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같았던 첫 창업팀, 20대만 할 수 있는 서비스!
첫 번째 보고서는 동아리 같았던 첫 창업팀입니다. 동아리면 동아리지 왜 동아리 '같았던'이라는 표현을 쓰는지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네요.
우리 팀의 다른 팀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만, 저는 대학에서 학생 창업을 시작한 이유가 있었어요. 우선 20대만 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수익 모델이 없는 무모한 창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가 20대라고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페이스북이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었거든요. 사업의 실체가 없고 언제까지 광고 수익만으로 기업이 유지될 수 있겠느냐?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이야 한국에서도 엄청난 손실을 감수하고 성장한 카카오나 쿠팡이 있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저희가 창업팀으로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거든요. 카카오톡이 2010년에 서비스를 시작했고, 저희 팀의 도매인 생성이 2011년 11월이었으니 카카오톡이 연간 200억의 손실을 보고 있을 때지요. 이렇게 무모한 아이템을 해보고 싶었어요. 보수적인 매출 기반의 회사가 아니라요.
저희 팀이 구상했던 서비스를 좀 나열해 볼까요?
-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를 위한 매거진이었습니다. 사회과학 쪽 교수님조차도 이걸 사람들이 보겠냐 하셨지요.
- 최근 교육(학원)에서 채용에 이어지는 구조나 멘토링을 도입한 이력서였습니다. 멘토가 멘티에게 경력을 만들 수 있는 과제를 주면 멘티는 이를 수행하고, 다수의 멘토, 멘티가 이러한 활동을 서로 증명해주는 형태의 서비스였어요. 최종적으로 이를 프레지처럼 만들어서 웹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형태로 만들려 했습니다. 면접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요. 오히려 최근 트렌드에 맞는 것 같은데 이 때는 IT에 처음 들어가는 입장이라 꿈으로만 남았습니다.
- 당시 게임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고 있었고, 우리는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회적인 담론을 담아낸 게임을 통해 영화처럼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는 게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제대로 론칭했으면 한국 모바일 게임 최초의 가챠(렌덤 뽑기) 게임이 될 수도 있었을지도 몰라요. (사회적인 담론을 담은 게임이 가챠 게임이라는 아이러니) 그리고 게임회사에 독점되는 일러스트, BGM 문제도 해결하고자 했어요. 요즘에는 커미션이라는 개념으로 신규 플랫폼에서 많이 활용하더라고요. 저작물에 대한 1차 가치(돈)를 주고, 나중에 수익을 배분하는(커미션 지분) 형식의 계약서를 작성했었지요.
- 이건 그냥 팀에 돈이 없다 보니 캐시 카우형 아이템을 진행했었습니다. 그래도 정말 제대로 서비스된 최초의 서비스였고, 우리에게 많은 성장을 가져다준 아이템이었죠. 론칭부터 운영이라는 경험은 이런 회사가 아니었다면 모두 겪어볼 수 없었겠죠.
- 어처구니없을지 모르겠지만, 이걸로 서울시 청년 창업센터에도 선정이 됐었습니다. 진지하게 혈액관리본부와 컨텍도 해봤었고요. 실현 가능성은 있었는데, 팀원들의 마음을 모으진 못했어요.
- "여자 친구 생기면 끊어야지, 결혼하면 끊어야지, 애 생기면 끊어야지, 애 낳으면 끊어야지" 하는 친구의 마누라에게 친구가 몰래 흡연한다고 알려주려고 기획했습니다. (진짜로. 이거 PT 시작 멘트였어요!) 사실 금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족, 사랑하는 이의 응원이라는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했고, 정부가 금연 사업에 굉장히 많은 투자를 하기 때문에 비즈니스적으로도 가능성이 있었어요.
다른 분들의 소감이 참으로 궁금합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5년 이상해왔습니다. 30대에는 이런 서비스를 시도해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요. 30대면 부모님과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실로 20대의 패기 넘치는 서비스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유로운 서비스를 할 수 있었지만, 우리를 프로나 전문가라 부르긴 어려웠을 거 같습니다. 회사 생활 보고서를 시작하며에서 언급했듯, 이는 동전의 양면이겠지요. 프로나 전문가였다면 이런 서비스를 시도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수익 구조와 성장 계획을 짜기 어려운 서비스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수익 구조와 성장 계획을 짰다. 아예 무모하고 흥미 본연이었다면, 우리는 성과가 없었을 것이고, 금방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성과는 있었지만, 항상 애매했다.)
우리는 외부의 제의에 너무 쉽게 흔들렸고, 서비스의 구조적 결함을 그대로 방치하기도 했고, 서비스 장애가 발생해도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거나, QA를 소홀히 해서 장애 사실 자체도 발견하는데 오래 걸리곤 했어요. 서로의 직무 역할, R&R, 일정 등을 잘 지키지 못했어요. 무엇보다 팀의 미래, 그러니까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실행한다는 인식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사라기보다 동아리에 가까웠다고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흥미 본연으로 서비스를 만들어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일반적인 서비스 기획자가 경험해보지 못할 일들이 많았죠. 외부 계약이라던가 법적인 문제의 검토, 상표권 등록, 특허 등록 같은 것들 말이죠. 무엇보다 IR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우리의 서비스는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서비스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이런 것들을 설명하는 것이 재밌고 좋았어요. 그리고 그 대상도 일반적인 회사에서 경험할 수 없는 분들이었어요. 그 기업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뵙기 어려운 대기업의 대표나 상무이사 분들이나 유명한 투자자 분들 앞에서 PT를 해볼 수 있었다는 것은 큰 기회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획 업무 그 외에도 하는 것이 많았어요. 랜딩페이지는 주로 제가 만들었는데 이 정도가 개발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직무적으로 보면 프런트 엔드 개발이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에이전시에서 프런트 엔드 개발자로 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디자인 영역에서도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디자인 가이드를 작성한 것이었죠. 디자인 가이드를 작성하면서 프런트 엔드에 대한 이해와 IT 디자인, UX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고통을 잘 이해할 수 있고, 되도록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는 태도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관점을 수립하게 된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IT 산업, 서비스, BM을 보는 관점부터 UX, 디자인, 개발을 보는 관점을 가질 수 있었어요. 지금 브런치에서 적고 있는 것들도 이런 관점들을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큰 맥락에서는 같은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이렇게 직무 구분 없이 일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은 부딪혀서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노오력이 부족해서 그래! 내가 해봐서 알아! 그래요 저는 핵꼰대입니다.) 반대로 진짜로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경험도 얻었고요. 그럼에도 일단 해보고 나서 겁을 먹는 무모함을 얻었으니 이는 인생을 사는데 꽤 괜찮은 태도라고 생각해요.
