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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Apr 29. 2023

내 영혼을 위한 '국물 떡볶이'

알 수 없는 우울함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나는 카톡을 열고 단톡방 친구들에게 말을 건다.

"전 오늘 왜 우울할까요ㅡㅡ"

그들은 내게 특효약을 내린다.

"드세요"


그렇게 나는 떡볶이집을 향했다.

유치원 때부터 드나들던 소꿉놀이 공간, 간판도 없는 그곳 '국물 떡볶이집'

남자친구와 가고, 남편과 가고, 임신해서 가고, 내 딸아이와 가던 떡볶이집이었다.

떡볶이 집에 도착한 나는 여든이 다 된 백발의 노인을 향해 말한다.

"아줌마!!! 나 한나"

아줌마는 1-2초의 망설임 뒤에 "한나?? 한나야?"라며 나를 꼭 껴안는다.

떡볶이를 마주하자 나의 우울함은 입 밖으로 나온다.

"아줌마... 나 일하기 싫어. 일만 하면 자존감이 떨어져. 내가 너무 바보 같고 그래."

아줌마는 내게 익숙한 위로를 건넨다.

"일하면서 '아 잘했다~~ 아이고 잘했다' 이러면 자만한 거야. 당연한 거야. 네가 발전하고 있는 거야."

매번 들었던 말들... 근데 오늘따라 그 말들이 내 마음에 내려앉았다.

나보다 두 배의 세월을 살아낸 분이 '괜찮다'라고 하니 정말... 괜찮은 것만 같았다.

검버섯이 가득하고 마디마디 투박한 그녀의 손이 내 손을 잡아주니 정말... 괜찮은 것만 같았다.

허했던 내 위장은 떡볶이로 채워졌고, 허했던 내 마음은 아줌마의 말로 채워졌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나에게 물었다.

'매번 듣던 위로였는데... 왜 이리 충만해졌을까?' 나는 답한다.

'수많은 시간을 버티며 살아온 그녀의 여든 인생이 내게 말을 걸었던 것 같아...  그리고는 여든의 시간이 내게 괜찮다고, 다 그런 거라고 말해주었어...'


여든의 시간이 주는 묵직함인 걸까.


사실 나는 늙는 게 다. 나이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도... 내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것도...

하지만 오늘의 나는 다른 생각을 해본다.

'내가 보낸 시간들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내밈이 될 수 있을까...?'


그저 예쁜 주름으로 곱게만 늙고 싶다던 내 바람에 오늘에서야 한 가지를 더해본다.

'내 나이, 내 인생, 내가 먹어버린 하루하루 시간이 모여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늙어가길...'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쉰

마음에 안정을 주는 예순

어떤 아픔도 보듬을 수 있는 일흔

그저 삶 만으로 위로가 되는 여든..


그렇게 내 삶이 어떤 이의 쉼터가 되길 바라며 오늘 하루를 굳세게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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