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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쵸 Apr 07. 2024

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33

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15

   <탈출까지 D-74~D-70:30대 vs70대의 7세 수준 기싸움 1>



  <구애를 거절당한 하남자는 어디까지 추잡해질 수 있는가>

  어느새 밤이 깊었다. 다음 날 노역을 위해 잘 시간은 이미 지났다. 가야 함을 알면서도 가고 싶지가 않아서 비바리움 같은 재클린 드라이브를 걷고 또 걷다가 결국 노인의 집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구색처럼 달려있는 모기망은 고정도 되지 않아서, 나는 문과 모기망 사이에 낀 채 문고리를 돌려댔다. 그때 안에서 문이 열렸다. 노인과 아손이었다. 그 순간 내가 어떤 표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노인에게 느낄법한 역겨움이 드러났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대로 그들을 지나쳐 방으로 향했고, 곧이어 노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육신은 현실에 있으면서 가상의 공간에서만 말을 거는 노인은 메타버스 세계관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문자보다는 전보나 봉화가 더 편한 시절에 태어났으면서 MZ 행세라니.

  "대체 너 뭐가 문제냐? 우리는 너 때문에 행복하지 않거든. 베트남 부인이 너 이번 주말에 나가랜다."

  방금 베트남 부인 노예처럼 청소하느라 바쁜 거 다 봤는데, 갑자기? 그간 아무런 사건이 없었음에도 더 빨리 나가길 원한다고? 노인이 자기가 무시당했다고 느끼자마자 타이밍 좋게? 내 속옷에 멋대로 손댔을 때처럼 이번에도 30살쯤 어린 아내를 팔아먹었음이 자명했다. 구애를 거절당한 하남자는 대체 어디까지 추잡스러워질 수 있는지 흥미로울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그 옹졸함 덕분에 소아성애 노인으로부터의 해방이 6일에서 4일로 줄어들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광복절이었다.


  <무가치함 속에도 가치는 있다>

  노인에게 돌려받아야 하는 돈 102.86불. 내가 말 꺼내지 않으면 조용히 넘어갈 게 분명했기에 나는 노인에게 일할 계산한 숙박비와 계좌를 보냈다. 쫓아낸 쪽이 알아서 챙겨야 하는 걸 쫓겨난 쪽에서 금액까지 계산해 알려줘야 한다니. 하지만 평균적인 호주인의 지능을, 아니 평균도 되지 못해 베트남에서 여자나 사온 도태남의 지능은 더더욱 믿지 못했기에 불가피했다. 

  '토요일에 일 다 끝나면 줄게.'

  '돈 먼저 줘야지. 이삿날이 토요일이잖아.'

  '그건 아니지. 대신에 내가 돈 보내는 거 보여줄게.'

  쫓겨난 사건의 시작과 끝에 모두 노인이 있음에도 9만 원도 채 안 되는 돈을 어떻게든 쥐고 있으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예정일보다 빨리 나가게 한 건 너잖아. 너 때문에 나는 새 집주인이랑 일정도 조정해야 했어. 송금하는 거 보고 싶지도 않으니까, 토요일 전에 돈이나 보내. 현금으로 주던가.'

  '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했다가는 토요일 전에 쫓겨날 줄 알아.'

  광속 노화하는 서양인 기준에야 내가 어려 보이겠지만, 실제 내 나이는 3n살. 사회생활을 할 만큼 하다 막차 타고 온 내게 유치한 협박이 통할 리가. 저렇게 말하면 '에구머니나! 정말 죄송합니다요. 저는 돈 없는 외국인이니 한 번만 봐주십시요. 호달달.'이라고 할 줄 알았나. 어차피 이사까지 3일밖에 안 남았는데 꼴랑 9만 원 손에 쥐고 유세 떠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가. 그때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그러니까, 똑똑해지지 말라고.'

  이 지구상에는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온난화나 촉진하는 쓸데없는 인간들이 대부분이고, 노인도 그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돈 겟 스마트!'를 뱉는 순간, 노인은 명대사 제조기로 다시 태어났다. 베트남에서 여자를 사 와서 10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70대 노인이 30대 외국인과 기싸움을 하다 뱉은 회심의 경고, 돈 겟 스마트!


  <먼저 금 넘는 놈이 지는 거야>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죽일 듯 짖어대던 말티즈들이 문만 열면 얌전해지듯, 노인 또한 그랬다. 문자로는 대부 마피아 보스에 빙의해 명대사를 날렸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나를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그런 노인이 유일하게 먼저 말을 걸었을 때는 아손의 목욕 시간이었다.

