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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마고 Dec 13. 2020

발아래의 행복

인생의 큰 커브길에서

모두들 내 옷차림을 보고 놀렸다. 루즈한 핏이 멋져 보여서 수년 전에 사두었던 카키색 롱 패딩을 걸치고 나왔을 때. 심지어 우리 아빠는 '그러고 나가도 되는 거냐'고까지 했다. 내가 법이라도 어기는 것처럼. 남편은 오리털 이불을 그냥 두르고 나온 것 같다고 했고. 하지만 밖으로 나간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내가 이 산책에서 가장 덜 고통스러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엄마는 겨우 모직으로 된 코트만 입고 있었고, 남편과 아빠는 짧은 재킷을 걸쳤을 뿐이었다. 얼음 알갱이로 뒤덮인 땅에서 한기를 머금고, 얼음처럼 찬 바람이 제 세상을 만난 듯했다. 올해 첫눈이었다. 영화 '파고(Fargo)'네. 내가 말했고, 남편은 딸아이의 소렐 부츠를 가리키면서 신발도 '파고'야. 라고 대답했다.


설원의 소박한 살인극 <파고>


12월에 들어서, 내 인생은 각도가 아주 큰 커브길을 돌고 있다. 누군가는 '유턴'이라고도 표현했다. 길이 그렇게 생겨서 그렇게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쭉 뻗은 길을 놓아두고 굳이 내가 이 커브길을 택해 운전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파트에서 복층 타운하우스로, 완전히 다른 주거형태를 택해 이사를 왔고, 거의 10년을 다닌 회사에서 퇴사했다. 게다가 몇 년 전부터 고민하던 치아교정을 시작하면서 식단마저 달라졌다. 이 모든 변화는 내가 띄엄띄엄, 그리고 아주 느리게 한 결심들이 한꺼번에 결실을 맺고 있는 결과다.

이사와 함께 아이의 돌봄 공백이 생기면서, 12월 한 달은 아이와 둘이서 오롯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 영향인지 이사와는 별개로 수면 패턴도 통째로 변하기 시작했다. 새벽 3시는 되어야 이 어둠을 아까워하면서 겨우 잠들던 내가, 자정이 되기 전에 곯아떨어져서 알람도 없이 아침 7시면 눈을 떴다. 9시에 알람이 울려야 겨우 눈을 떠서, 그마저도 침대에서 오래 뒹굴거려야 몸을 일으킬 수 있던 나였다.


"바람 냄새 알지? 다 같이 갔다 오면 모르고, 실내에 있던 사람이 외출한 사람한테서 맡는 냄새 말야."

추운 날 모든 사람 몸에 묻어 있다가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면 비로소 나기 시작하는 바람 냄새에 대해서 조잘거리면서 우리 세 식구는 눈밭을 걸었다. 엄마 아빠는 눈이 얼기 전에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면서 작별을 하고 난 뒤였다. 철새 도래지가 가까이에 있고 엎어지면 한강물에 코가 닿을 새 집의 지리적 조건이 우리의 산책을 더 경쾌하게 만들었다. 큰 차도에 접해 있는 넓은 길을 두고, 부러 뒷길로 돌아 걸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낯설어서 더 그런 것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 코너를 돌면 어디에 닿게 되는지 궁금한 순간들이 있었다. 가는 길 중간에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한 건, 이 날씨에 새빨갛고 멀쩡하게 나무에 달려 있는 이름 모르는 빨간 열매였다. 딸은 어디서 들었는지 산수유라 했고, 남편은 산수유는 이렇게 키가 크지 않다고 했다. 글을 쓰기 전에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해 보니, 낙상홍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세상은 온통 새하얀데, 혼자서 눈치가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도도하다고 해야 할까 꿋꿋하다고 해야 할까 하는 그 이미지에 잠깐 동안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크고 흰 면적 속에 작고 빨간 알맹이가 눈치 없이 서 있는 게 꼭 이사한 집 인테리어의 중심 이미지와 닮아 있었다.


