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경 Jan 23. 2023

스타트업 UXUI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오만했던 디자이너

그렇게 나는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총직원은 6명이었는데 대표님, 영업 2, 마케터 1, 개발자 1과 그렇게 디자이너인 나였다. 50세가 넘으신 개발자님 빼고 다들 우리가 하고 있는 서비스의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님께서도 UXUI가 처음인 나를 뽑으셨으리라.


내가 새로운 분야로 전향한다고 했더니 처음 입사한 회사의 (내가 존경했던) 팀장님은 조금은 걱정 어린 말을 해주셨다. 지금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미리 나의 고생길을 예견하셨던 것 같다.

“그런 곳은 하나부터 열까지 네가 다 해야 될 텐데.. 다른 디자인 회사에서 좀 더 경력을 쌓고 가는 건 어때?”


디자이너로서 나는 한창 성장하기 시작한 때였지만 그렇다고 아주 뛰어난 실력에 오를 만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가는 길목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직종을 바꾼다고 하니 팀장님께선 나름대로 날 걱정해 주셨던 거였다. 그때 이 말을 듣고 내가 다시 디자인 회사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고 되새김질해보기도 했었지만 결과는 어차피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그렇게 처음 대표님께 오더 받은 일은 서비스페이지를 리뉴얼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웹페이지는 전공자가 아닌 내가 봐도 디자이너로서 보기 괴로운 상태? 였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리뉴얼을 시작했다. 2-3일 만에 다양한 시안을 작업해 대표님께 보여드렸다. 지금 봐도 말도 안 되는 웹페이지 디자인이었는데, 그 이유는 코딩 구현을 생각하지 않은 채 껍데기만 디자인을 했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하면 개발자가 알아서 해주는 것이고 개발자란 그런 전문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계셨던 개발자님께 너무 죄송합니다..) 결국 대표님의 피드백으로 구현 못하는 시안들은 모두 버리고 컴포넌트(버튼, 컬러 등)만 조금씩 손대며 리뉴얼을 시작했다.


기획자 없이 기획을 하며 디자인까지 해야 했던 나는 새로운 기능과 서비스를 웹페이지에 덧대면서 조금씩 개발자들과 소통하는 방법들을 익혀갔다. 지도에 핀을 꽂는 기능을 만들 땐, 디폴트로 어떤 지역을 보여줄 건지 그 근거로는 왜 이 이유가 타당한지, 핀이 꽂혔을 때 어떤 내용을 보여줄 것이며 그 데이터는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데이터인지. 작은 기능을 개발할 때도 왜 이걸 우리가 유저에게 보여줘야 하는지를 각 부서를 설득해 가며 온몸으로 UXUI를 배워갔다.


디자인으로 뭐든지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나는 오만했었다.


UXUI가 처음이라곤 했어도 이 정도일 줄은 대표님도 모르셨을 것이다. 당시 바보 온달이었지만(어쩌면 지금도..?) 성장할 수 있는 나의 가능성에 투자해 주시고 기다려주신 대표님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6년째 이 회사에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회사도 이제 막 시작한 상태였고 나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맞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나를 신뢰해 주신 분이기에 나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주말에도 일을 시키는 클라이언트를 위해 일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었다. 대표님께서는 웃으면서 디자인이 구리다며 솔직한 피드백을 주시지만.. 나도 웃으며 다시 하죠 뭐.라고 받아칠 수 있는 끈끈한 관계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입사 1년 후 나뿐만 아니라 임직원이 모두 애쓴 결과로 우리 회사는 시리즈 A를 투자받았고, 지하에 있던 사무실에서 지상 2층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그렇게 UXUI디자이너로서 개발자들과 부딪히게 되는데.. 개발자들과의 신경전은 다음 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