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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경 Dec 10. 2022

잘츠부르크에서 모르는 한국인 2명과 여행하다

오스트리아라는 공통점

마치 야반도주를 하듯 한인 민박집에서 나와 도착한 호텔은 아담하지만 깔끔하고 나무로 된 인테리어와 빨간 카펫이 깔려 있는 고급스러운 공간이었다. 그리고 침대 발 밑에 창이 있어 언제든 밖을 볼 수 있는.. 역시 돈이 좋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그런 숙소였다. 짐을 풀고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면 오전 8시. 서둘러 밖을 나섰다. 호텔 근처에서 5분만 걸어 나가면 미라벨 궁전 정원이 있어 잠시 앉아서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기로 했다. 햇살이 막 스며드는 아름다운 정원 벤치에 앉아서 아무도 없는 정원에서 나 혼자 클래식 공연을 만끽하니 어젯밤 민박집에 대한 원망스러움도 사라졌다. 배가 고파 근처 카페를 찾아 다시 일어섰다.


"저 이제 일어났어요.. 언니 어디 계세요?"


카푸치노와 애플파이를 시켜놓고 책을 읽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어젯밤 같이 미라벨 궁전에서 클래식 공연을 봤던 주희였다. 나는 호텔로 숙소를 잘 옮겼고 근처에서 커피 마시며 기다릴 테니 천천히 준비하고 나오라고 대답했다. 사실 잘츠부르크는 작은 도시라 뚜렷하게 가고 싶은 곳도 없었고 여행 막바지다 보니 쫓기듯 여행하는 건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주희는 여행 계획이 다 짜여있다고 하니, 나는 이 일정에 편승해 오늘만 같이 여행을 하기로 했다.



마침 미라벨 궁전 근처에서 장이 열려 구경하다가 한 할아버지가 작은 포도알이 알알이 달린 포도를 5송이씩 사 가길래 나도 2송이를 구매했다. 1시간 뒤쯤, 브런치 카페에서 거의 밥을 다 먹어간다고 하여 내가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도착하니 어제 만났던 또 다른 한국인 여성분 지안 님도 합류하여 나를 포함해 총 3명이 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다. 동생이 계획한 여행은 호엔잘츠부르크 성에 갔다가 교외에 있는 헬부른 궁전에 가는 코스였다.



타지에서 자국민을 만나면 원래 이렇게 반갑고 어색하지 않은 걸까? 우리 세명 모두 이 이야기에 동감하며 거리낌 없이 자기의 이야기를 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주희는 독일의 국제학교에서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인데 올해부터 일을 시작했고, 처음 휴가를 맞아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오게 되었다고 했다. 학생들을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을 가르치는 교사도 존경스러운데 영어로 다국적 학생들, 거기다 말 안 듣는 고등학생을 가르친다니.. 너무 고생했다며 푹 쉬다 가라고 나와 지안님은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지안님은 독일 기업과 한국 기업의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는 일을 프리랜서로 하고 계시는데 이번에도 출장 겸 왔다가 일정이 남아서 여행을 하고 귀국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마존 물류를 활용해 자기 사업 시스템을 구축해놓은 신사임당? 같은 분이었는데,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투자와 부동산, 운동을 알려주셨다고 한다. 내가 광교에 산다고 하니 본인이 광교 부동산에 투자한 게 있는데 나중에 자기 발목 부상이 나으면 호수공원에서 뛰자며 나중을 기약했다.


걷다가 같이 스트레칭 해버리기ㅋㅋ


이렇게 마주칠 일이 하나 없는 사람들인데도 클래식과 여행이 좋아 오스트리아라는 나라를 선택한 우리는 서로의 공통점이 생긴 것을 기뻐했다. 하고 많은 유럽 중에 오스트리아만을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오는 사람들은 자기의 길을 정하고 묵묵히 걸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난 아직 길을 찾고 있긴 한데..) 주희는 교사로서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바꾸고 싶어 하는 꿈이 있고, 지안님은 mindfulness라는 가치관을 갖고 이것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행동력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새로운 사람과의 대화는 효율적으로 많은 것들을 습득할 수 있는 좋은 학습 방법인 것 같다. 최소의 아웃풋으로 최대의 아웃풋을 낼 수 있달까? 아웃풋의 결과는 나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들과 같이 여행하면서 나눈 이야기와 함께 본 풍경을 이렇게 글로 끄적이는 것만으로도 최소한의 아웃풋은 나왔다고 생각한다. 나의 글을 보고 누군가도 오스트리아가 궁금해 여행을 떠나볼까? 생각할 수도 있고, 오스트리아가 좋았던 사람은 동지가 생겼다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남겨야겠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이왕 흔적을 남길 것이라면 누군가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뿐.


그렇게 오늘도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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