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은 여행길
출퇴근 거리가 편도 40km에 달한다. 고속도로가 9할 이상이라 전속력으로 달리면 35분 만에도 도착하지만, 막히기 시작하면 편도 2시간까지도 걸린다. 다들 그 짓을 매일 어떻게 하냐고 했었고, 나도 걱정이 많았다. 그 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오디오북을 고르는 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의외로 다섯 달이 지나기까지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내가 이렇게 강제로 매일 나무와 하늘을 왕복 2시간씩 보면서 살기 전엔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깨달으며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색, 나무옷, 꽃의 변화. 벚꽃이 지면 철쭉이 피는지 철쭉이 지면 장미가 피는지 그런 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지금 오디오북이 무슨 문제야.
예전에 운전대를 잡은 지 10분 안에 도착하는 출퇴근 거리에서 난 당장 수정해야 하는 편집점이나 색보정 따위만 떠올릴 뿐이었다. 마음이 너무 급했다. 내 시야는 오로지 작고 진한 점 하나에 꽂혀 있었던 것이다.
이 점 옆의 여백에 시선을 돌리면서부터 공기에서 계절 냄새의 미세한 변화를 읽고, 이 거대한 흐름 속에 일부분일 뿐인 내 삶의 시간을 생각한다. 난 내가 이렇게 풀의 냄새와 초록의 색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회의는 조급하지 않게, 큰 시야에서 부드럽게 진행하고, 결정되는 대로 빠르게, 그렇지만 어른스럽고 단단하게 일을 진행하고자 모든 팀원이 조근조근 말을 나눈다.
어제 본 <노매드랜드>는 거대한 시간의 일부일 뿐인 인간을 말한다. 공룡, 화석, 몇억 년 전 폭발한 목성에서 날아온 원자, 몇천만 년의 시간이 만든 기암괴석, 이 영화에 동원된 모든 것들이 모두 죽음을 초월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작은 존재로서의 인류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극 중 주인공 ‘펀’이 결혼식에서 낭독했다던 시가 너무 좋아 찾아봤더니 셰익스피어의 시다. 이 시는 400년을 살아남아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나는 가끔 깊이 우울하고 종종 끔찍하게 행복하다. 내 현명한 친구는 우울도 나를 조형하는 도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우울도 행복의 일부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