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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Jul 22. 2019

트와이스 센터에 감정이입해 봤다

어디까지 가상의 글입니다...실제 트와이스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2017년 SBS 예능PD 작문 문제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트와이스, '미운 우리 새끼'의 김건모 어머니, '모해' 카톡 1이 지워지지 않은 상황, 보리밥/쌀밥/잡곡밥 3가지 버전의 도시락 - 2가지 인물, 2가지 상황을 엮어 쓴 글입니다)  



“모해?”

 카톡 알림이 떴다. 지겹게 연락이 오는 선배였다. 우리가 맨날 TT, 하면서 울상을 짓고, 꽃받침을 하고 귀여운 안무를 하니, 평소에도 애교가 많은 타입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뭐해, 간단하게 보내면 되지, 굳이 저렇게 혀 짧은 소리로 “모해?”라고 보낼 건 무엇이람. 평소 이미지와 어울리지도 않았다. 선배의 연락이라 씹기도 난감하고, 그렇다고 답장하기는 귀찮고. 좀 시간이 지나서, 할 말이 생각나면 답장해야겠다 생각하고 선배의 연락을 ‘안읽씹’ 상태로 방치한 뒤, 아이패드를 켰다. 지난 예능을 좀 몰아봐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선배 생각은 좀 잊고, 편안히 예능을 좀 즐겨 보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가 출연한 광고가 떴다. 단독 광고는 아니고, 그룹이 다 같이 찍은 광고였다. 오랜 시간 무명이었다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주목받으면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이었다. 광고도 찍고, 요즘 잘 나가네.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예능 보기는 글렀다 싶어 아예 불을 끄고 누웠다. 


 나쁘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얼굴도 내 취향이었고, 성격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나를 좋아하는 게 티가 나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한동안 시도때도 없이, 즐겁게 연락을 했다. 전국을 다니며 행사를 뛰고,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도 지겹도록 애교를 부리고, 인스타그램도 마음 편히 못 올리는 와중에도 데이트는 했다. 연예인들이 다 한다던 차 안 데이트도 어색하게나마 했다. 할 말이 없어서 TV나 볼까, 그날도 아이패드를 켜서 예능을 보려던 참이었다. 

 “무슨 프로 좋아해? 나는 ‘미운 우리 새끼’ 좋아하는데.” 

 그럼 그거 봐요, 나도 그 프로 좋아해. 반존대를 섞어 선뜻 대답했지만, 데이트하는 와중에 보기에 적절한 프로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본다면 동상이몽이 더 잘 어울리지 않나, 속으로 궁시렁대며 본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마침 김건모 선배님이 도시락을 싸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늘 그렇듯 배트맨 티셔츠를 입고, 술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소주가 들어간 초콜릿을 만들고, 술안주로 제격인 닭발을 만들어 3단 도시락을 만들고 있었다. 기이한 조합의 도시락에, 오늘도 김건모 어머님 뒤에 화산이 폭발하는 CG가 등장했고,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도시락 잘 싸주셨어요?” 

 “바빠 가지고, 잘 못 챙겨줬지. 그때 집에 돈도 없었고, 그냥 보리밥에 김치 싸서 보냈어.” 

 늘 시크하신 어머님이 못내 아쉬움이 남는 듯 말씀하셨다. 그렇게 다시 물 흐르듯, 소주와 함께하는 도시락으로 넘어갈 때, 오빠가 물어왔다. 

 “도시락 좋아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다. 바쁘니까, 일정 사이사이 시도때도 없이 먹는 주식이긴 했지만. 뜬금없었다. 이 오빠가 왜 이러나 싶었다. 

 “이젠 하도 먹어서 질리긴 해요. 그런데 아까 나온 거 같은, 추억의 도시락은 좋아해요. 아, 먹고 싶다.” 

 “그 계란 후라이에 햄 들어간, 그런 스타일 말하는 거지?” 

 “네, 맞아요.” 

 “너랑 잘 어울린다.” 

 “뭐요? 추억의 도시락이?” 

 갈수록 대화는 산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오늘이 지나면, 이 오빠랑 연락도 끝이겠네 싶었다. 


 “그냥, 너는 데뷔할 때부터 센터였잖아. 데뷔할 때부터, 최고의 신인으로 주목받았고. 학교에 가져가면, 친구들이 한 입씩 달라고 조르는 화려한 도시락. 햄이랑 계란 있고, 그런 도시락 있잖아. 그런 게 너랑 닮았다고 생각했어.” 

