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팀장으로 살기 2
2주 정도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걸고 출퇴근을 경험해 보니 나 말고도 다른 임산부들이 보인다. 내가 살고 있는 역은 종착역 부근이라 출근할 땐 앉아 갈 수 있어서 임산부석에 앉을 수 있다. 강남역까지 가는 동안 점점 밀려드는 사람들 속에서도 임산부 배지가 보였다. 이미 임산부 좌석은 다 찼고, 통로까지 꽉 찬 통근 열차. 그 모습을 보고 나서는 출근할 땐 일부러 임산부석에 앉지 않는다. 다음 역, 그다음 역에도 임산부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앉을 기회가 있도록.
퇴근할 때는 일부러 지하철 하나를 보내고 여유롭게 탄다. 그래야 임산부 좌석에 자리가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퇴근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엄마 뻘인 아주머니들, 할아버지, 아저씨, 외국인 그리고 젊은 여성들도.
하루는 퇴근하는데 임산부 배려석에 살집이 있는 40 초중반의 여성분이 앉아 있었다. 임산부 배지는 없었지만 뱃살이 많으셨기 때문에? 혹시 배지가 없는 임산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양보를 부탁할까 말까 수없이 고민했다. 그렇게 서너 개 정류장을 지나치고 내 앞에 앉아 계시는 외국인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나의 임산부 배지를 발견하고는 바로 양보해 주셨다. 늦게 봤다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외국인이지만 한국에 오래 생활한 것처럼 보이는 여성분이었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내가 내릴 역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었던 40대 여성분이 미리 내려서 걸어가는데 발톱에 패디큐어를 한 걸 발견했다. 그녀는 임산부가 아니었다. 나에게 양보하지 않았던 그 40대 여성도 나의 배지를 봤을 터다. 양보가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임산부가 되어 사회적 약자로 지내다 보니 배려받지 못함이 사람에 대한 서운함으로 다가온다. (*임산부는 머리 염색, 펌, 패디큐어를 하지 않습니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 내가 경험했던 일을 얘기하는데 다른 팀원이 이렇게 물어본다.
"임산부한테 자리를 양보해야 되는 게 왜 당연한 거지?"
조금 황당했지만 나는 성실히 그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초기 임산부의 경우 조산의 우려가 있고, 배앓이가 올 수도 있고, 부딪히거나 할 수도 있고.. 어느 순간 나는 설명이 무의미하다 여겨져 말하는 것을 관두고 말았다. 그리곤 잠깐 침묵한 후 집에 가서 어머님께 물어보라고 그 팀원에게 대답하고 대화를 끝냈다. 당신도 누군가의 배가 아프며 나온 자식일 테니.
임산부 배려석.
배려는 선택이다.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배려가 논쟁거리가 되는 사회는 슬프다. 배려받지 못하는 사회에 나는 계속해서 그 배려를 요구할 거다. 배려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자 자유라면, 요구하는 것도 나의 자유이자 선택의 한 방법이니까. ”죄송하지만 배려 부탁드립니다 “라고 했을 때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다. 배려를 망설이는 사람이었을 수도, 나를 못 봤을 수도, 회피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배려가 당연하지 않은 사회에 많은 임산부들이 당당하게 배려를 요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