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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울연 Feb 06. 2020

목요일이네요



 그녀는 정리를 마치고 가만히 앉아 휴식을 청했다. 마치 친정에 돌아온 것처럼 안정감이 느껴졌다. 책상 위의 캘린더는 5월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한 장 한 장 넘기며 캘린더의 마지막 장을 펼쳐 두었다. 12월의 둘째 주 목요일이었다. 그리고 또 한 해의 끝자락이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창밖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 함박눈이 내리던 때를 떠올렸다. 거센 파도가 지나가고 잔잔해진 물결만 밀려오며 모래사장이 더욱 단단해졌던 날. 그곳에서의 마지막은 아니었지만 진정한 마무리를 했던 날, 나름 심란했던 마음이 위로받았던 날이었다.


...

 고운 씨.

 네?

 창가 바로 옆에 앉아있던 김 부장이 검은 뿔테 안경을 벗으며 창밖을 가리켰다.

 넓은 창밖으로 보송하고 깨끗한 알갱이 같은 그것들이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이었다. 올해 들어 이렇게 펑펑 내리는 함박눈은 처음이었다. 마치 모든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찾아온 새하얀 요정들 같았다. 그 요정들은 오늘 아침에 있었던 그녀의 사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그동안 마음속에 굳어있던 무언가를 사르르 녹여주고 있었다.


 ...

 그날 아침 출근길, 여느 때와같이 버스 창가에 아직 잠이 덜 깬 무거운 머리를 의지하며 시선을 허공에 응시하고 있을 때, 스마트폰의 알림이 느껴졌다.

 [ 미안혀. ]

 송 부장으로부터 갑자기 온 문자였다. 갑자기 그녀는 눈앞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그녀 자신도 왜 울고 있는지 몰랐다. 꽤 오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짧은 사과에 많은 의미가 와 닿았다. 분명 꺼내기 쉽지 않은 말이었을 것이다. 그 세 글자를 한참 바라보다 그녀도 짧게 답장했다.

 [괜찮습니다. ]

 [오는 중이야? ]

 [네, 거의 도착했습니다. ]

 긴 대화가 필요치 않았다. 꽤나 오랜 시간동안 소통해온 송 부장과 그녀만이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서로의 짧은 한마디에 많은 사정을 내포해주고 있었다.


...

 갑자기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보고 있자니 그녀는 아침의 그 일이 생각나 괜히 뒤숭숭한 기분에 멍을 때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반짝이는 것들이 나불댔다.


...

 그랬던 날이 있었다. 그때의 맑은 요정들이 다시 찾아온 기분이 들었다. 돌아온 사무실에서 괜히 이런저런 기억들의 파노라마에 그녀는 웃음을 머금었다.


...

어쩌면 그러고도 많은 시간이 흘렀을지 모른다. 그 목요일로부터 그녀의 소식이 들리지 않은지가 며칠이던지.

 그녀는 2019년의 부족한 자신의 자질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감. 그리고 일에 대한 조급함, 그와의 인연에 있어 우연일지 필연일지 모를 불안감 또는 행복감 모두 2020년의 새론 날에는 다시 해석되길 바라고 있었다. 어느 정도 큰일이 흘러가고 그녀의 정신없던 일상에도 다시 여유가 깃들었다. 실로 그러했다. 그와의 관계에서 조금 더 안정을 찾았고, 서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행복만이 있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게 될 불행들 또한 행복이 이미 잉태하고 있는 하나의 미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목요일이 좋다. 매번 다른 목요일이 찾아온다. 다음날이 주말을 기다릴 수 있는 금요일이라서 좋다. 사랑할 수 있는 나날이 좋다.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서 좋다. 그 열정만큼 또 몇 겁의 주름이 잡힐지, 그렇게 다시 올 목요일을 기다린다.



[목요일이네요_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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