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미 Mar 18. 2022

나에게 주는 생일 선물, 첫 월세 계약서

잊지못할 2020 내 생일

내가 보낸 문자의 조건은 크게 세 가지였다.


1. 전입신고 가능할 것
2. 계약 기간은 1년
3. 계약서 작성은 입주 날 진행, 다만 계약서는 2주 전에 미리 검토
4. 계약서 검토 후 구두로 합의된 조건과 다른 사항이 있을 경우 계약 파기 및 가계약금 반환


월세라서 보증금 대출이나 융자금 말소에 관련된 특약도 크게 필요하지는 않았다. 몇 분 뒤 짧은 답장이 왔다.


"그러시죠."


그 후, 집주인은 계약서 작성을 위한 날짜를 맞추기 위해 전화를 해왔다. 전화로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궁금했던 부분도 물어봤다.


"혹시 월세나 보증금이 조정 가능한 부분이 있을까요? 제가 들어가기 전에 도배나 장판을 새로 해야할 필요는 없을까요?"


집주인은 단호했다.


"월세나 보증금은 모든 호수에 정해져있어서 조정은 어렵습니다. 도배나 장판을 입주시마다 새롭게 해주지는 않는데, 아마 깔끔해서 그냥 들어오셔도  거에요."


   기대없이 물어봤는데 역시나 거절당했다. 사실 월세/보증금 조정을 해주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믿음직스러웠다. 여러 집을 관리하는만큼 부르는  값인 월세 시장에서 각각의 집에 정가(?) 매겨져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보통 이전 세입자가 오래 살다가  원룸이나 훼손이 많이된 집들은 도배/장판을 새로 해준다고 들어서  부분도   물어봤었는데, 이전에 집을 보러 갔을 때도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어서 도배나 장판을 새로  필요는 없어보이긴 했다.


이 두 가지 사항 제외하고는 집주인은 대부분 내용에 쿨하게 "OK"를 외쳤다. 혹시나하고 던져봤던 조건들은 거절당했지만 필수적인 조건들은 모두 받아들여졌다. 입주 전부터 집주인들과 사소한 문제로 골치를 앓던 친구들을 종종 봐왔어서인지 이 부분이 참 다행으로 느껴졌다. 집의 등기부등본과 사진, 전 세입자의 집 설명과 집 주변 동네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본 뒤 나는 가계약금을 송금했다. 100만원 송금했을 뿐인데 벌써 내 집이 생긴 것 같은 즐거움과 동시에 '내가 뭔가 일을 벌렸구나'하는 두려움이 함께 찾아왔다. 송금 후 한참 동안은 두근두근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계약서를 검토하러 가기로 한 날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 겸 계약을 핑계로 오랜만에 여유롭게 반차를 썼다. 원래는 집주인을 만나서 계약서를 함께 보려고 했는데, 전날 집주인이 일이 생겼다며 경비실에 계약서를 맡기고 가겠다고 했다. 경비실에 도착하니 인상좋은 경비 아저씨께서 나를 맞아주시고 서류를 천천히 훑어보라며 자리도 내주셨다. 천천히 계약서를 훑어보니 내가 이야기 한 내용이 계약서에 빠짐없이 잘 들어가 있었다. 등기부등본에서 걱정되었던 집주인의 공동명의도 계약서에 해당 내용에 해당하는 별지가 따로 붙어있었다. 이제서야 걱정되었던 마음이 한숨 풀리는 느낌이었다.


경비실을 나선 후 나는 동네 주변을 산책했다. 그 날은 청명한 가을 중 유독 날이 맑고 좋은 날이었다. 나는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네를 뛰다가 걷다가 어느 상가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테이크아웃하고 동네 벤치에 앉았다. 이제 2주 뒤면 이 곳을 '내 동네'라고 부르며 지겹게 산책하는 날이 오겠지. 날씨가 좋아서, 생일이어서, 계약이 문제없다는 것을 확인해서 생각만해도 신나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동산 없이 월세 계약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