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씩씩 Apr 21. 2019

인생을 걸고 싶어지는 눈빛, <스타이즈본>

눈과 눈이 맞닿는 순간의 아름다움


이 영화를 놓치지 않게 해 줘서 고마워

 작년의 터닝포인트가 된 영화를 굳이 고르자면, '스타 이즈 본'을 꼽고 싶다. 영화관보다는 집에서 영화 보는 것을 선호하던 나에게, 영화관에 가서 영화 보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지 깨닫게 해 준 영화이기 때문이다. 개봉 전부터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막상 보기로 한 날에는 그다지 영화가 보고 싶지 않은 기분이라 보지 않으려고 했었다. 영화는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주의인데, 그날은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 상황이었고 이미 너무나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그다지 영화가 끌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당시의 연인이 "영화 진짜 안 볼 거야?"를 몇 번이나 물어봤고, "그럼 영화 보지 말고 뭐할까?"를 물었을 때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를 보러 갔다. 그날 그렇게 몇 번을 물어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영화 보는 것 대신 온종일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영화였다.


 그러니까, '스타이즈본'은 온전히 그 사람 덕분에 만난 영화였다. 개봉 전부터 내가 보고 싶다고, 같이 보러 가자고 말한 영화이긴 했지만, 아마 그날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영화관에서 보지 않은 채 지나갔을 게 분명하다. 이제는 더 이상 연인이 아닌 그 사람에게 고마운 점이 있다면, 그 덕분에 스타이즈본을 봤다는 것. 그 영화를 보고 싶어만 하다가 흘러간 게 아니라, 그 영화를 놓치지 않게 해 줘서 고마웠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한편으로는 그 영화 때문에 헤어지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게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둘의 열렬한 사랑을 보면서, 죽고 못 사는 사랑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은 마음이 들었거든. 브래들리 쿠퍼의 눈빛을 보면서, 영화가 시작한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반하고 만 그의 눈빛을 보면서, 누군가를 사랑할 때 누군가를 담던 기분이 떠올랐다. 오롯이 누군가를 바라보는 기분, 평생토록 나는 내가 그렇게 누군가를 바라보는 표정과 눈빛을 알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내가 상대를 바라볼 때 상대가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는 눈빛을 사랑했다. 눈과 눈이 맞닿는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대화라고 믿었던 순간도 있었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요


 스타이즈본은 그런 순간들을 계속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그들이 주고받는 눈빛이 너무나 아름답고 처연하고 또 아름다워서.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난 후, 단 한 번도 그를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가 너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겐 그 영화가 그렇게 쓸쓸하게 다가왔는데, 속도 모르고 그저 재미있었다, 음악이 너무 좋았다는 말만 건네 오는 상대는 쓸쓸한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했다. 그렇게 짧은 한줄평만을 공유하고 싶은 영화가 아니었다, 더더욱 연인과는.


https://www.youtube.com/watch?v=zfeHACNRs20

인생을 걸고 싶게 만드는 눈빛


 헤어진 연인과 본 영화라면, 그 이후로 OST를 안 듣고 싶을 법도 한데, 그래도 스타이즈본의 OST는 주구장창 들었다. 그러다가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에 찾아온 브래들리가 무대 위에 올라와 함께 Shallow를 부르는 영상을 보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라이브 영상이었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웠고, 완벽했던 라이브 영상.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레이디 가가를 한없이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브래들리. 그 영상의 댓글 중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I want to find someone that will look at me the way Bradley looks at Gaga.' 전적으로 동의하는 댓글이었다. 저렇게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으면, 인생을 걸고 싶을 것 같았다. 영화 속의 앨리가 그랬듯이. 자신의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도 잭슨을 사랑했듯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도 브래들리 쿠퍼라는 배우를 봤지만, 그때는 그렇게 큰 감흥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스타이즈본'의 브래들리 쿠퍼는 지금껏 봤던 배우 중 가장 설레는 눈빛을 보여줬다. 앞으로도 나는 사랑에 빠질 때마다, 브래들리 쿠퍼가 생각날 것만 같다.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어서. 한눈에 사랑에 빠지는 눈빛을 넘어서, 인생을 걸고 싶게 만드는 눈빛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내내 브래들리 쿠퍼에 대한 애정을 쏟아냈지만, 사실상 ‘스타이즈본’은 레이디 가가의 발견에 더 가까웠다. 살면서 내가 레이디 가가를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이야.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스타이한눈에 즈본-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을 보는 루트를 따른 뒤에, 레이디 가가의 앨범을 수없이 들었다. 새해 첫날 들었던 노래도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였다. 너무 좋은 것에 대해서는 온갖 수식어를 다 붙이고 싶은데, 오히려 그 수식어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좋다’는 말 이상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레이디 가가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비슷하다. 너무 멋지고, 너무 좋은데, 이 ‘멋지다’와 ‘좋다’는 말이 얼마나 1차원적인지 알면서도 어떤 다른 말로 대체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평소 취향을 고려했을 때, 레이디 가가는 나의 취향과 한참 동떨어져 있는 인물일 줄만 알았는데. 나에게 있어 2018년 최고의 발견은 단연코 레이디 가가, 그리고 와이드팬츠였다.


  라이브 영상에서 레이디 가가의 파란 머리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 파란 머리와 편해 보이는 티셔츠마저 영화 속 앨리와 너무 닮아 있고, 무대 위의 레이디 가가는 그냥 말이 필요없이 완벽하고. 그걸 바라보는 브래들리의 눈빛은 더없이 완벽하고. 레이디 가가가 브래들리를 불러서 무대 위에서 껴안는 첫 장면부터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껴안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까지. 완벽하다. 이런 공연이라면 돈을 왕창 써도 만족스러울 만하겠다. 잊지 못할 라이브.  현실과 영화를 구분하지 못하는 스타일 아닌데, 어디까지나 현실은 현실이고 영화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현실의 콘서트에서 이렇게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니까 그 여운이 장난 없다. 도대체 왜 우리나라에서는 스타이즈본이 그렇게 흥행하지 않은 것인가. 이 영상의 여운을 나눌 이가 없어 외롭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꿈의 제인'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