끄럽게 손을 벌려야 했던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 되어주었다. 주로 내게 들어왔던 통역일은 각종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해외로 이른바 견학을 오는 경우 네덜란드 측에서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의 순차 통역이었다. 보통 짧게는 반나절에서 길게는 며칠의 일정 동안 영어에서 한국어로 통역하는 일을 맡다 보면 손님들은 나를 주로 “통역사님”이라 부르곤 했다. 어릴 적 통역사를 꿈꾼 적도 있었고 일을 하다 보니 노하우가 늘어서 나름 노련하게 통역을 할 수 있었다 해도 정식 통역 공부를 하지도 않은 나를 “통역사”라 부를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몸 둘 바를 몰랐었다. 물론 그들이 나를 부를 만한 다른 호칭이 딱히 없었기에 그리 칭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프로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부끄러웠던 것 같다.
나는 자존감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적어서 인지 내가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부족하다는 생각을 먼저 갖는다. 그래서 무엇이든 시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쩌다 시작을 한 일이라도 나는 이 일을 맡기엔, 혹은 프로라고 하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을 늘 갖고 살았다. 호칭이란 것, 또는 직책이란 게 큰 의미가 없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어떤 라벨을 붙이는 것처럼 큰 의미를 갖는다.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학생이라는 라벨을 뗀 그 순간부터는 스스로를 무엇이라 소개해야 할지 참 난감했었다. 그래서 한동안 소셜미디어의 자기소개란을 공란으로 둔 적도 있다.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앞으로 디자이너를 할 생각은 없기에 디자이너는 아니고, 회사에서 내 이름 앞에 붙은 직책은 있지만 그 직책을 나의 정체성으로는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인간은 아닌데. 차라리 제발 누가 나에게 라벨을 좀 붙여줬으면. 직책이 이름 앞에 붙는다는 것은 나에게 프로냐 아마추어냐에 대한 자문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흔히 프로페셔널을 줄여서 프로라 칭하는 프로, 그리고 그 반대를 뜻하는 아마추어. 우리는 그럼 언제 프로가 되고 언제까지 아마추어인 걸까?
프로 (professional)
명사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
아마추어 (amateur)
명사
예술이나 스포츠, 기술 따위를 직업으로 삼지 않고 취미로 즐기는 사람.
한국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프로란 어떤 일을 전문적,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 전문적이라는 말이 프로의 유의어로 쓰이는데, 전문적이라 함은 어떤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오직 그 분야만 연구하거나 맡는 것을 뜻한다. 직업적으로 한다는 것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전문적인 것과 직업적인 것은 이론적으로는 유의어 일지 몰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선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떠한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라 해도 그 일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는 그와 반대로 매우 전문적이지만 그로 인한 수입은 거의 없는 경우도 꽤 있다. 우리는 전자를 프로답지 못하다 하지만 그 말은 곧 그는 “프로답지 못한 프로”라는 뜻 아닐까? 후자를 프로 같다 하지만, 그 말은 "마치" "프로 같은 아마추어"라는 뜻 아닐까?
Professional
noun
- a person who has the type of job that needs a high level of education and special training.
- someone who has worked hard in the same type of job for a long time, and has a lot of skill and knowledge.
- someone who does an activity or a job to earn money, rather than as a hobby.
Amateur
noun
- a person who takes part in an activity for pleasure, not as a job
- someone who does not have much skill in what they do
두 단어가 유래된 영단어의 뜻을 살펴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프로의 뜻은 영문 정의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의미에 해당한다. 어떤 행위를 통해 수입이 있으며 오랜 기간 종사하여 그에 관한 기술과 지식이 많은 사람을 뜻한다. 반면 아마추어의 경우에는 한국어 정의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취미로 한다는 것 외에도 어떤 기술에 부족함을 뜻하기도 한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마추어같이 왜 그래?라는 말에는 그가 맡은 일에 대하여 기술이 떨어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곧 아마추어 같은 프로, 즉 프로답지 못 한 프로라는 뜻이니, 비록 그가 아마추어 같다 하더라도 프로는 프로인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막차를 타고 있는 나는 내 직업, 즉 생계유지 수단으로써의 직업을 나의 평생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것이 나의 자아정체성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당장에 금전적 보상은 없을지언정 내 직업 외에도 다른 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편이다. 이미 서른이 넘은 나이여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나에게 정신적으로 만족감을 주는 일을 추구하며 살고 싶고, 내가 맡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감을 갖고 임한다. 내가 프로로 인정받고 싶다는 의미는 어떠한 일을 통해 수입이 생기는 것보다도 내가 열정을 가진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에 대한 인정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런 인정은 사전이 제시하는 프로의 정의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세대에게 프로와 아마추어로 나뉜 이분법적인 사고는 더 이상 맞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취미가 직업이 되고 또 직업을 취미처럼 하고 싶은 나는 아마추어 같은 프로가 되고 싶고 프로 같은 아마추어가 되고 싶다. 아마 나는 프로와 아마추어 그 사이 어디쯤, 또는 프로와 아마추어 두 가지가 섞인 그 경계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건지도 모른다.
[May, 2021]
이 글은 햇-마:당 에디션 Scrambled 에 소개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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