김이 모락 거리는 따끈한 코코아를 시각과 후각의 디테일한 심상을 동원해서 상상하면서 우리는 상가까지 걸었다. 언제나 그렇듯 늘 생각보다 많이 사게 되어서 장바구니가 무거울 거였다. 계란이랑 랩만 사면 돼, 하고 카트도 없이 덜렁덜렁 나온 터였다. 마트에 가면 늘 집에 없는 게 뭔지 그제야 생각이 난다. 아무리 오리털 이불을 두르고 나온 나여도 돌아가는 길이 꽤 고통스러울 거라, 무료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런 서비스를 해주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일 거야."

배송받을 주소를 적으면서 내가 말했다.


돌아오는 산책길은 더 크고 길게 뻗은 직선 길을 택해 걷기 시작했다. 눈이 닿는 곳에 내 집이 바로 보였기 때문에 빨간 열매 같은 것에 마음을 빼앗길 일이 없었고, 체감상으로 훨씬 짧은 길처럼 느껴졌다. 이 직선 길에서 발아래에 소복하게 밟히는 눈은, 단지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자연현상 중에 하나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우리 곁으로 자전거를 탄 어르신이 지나가자, 남편이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유럽 같은 데였으면 왠지 평소에 무료배송을 해 주는 마트였더라도 오늘처럼 길이 미끄러운 날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을까?" 나는 눈이 왔을 때 길 미끄러울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어른이 된 거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또 입 안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글을 쓸 때가 된 것이다.


목적지가 분명해지고 그게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과정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게 된다. 집이 잘 보이는 직선 길에서는 산수유인지 낙산홍인지 철새 같은 게 보이지 않았고, '빨리 배송해야 할 물건들'이라는 목적 앞에서는 미끄러운 길의 위험성이 누군가의 삽에 의해서 재빨리 치워진다.


입 안이 뜨거워진 나는 눈 내린 길에 무엇이 보이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고 갑자기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에서 심시선 여사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기억해내 나는 남편에게 쏟기 시작했다.


자기 자식이 어떤 성품인지 다 아실 테니 재능의 있고 없고를 떠나,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해칠 것 같습니까? 즐겁게 그리고 쓰고 노래하고 춤추는지, 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하는지 관찰하십시오. 특히 후자라면 더더욱 인생의 경로를 대신 그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아이들을 움직이는 엔진은 다른 사람이 조작할 수 없습니다.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p.220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 나는 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는 사람이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남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직업적 예술가가 아닐지언정, 입 안이 뜨겁고 가슴이 뜨거워질 때, 제 때 어딘가에 어떻게라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지 않으면 죽는 건 꼭 화장실을 정기적으로 가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남편은 지금 당장 글을 쓰라고 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2020년의 폭풍우를 지나고, 퇴사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예쁜 말들에서 나는 나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 본다. 그리고 나는 <아메리칸 뷰티>에서 계속해서 캠코더에 세상을 담는 리키처럼 살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 리키는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봉지를 15분 동안 찍어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발아래의 아름다움에 매일 매 순간 눈을 돌릴 수 있는 커브길을 나는 지금 걷고 있기에 반경 몇 킬로미터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삶이 며칠 내 입가에 고여 있어도 괴롭지 않다. 창 밖을 멍하니 보다 보면, 새가 날아와 있거나 고양이가 눈을 맞춘다. 자정이 넘어도 그 어둠이 아깝지 않고, 아침 7시에도 눈꺼풀이 무겁지 않은 이유다. 나를 둘러싼 물건과 생각들이 이 집에 와서야 비로소 구겨져 있거나 구석에 처박히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삶의 구김을 펴고, 먼지를 털어내고, 깨끗하게 손질해서 이전의 상태나 다름없이 돌리고 있는 기분이다.


부디, 앞으로의 삶도 늘 새와 고양이와 낙상홍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커브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목적지를 향해 걷다가 가끔 고개를 숙여 발아래에서 아름다움을 길어내는 그런 삶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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