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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목 May 28. 2018

청년 마르크스

엥겔스와 예니, 그리고 메리 번즈

뜬금없이 웬 <청년 마르크스>인가 했다.

그러다 문득 아!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지. 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영화 <청년 마르크스>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독일, 프랑스, 벨기에가 합작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 덕분이기도 할테고 또 실제 마르크스의 당시 행동반경을 따라가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영화는 독일어와 불어, 영어 대사가 수시로 교차된다. ( 독일어 비중이 좀 많고 불어, 영어 순 같다.)


감독은 라울 펙이라고 흑인 민권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아임 낫 유어 니그로>(2016)를 연출했던 그 감독이다. 아이티 공화국 출신으로 정치운동가 이기도하다. <청년 마르크스>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감독은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과 함께 현대사의 몇몇 인상적인 사건들을 영상으로 흘려보낸다. 내가 원래 극영화보다는 이런 걸 더 좋아하고 관심있어 하는 사람이야. 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 같은데 솔직히 잘 어울리는 에필로그는 아니었다. (하지 않아도 됐을 사족같다고 할까?)


아무튼 영화는 독일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다 1843년 프랑스로 망명한 26세의 마르크스가 그곳에서 엥겔스를 만나면서 시작되어 그 유명한 1848년 ‘공산주의자 선언’을 집필하기까지의 시간을 재현해 낸다. 혁명가의 젊은 시절 한때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문득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떠올랐지만 그 영화가 체 게바라가 체 게바라가 되기 이전을 그렸던 것에 비해 <청년 마르크스>에서의 마르크스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냥 마르크스였다.




왜 200년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지?

1845년 런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비를 피해 들른 한 호텔에서 엥겔스와 친분이 있는 한 기업가를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눈다. 당시 영국의 공장들은 대부분 아동의 노동력을 활용하고 있었는데 마르크스가 이 사실을 비난조로 말하자 기업가는 아동노동이 없이는 이윤을 낼 수 없고, 이윤을 못내 공장이 파산하면 사회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마르크스가 말한다.


선생이 말하는 이윤을 전 착취라 하죠.


그리고 기업가에게 또 묻는다.


착취가 없는 사회에서 선생 같은 이는 어찌 될까요? 선생도 노동을 해야겠죠?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마르크스가 태어난지 200년이나 흘렀지만 그가 말했던 착취는 기업의 목적인 이윤달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대신 불려지고 있다.




하늘에 해가 어떻게 둘이 뜰 수 있겠는가

푸르동은 프랑스 생디칼리즘의 기본적 이론을 제시한 당대 스타(?) 사상가였다. 영화에서 마르크스는 그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그의 권위를 이용하려 한다. 푸르동은 자신보다 젊고 나름 천재적인 마르크스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서로를 말살하진 말자. 비난을 피하자. 루터처럼 구교의 교리를 무너뜨린 후 그 자리에 똑같이 편협한 종교를 세우는 일은 하지 말자.”


마르크스가 결국 자신을 부정하리라는 걸 알고 한 말일게다. 아무튼 마르크스는 푸르동이 새로 쓴 “빈곤의 철학”을 읽고 곧바로 “철학의 빈곤”을 내놓는다.

푸르동의 주장들은 당시 노동자 계급에게 보다 대중적으로 접근중이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그의 주장들(사유재산 철폐니, 균등임금이니 하는 것들)을 공상적 사회주의라 폄하했고 자신의 주장을 과학적 사회주의로 부르며 차별화했다.


결국 역사는 1등을 주로 기억한다. 마르크스는 푸르동을 극복해야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 거다.




항상 가난이 문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위대한 예술가든 사상가든 전기영화를 통해 우리가 어김없이 확인하는 건 다름 아닌 그들의 ‘가난’이다. 자본주의에 반기를 든 사회주의 사상가의 현실도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에게는 또한 언제나 평생의 후원자(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둘 다든)가 존재한다는 거. 사실 이건 결과론적인 논리인데 평생의 후원자가 있었던 이들만 끝까지 살아남아 예술이든 사상이든 우리에게 전해준 걸지도 모른다. 즉, 평생의 후원자가 없었던, 어쩌면 위대했을지도 모를 예술가와 사상가도 얼마든지 있었을 거라는 거 … (따지고 보면 슬픈 얘기다)


마르크스에게는 예니가 있었다. 그녀는 뼈대있는 가문인 베스트팔렌가 출신이지만 마르크스와 결혼함으로써 가난을 선택했다. 그녀는 두 아이를 낳아 기르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사채업자들에게 빚독촉을 당하는 와중에도 마르크스에게 혁명적 동지로서의 조언을 마다하지 않았고 악필로 소문난 마르크스의 글은 그녀만이 온전히 읽을 수 있었다. 그녀가 마르크스를 뒷바라지 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마르크스의 삶의 조연으로 그녀를 소비하는 건 예니의 삶에 대한 또다른 모독이다. (이 영화 홍보 카피에 예니를 가리켜 “투쟁 잘하는 예쁜 누나”라는 문구를 보고 좀 씁쓸했다. 그렇게라도 영화를 알리고 싶은 마케터의 간절한 마음은 알겠지만 영화를 봤다면 그런 카피가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쯤은 알지 않았을까 싶어서… )


아무튼 마르크스의 가난을 일시적으로나마 해결해 주었던 건 당연히 엥겔스였다. 심지어 엥겔스가 아내였던 메리 번즈의 사망 소식을 편지로 알렸는데 그 편지의 답장에 생활고로 힘드니 돈을 좀 더 부쳐달라는 얘기를 했다고 했던가? 아무튼 ...


사실 이 영화에서 마르크스와 예니 보다 엥겔스와 메리 번즈의 사랑이 개인적으로는 더 흥미로웠다. 메리 번즈는 애를 낳지 않을 거냐는 예니의 질문에 낳지 않겠다고 말한다. 어쩌면 자신의 여동생이 엥겔스의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는 말도 쿨하게 한다. (실제로 메리 번즈가 죽고 엥겔스는 그녀의 여동생과 동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브루조아 남편을 두었음에도 그녀는 엥겔스와 공식적으로는 결혼하지 않은 채 평생을 살았다. 결혼제도를 통해 어쩌면 가난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혁명가로 살기 위해 가난과 자유를 선택했다.


<청년 마르크스>는 영화적으로는 무난했다. 하지만 혁명, 저항, 단결, 노동자 … 라는 단어 가 들려올 때마다 정체를 알수 없는 울컥함이 있었다. 마르크스가 태어난지 200년이 흘렀지만 마르크스라는 유령은 여전히 이 세상을 떠돌고 있는 걸까? 이 세상이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는 증거인 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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