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딥마고 Dec 25. 2021

-

전태일은 친구들을 ‘나의 라고 표현했다. 21년은 나의 나들이 곁을 주고 시간을 내어주는 바람에 내가 나일  있었다고 쓰고 싶다. 어떤 점에서는 반드시   쌍둥이 같은 나의 나들.


최근에 쌍둥이에 대한 이야기를 연달아 두 번 접했다. 하나는 SF영화고, 다른 하나는 소설책이다. 영화 <백조의 노래>를 애플 TV에서 보았을 때, 나는 막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결말부를 읽다 만 참이었다.

소설은 알파벳의 순서만 뒤바꾼 이름을 가진 쌍둥이, 루카스(Lucas) 클라우스(Claus) 이야기다.  함께 하던 유년기 때와 달리, 클라우스와 떨어진 루카스는 끊임없이 뭔가 결핍된  타인에게서 무엇인지도 모를 어떤 것을 채우려고 한다.  세상 안에서 나만의 법칙이 정립되어 있던 유년기를 지나 세상의 각진 규범 안에 가둬질 ,  각진 모양에 가둬질  없는  안의 ‘클라우스(결핍)’ 설명할  없는 공허의 심연이 되어 우리를 괴롭힌다.



<백조의 노래>에서 주인공의 캐머론의 아내 파피는 쌍둥이 형제 안드레를 사고로 잃었고, 이 상실감은 파피를 공허의 심연으로 빠뜨렸다. 그녀가 이 시련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캐머론은 불치병에 걸린 자신을, 건강한 복제인간으로 대체해 행복을 이어나가려고 한다. 이때 파피가 잃은 것은 자신의 쌍둥이이고, 자기도 모르게 되찾는 것은 남편의 쌍둥이이다. 파피의 쌍둥이, 즉 클라우스가 떠난 빈자리는, 다른 클라우스가 채워나간다.

그렇지만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3부에서 화자는 순식간에 루카스에서 클라우스로 바뀐다. 책의 도입에서부터 내내 이야기하고 있던 인물은 클라우스, 즉 결핍 그 자체이다. 결핍은 우리를 이야기하게 한다. 결핍된 자신은 늘 온전함을 찾으려 한다.


유년기에 우리는 뾰족뾰족한 루카스와 클라우스를 다 갖고 있다. 성인이 되어 세상의 각진 모양에 가두어질 수 없어 클라우스가 떠나면, 루카스는 안이 텅 비어버린 뾰족한 그 공허를 맞닥뜨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 종일 외로워한다. 결핍은 연결에의 의지를 낳고, 철자의 순서만 다를 정도로 비슷한 나의 나들에게 이야기를 청하고, 건넨다.

올해에도 나의 나들이 내 결핍을 확인시켜주었기에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맺는 순간 나를 나일 수 있게 해 주었고, 영원이 못 될지라도 연결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의 나들아, 서로의 어깨 위에서 결핍을 나누자. 남은 시간에는 더 많이 들어줄게. 이야기를 청하고 그 이야기에 또 빚질게. 그 빚은 내가 빚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로 갚을게.


매거진의 이전글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