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랑꾼 미쉘 Feb 25. 2021

나의 죽음을 마주하는 시간

오늘을 다시 살게 한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아빠의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 

제대로 실감했다.

그동안 살면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생각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살아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늘 내 곁에 있었으니까.       




그런 날들이 있다.

하루 이틀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날들.

그렇게 어영부영 며칠을 보내고 나면

가슴 한편이 서늘해진다.


‘돌아가신 아빠한테 그랬듯이 

내게도 주어진 생의 시간이 있을 텐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죽는 순간, 오늘의 나를 바라봤을 때.. 

나는 어떤 기분일까.’

그런 생각들이 뇌리를 스치면, 

나도 모르게 정신이 차려진다.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아낌없이 잘 보내고 싶은 간절함이 

마음속에서 요동친다.      


‘내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생을 마감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는데.. 떠나야 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질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이별해야 하는 순간.

그 순간이.. 언젠가 내게도 오겠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조여 오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변함없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떠올릴 때와는 전혀 다른,

나의 죽음을 마주하는 적나라한 상상은 

오늘을 보내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마음이 바빠지고 주변을 살피게 된다.  

‘그렇구나. 나도 언젠가 죽는구나. 

그리고...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르는구나.’     


가끔 지인들에게 이런 얘기를 꺼내면,

생각만 해도 너무 슬프다고,

왜 그런 얘기를 꺼내 괜히 우울하게 

만드냐고 핀잔을 듣기도 한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나를 아끼던 지인은 내 손을 꼭 잡아주며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면서 

선물을 하나씩 주고 간데.

그러니까 슬퍼만 말고, 

아빠 좋은 곳 가실 수 있게 기도하고 

선물 잘 받았으면 좋겠다.”

그 순간, 아니 꽤 오랫동안 

나는 그 말조차 너무 가슴이 아팠다.

‘선물 안 줘도 되니까.. 

그냥 내 옆에 오래 있으라고, 

그게 선물이라고..’

그렇게 속으로 

수백 번 수천 번 되뇌었지만

돌아가신 아빠가 다시 살아오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순환에 대해 인지하게 되고, 

훗날 나의 죽음 또한 인정하게 된 건,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알게 된 가장 큰 깨달음이었다. 

매 순간 죽음을 떠올리며 

두려움과 우울감에 빠져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삶도 없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대해 한 번쯤은 진지하게 

성찰해 볼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그 시간은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을 살게 하는 

축복 같은 계기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와 함께 살던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