 데뷔 이후, 온갖 비유와 수식어를 다 들어봤지만 도시락에 대한 건 처음이라 멍하니 있으니, 오빠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냥 애매한 도시락 같았어. 흰 쌀밥도 아니고, 보리밥도 아니고 애매하게 섞인 잡곡밥에 김이랑, 오징어랑 있는. 주변 친구들이 보고, “에이, 도시락이 그게 뭐냐.” 놀릴 정도는 아니었는데, 먹으면 그냥저냥 괜찮은데, 자랑스럽게 내보일 정도는 아닌. 탐내는 친구들도 없어서, 그냥 아예 보리밥에 김치만 싸온 친구랑 조용히 앉아서 나눠 먹는, 그런 도시락.” 

 “오빠, 도시락 먹는 세대는 아니었잖아요.”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면서, 나는 일부러 모른 척하며 대화 주제를 넘기려 했다. 그렇지만 오빠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예 재능이 없었으면, 가능성이 없었으면 진작에 포기했을 거야. 그런데, 애매한 도시락 같은 인간이라, 주위에서도 쉽게 포기하라는 말을 못하고 나도 포기를 못하겠더라. 이번 서바이벌 때도 그런 감정을 느꼈어. 아, 쟤가 딱 햄 도시락 같은 애구나. 아, 쟤는 보리밥 같은 애구나. 쟤도 나랑 비슷한 애구나. 그게 너무 손바닥 보듯이 빤하게 보이더라. 이번에도, 데뷔 그룹 안에 들기는 글렀다 싶기는 했는데, 그래도 못 놓겠더라고. 그래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긴 했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와서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나도 서바이벌을 경험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나는 오빠 말마따나 햄 도시락 유형에 가까운 연습생이었다. PD님의 사랑도 많이 받아서, 늘 분량도 많았고 다른 연습생들의 부러움도 한몸에 받곤 했다. 그런 내가 하는 말이 위로가 될까 싶었다. 


 “그래도 오빠, 끝나고 많이 알아봐 주시지 않아요? 신곡도 되게 좋던데.” 

 “그렇지. 신기해. 팬사인회에 우리 보겠다고 수없이 팬이 늘어선 거 보면. 넌 이제 하도 봐서 별 감흥도 없겠다. 오히려 네가 나보다 선배 느낌이다, 야.” 

 오빠는 너무 진지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싶었던지, 가볍게 웃으면서 농담을 던졌다. 굳이 그렇게 웃을 필요는 없는데, 나도 그 마음 모르지 않는데.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좀 꿈 같다, 야. 햄 도시락 싸온 애들 옆은 늘 경쟁이 치열해서, 그 무리에 끼지도 못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최고로 화려하고, 최고로 사랑받고, 모두가 탐을 내는 사람이랑 단둘이 있네.” 

 오빠는 차분하게 숨을 골랐다. 이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는지, 조금은 상기된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최고라서, 탑 아이돌이라서 좋았던 건 아니야. 네가 진짜 도시락도 아니고, 무슨 물건도 아니고, 내가 너를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 아니야. 네가 곁에 있으면 주목받겠지?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겠지? 그런 마음으로 좋아한 거 아니야.” 

 이게 고백인가, 멍하니 오빠를 바라볼 무렵이었다. 

 “그냥, 우연히 길 가다가 너를 봤어. 만사가 귀찮은 표정으로, 모든 것을 놓아버린 표정으로 컵라면을 먹고 있더라. 그냥 그게 귀여웠어, 예뻤어.” 


 내가 PD였으면, 그 장면부터 편집해서 넣었을 텐데. PD는 그런 장면은 포착을 못하고, MC는 자꾸 애교만 시키더라. 그러지 않아도, 꾸미지 않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네가 훨씬 더 매력적인데. 내가 듣고 싶었던, 간절하게 듣고 싶었던 말을, 오빠는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줄줄 늘어놓았다. 그 순간, 이 사람과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실천하고 싶었지만, 오빠가 말했듯 나 같이 햄 도시락 같은 사람에게 쫓아다니는 시선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야 했다. 신중해야 했다. 

 “지금 대답해 달라는 건 아냐. 대답 안 해 줘도 괜찮아. 앞으로도 나는 애매할 테고, 애매하게라도 안 잊혀지려 아등바등 애쓰겠지만, 어느 순간 잊혀질지도 몰라. 뭘 믿고 나를 만나, 다 이해해.” 


 오빠의 진지한 이야기에 BGM처럼 김건모 선배님의 어머님의 목소리가 깔렸다. 아니, 우리 건모가 뭐가 어때서! 발끈하고 나서는 어머니처럼, 말해주고 싶었다. 아니, 우리 오빠가 뭐가 어때서! 

 가만히 누워, 그날의 선배를 떠올렸다. 애교 부리지 않는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가장 예쁘다고 말해 주는 사람. 그러면서 굳이 혀 짧은 소리의 말투로 안부를 묻는 사람. 웃음이 났다. 이제 카톡의 1이 사라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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