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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Nov 15. 2022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아!

(4일의 출장 중 첫째 날)

함께 일하는 컨설팅 업체의 담당자는 나를 보자마자 "강사님~ □□ 연수원에 두고 간 코트 가져왔어요~"라며 옷을 건넨다.

"아휴~~~ 옷 챙기느라 번거로우셨죠?? 정말 감사해요"

그렇게 나의 코트는 5일 만에 다시 돌아왔다.


(4일의 출장 중 둘째 날)

'아~~~ 밖에서 밥 먹고 싶은데~~~~'

조용히 홀로 밥을 먹고 싶던 나는 차를 끌고 연수원에서 빠져나왔다. 즐비한 식당거리를 돌다 메뉴를 선택한 나는 식당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어머나~ 국내산 뼈다귀라 맛있는 건가~~ 이거 먹고 가는 길에 건전지 사고, 주유하고 숙소로 들어가야겠다! 크~~~ 내일 준비하는 이 프로정신~~~ 역시!!!!'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와 걸어가는데 머리가 멍해진다. '차가 어딨더라???' 워낙에 길치인지라 '직진만 하면 된다'를 되뇌이며 왔는데 여긴 어디란 말인가??? 괜히 건전지 산답시고 편의점을 들어간 게 화근이었다. 중간에 뭐가 끼어들며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나는 얇은 정장으로 20분 가량을 헤매었고, 눈가에 슬슬 뜨끈한 물들이 고이기 시작했다. 괜스레 서러웠는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내 차 어딨어?" 상황 설명도 없이 불쑥 튀어나온 말...

남편은 기가 찼는지 "야! 내가 니 차가 어딨는지 어떻게 알아? 식당에 주차한 거 아니야?"라고 되묻는다.

잠깐의 정적의 흐른 뒤 "한나야!!! 어플로 검색해봐. 3킬로 미터 안에 있으니 차가 어딨는지 지도로 보여줄 거야. 그거 찾아서 가면 돼!"라는 말과 함께 검색 방법을 카톡으로 전송해주었다.

다행히 내가 있는 위치부터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주는 어플 덕분에 숙소로 돌아왔다.

쉬고 싶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나는 숙소 바닥에 앉아 크게 한숨을 내쉰다.

집에 있을 때면 딸아이의 떠드는 소리가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혼자만의 공간이 쓸쓸하기만 하다. 말소리라도 듣고 싶어 리모컨을 들어 TV를 켜는데 망할 놈의 TV가 10초만 나오면 꺼져 버린다. "아이씨!!!! 모야!!! 왜 안 나오는데? 아니다... 피곤하니 빨리 자란 뜻인가 보다... 일단 씻자!!"

뜨끈한 물로 목욕을 하니 이상하게 목이 말라온다.

바로 앞 복도에 정수기가 있으니 물을 떠 와야겠다 마음먹고 물병을 들고

나왔는데!

나왔는데!!!

나왔는데!!!!!


"아 맞다!!!! 카드키!!!"

'개의 카드키가 몽땅 방 안에 있는데ㅜ 핸드폰도..  게다가... 헐!!!! 내 옷차림...'

그렇게 핑크 잠옷과 하얀 구두를 신은 나는 누가 볼까 무서워 재빨리 관리동으로 넘어가 당직실을 찾았다. 나를 본 직원은 잇몸까지 드러내며 환하게 웃더니 "이런 일 자주 있어요"라는 말로 내 민망함을 덜어주었다. 다행히 단 한 명의 교육생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들어오자 마자 폰으로 찰칵!

내 방의 문이 열리자 또 마음이 울컥해진다.

'아... 나란 아이... 매번 실수하지 않으려 꼼꼼하게 챙긴다고 그렇게도 애를 쓰는데... 안 되는 인간인가 봐... '

갑자기 채찍을 들어 자책 모드로 빠지려는 순간 '근데 나같은 사람이 이렇게 멀리까지 돈도 벌러 다니고!!! 진짜 기특하다... 나 왜 이렇게 대단한 거니????'라며 쥐도 새도 모르게 자뻑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 내 주머니로 가져오기'를 하고 있는 내가 얼마나 대견한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심지어 오늘 컨설팅 담당자가 "강사님께 맡기면 든든해요. 신뢰할 수 있어요. 그런 이야기 많이 들으시죠?"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어찌 완벽하란 말이냐???

남편은 오늘도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아!!"라는 말을 했지만 난 평소처럼 쪼그라든 목소리로 "그러게..."라고 대꾸하지 않았다.

"오빠 나 이게 엄청 정신 차린 거야. 맨날 다시 되돌아보고, 뭐 빠졌나  보고... 이게 진짜 정신 차린 거라니까!"

남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글을 쓰다 보니 딸아이가 보고 싶다. 딸아이도 내게 그랬다.

"엄마 보기엔 내가 성실해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나도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거라고!!"


그랬다. 우리는 각자 누군가의 기준에 한없이 부족할지언정 얼마나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가.

힘들었던 하루의 끝에 나를 꼭 안아본다.

'고생했다...'

그리고 또 말해본다.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산속에서 길 잃어 호랑이 밥이 되었을텐데 내비게이션, 스마트폰 있는 세상에 태어났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너는 천운의 여자로구나'

"스마트폰 주심에 감사"

"내비게이션 주심에 감사"

"당직실 있음에 감사"

"옷 다 주는 사람 있음에 감사"


"모든 것이 감사한 하루~~~
글을 쓰면서 두 배로 행복해진 하루~~ 굿밤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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