  아손 목욕시키기는 노인이 하는 몇 안 되는 집안 일로, 일종의 놀이 시간에 가까웠다. 아손은 탕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노인은 아손에게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걸 네가 대체 어떻게 아냐 묻는다면, 이 모든 과정이 문이 활짝 열린 채 진행됐기 때문에...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2차 성징이 오기 전이라지만, 아손은 적어도 초등학교 4학년은 되어 보였다. 동네 애들이 깨벗고 뛰어다니는 광경도 80년대에나 흔했지, 지금은 21세기가 아닌가. 아무리 옛날 사람이라도 너무 경각심이 없어서 '자기 몸이 아니라 이건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노인부터가 저녁에는 문을 닫지 않고 배설을 했고, 아손도 내가 세면대에 앞에 있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볼일을 봤다. 어쩌면 그게 이 집의 가풍인지도 몰랐다. 남의 배설 장면을 보는 게 그리 흔한 일이 아님에도 이곳에서는 빈번했으니까.

  아손의 목욕물을 받고 있는 욕실에 굿가이가 씻으러 들어갔다. 거실에서 한솥 가득 한 밥을 소분하고 있는데 불쑥 노인이 나타났다. 얼른 해치우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노인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굳게 닫힌 욕실 문을 두드리더니 아무런 반응이 없자 똥 마려운 개마냥 주위를 서성였다. 중간중간 '젠장!'따위의 추임새를 넣어가며. 태연한 척, 하지만 온 신경을 노인에게 집중했다. 마치 카페에서 헤어지는 연인의 대화를 모두가 엿듣는 것처럼. 속으로 '그런다고 문이 열리겠냐, 병신아'라고 조롱하는데 노인이 내게 다가왔다.

  "은교야.."

  나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답했다.

  "가서 욕실 문 좀 열어봐. 안방으로 들어가도 괜찮으니까."

  호주에는 구조가 특이한 집이 많은데 개중 이 집이 최고였다. 거실에 난 미닫이 문을 열면 세면 공간이 나오는데 옆쪽과 뒤쪽에 각각 문이 있다. 옆문은 화장실과, 뒷문은 욕실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욕실의 맞은편에도 안방과 연결된 문이 있다. 그래서 매번 씻을 때마다 양쪽을 다 잠가야 했다. 그토록 철저히 외면해 온 X 년이 된 은교에게 안방 출입까지 허락하다니. 얼마나 간절했으면...

  안방을 통해 욕실에 가는데 노인을 향한 조소를 멈출 수 없었다. 형식적으로 문을 두드리고 이름도 불러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쏟아지는 물소리만 들릴 뿐. 나는 모순으로 가득한 지오디 노래처럼 그가 문을 열지 않기를 바라며 몇 차례 더 그를 불렀다. 하지만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웃음을 꾹 참고 거실로 나왔다.

  "은교야.. 어떻게 됐어?"

  "안 들리나 봐. 안 여네.^^"

  "오, 뻑킹, 중얼중얼..."

  노인은 변두리 거지섬 국민 중에서도 표준 이하임을 입증하듯, 고맙다는 말도 없이 자리를 떴다. 노인은 마당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댔고, 그 옆에서 덕구는 관심을 구걸했다. 저런 것도 주인이라고. 덕구가 안타까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어차피 나는 여기서 탈출할 거고, 덕구는 크리피 가족과 함께해야 했으니까.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욕실 문이 열렸다. 굿가이는 유독 개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 들렸어? 아까 노인이 문 열라고 두드렸는데."

  "다 들렸어. 일부러 안 연거야."

  내가 밖에서 웃음을 꾹 참고 그를 불렀듯이, 그도 안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에 웃고 있었구나. 샤워부스가 아닌 욕탕에서 씻었으면 더 웃겼을 텐데... 더러워진 물을 보고 노인이 뒷목을 잡았겠지. 그럼 베트남 부인도 더 빨리 해방됐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욕조 물 또한 넘치기 전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한참을 나타나지 않았고, 물을 끈 건 아손이었다. 초등학생이 70대 아버지를 수습하는 삶을 살고 있다니. 약간의 측은지심과 '나는 도망이라도 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뒤섞였다.


  -30대 vs70대의 7세 수준 기싸움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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