아아 이제 한탄의 시간이네요. 평탄한 인생과 커리어를 잃었어요. 꽤 많은 면접, 입사 제의를 받았지만 뿌리쳤는데, 그게 딱 30대가 되니 끊기더군요. 사실 20대의 저는 실력이 없다고 생각해서 일을 하면서 실력을 늘려 나가면 당연히 그런 자리들은 주어지는 것이라 믿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어라, 지금은 실력이 있다는 뜻이냐?!) 커리어만 잃으면 괜찮은데, 평탄한 인생 자체를 잃었다는 것은 좀 안타까워요.
심할 때는 36시간 일하고 6시간을 자는 생활을 반복했어요. 전에 스타트업 이야기를 하면서 MVP로 제가 서버 역할을 했던 글도 있었죠. 사실 서버 역할한 것은 그나마 수월한 일이었어요. 게임 프로젝트할 때는 외주처를 포함한 일러스트레이터가 40명에 달했는데, 회사가 아니다 보니 제각각 컨펌 요청을 했었죠. 그러니까 24시간 동안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증신 차려 자네는 지금 컨펌을 해야 하고, 지금 잘 못하면 저분은 일을 다시 해야 해!) 서버 역할할 때는 단순한 일이라 긴장도는 더 낮았으니까요. 당시에 라인을 통해 작업물 컨펌을 했는데, 라인의 알람 소리만 들리면 몇 시건 어디서건 컨펌을 해야 했어요. 이렇게 살다 보니 건강과 머리카락을 잃는 건 당연했겠죠? (키보드 앞으로 머리카락이 떨어질 때마다 자괴감이...) 이런 삶이 평탄한 인생이라곤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그리고 친구들과 인맥을 잃었죠. 이건 많은 창업자분들이 말씀하시는 부분인데, 창업이란 주변의 인적 리소스를 소모하는 일이에요. 이런 부탁 저런 부탁을 할 수밖에 없거든요. 당연히 거기에 걸맞은 보수를 드릴 수도 없고요. (창업자는 언제나 죄인!) 사소하지만 아이템을 실행할 때마다, 마케팅하나 나갈 때마다 좋아요 눌러달라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걸 몇 번씩이나 요청하면서 민망했어요. (전에 하던 건 어떻게 됐냐? 요즘엔 뭐하냐?라는 질문이 무서움)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과 인맥을 잃었어요. 어쩌면, 제 성향 자체가 내향형이라 IT 인프라나 네트워크를 통해 얻은 인맥을 관리한다거나 이용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학교에서나 스타트업 행사 혹은 이메일을 통해서 조언을 요청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서비스를 설계하는 방법이나 개발자를 찾는 방법, 팀원을 모으는 방법 등을 말이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창업할 수 있느냐는 이메일이었는데, 상당히 부끄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잘 나가는 창업팀이 아니었으니까!) 아직도 그런 분들이 있을 거 같아 짧은 생각을 남겨볼까 해요.
학생 창업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을 몇 가지 설정하고 싶어요. 다시 이 팀을 시작하는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아마 다시 또 하겠다는 결심을 하겠지만,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학생 창업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1) 실패한 창업자가 되어도 외로운 창업자는 되지 않을 수 있는 동료가 있다.
2) 이 사람들과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합의가 되어 있고, 그 합의가 흔들리지 않을 확신이 있다.
3) 투자받은 돈으로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역량과 책임감이 있다.
- 개인적인 실패와는 관련이 없지만, 이는 건강한 문화를 만드는데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4) 돈은 의외로 중요한 요소. 받을 수 있을 때 받아두는 것이 좋다.
- 사람을 돈 때문에 잃으면, 서비스에 대한 열정 자체가 떨어지곤 해요. 돈으로 사람을 살 수는 없지만, 의지를 모을 수 있는 수단임은 부정하지 못해요. 일단 돈은 받아놓고, 돈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해결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삶은 결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살지 못해요. 스타트업을 떠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들 때문이었는데, 요즘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을 할 때면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 창업에서, 스타트업에서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하면 좋겠어요. (역시 나는 핵꼰대다. 당시에 가장 싫어했던 말들을 그대로 하고 있다.)
동아리 같았던 창업팀에 대한 회사 생활 보고서는 여기까지예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는데, 잘 정리가 되지 않네요. 그래도 일단 스타트 먼저 해놓고(아직도 버리지 못한 스타트업 기질. 일단 커피를 뽑고 본다.), 주제를 정해서 추가하는 쪽으로 가려해요! (한 편으론 도저히 정리가 안돼!) 그래서 이 팀에 있었던 일들을 또 언급하게 될거 같아요! 일단 다음은 '그래도 회사였던 작은 마케팅 회사' 이야기를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