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 Dec 07. 2023

어린이라는 세계

이소풍, 『반쪽짜리 초대장』, 바람의아이들, 2021

* 쪽수: 96쪽



동화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린이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건 작품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린이의 삶과 그들의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지요. 돌이켜보면 우리가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나눌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들려오는 것은 대체로 '요즘 아이들은 이렇다더라'하는 알맹이 없는 말들인데, 심지어 우린 그런 말들을 근거로 자주 어린이를 재단합니다.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어른은 언제나 소수에 지나지 않고요. 때문에 저는 한국에서 어린이가 갖는 사회적 지위가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어린이에 대해 너무 적게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너무 많은 말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2020)는 무엇보다도 그런 무신경하고 게으른 태도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었습니다. 이 책은 다정하면서도 날카롭게 어린이를 바라보는 기존 시각의 오해와 맹점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어린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깊이 응시하지요. 제목 그대로, 독자들은 이 책에서 '어린이라는' 드넓은 '세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늘 곁에 두고도 몰랐던, 심지어 언젠가 그 시절을 가로질러왔음에도 완전히 잊고 지냈던 세계를 다시금 마주하게 되는 것이죠.


저는 동화가 하는 일도 본질적으로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동화의 대상독자는 어린이이고, 김소영 에세이는 어른 독자를 대상으로 쓰였어요. 이건 중요한 차이입니다. 다만 저는 동화를 읽고 자라는 독자의 내면에 구축되는 세계가 김소영이 말하는 '어린이라는 세계'와 매우 유사한 모양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실 동화는 한 편 한 편이 어린이 한 명 한 명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동화를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어린이에 대한 이해는 입체적으로 쌓이게 마련이거든요. 당연히 이건 대상 독자의 연령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이소풍의 『반쪽짜리 초대장』에는 어린이의 세계를 섬세하게 그려낸 세 편의 동화가 실려 있습니다. 각 작품의 제목은 「반쪽짜리 초대장」,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 「어쩌다 한번 둥이를 기다려요」이고요. 세 편 모두에 멧돼지 '둥이', 토끼 '토루', 들쥐 '샤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계절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럼 한 작품씩 간단히 살펴볼까요.


「반쪽짜리 초대장」에서 둥이는 '초대합니다 저녁 우리 집에'라고 적힌 나뭇잎 초대장을 받게 됩니다. 둥이는 그걸 이렇게 해석하지요. '(둥이를) 초대합니다. (오늘) 저녁, 우리 집에 (꼭 놀러 오세요!)' 저녁이 되자 둥이는 초대에 응하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가는 길에 친구 토루와 샤로를 만나고, 셋은 함께 초대받은 집을 찾아갑니다. 이때 둥이가 친구들을 만나 동행하기까지의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이 셋이 원래부터 친한 친구 사이라는 걸 알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둥이는 길에서 우연히 토루와 샤로를 마주쳐서 일행이 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 초대받기 위해 일부러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길을 잡은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친구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의 순진하고 소탈한 심성이 투명하게 묻어나는 대목이지요.


그러나 초대를 받으러 가는 길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중간에 토루와 샤로의 마음에 드는 집이 한 번씩 나타나지만 둥이는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둥이가 상상했던 집이 아닌 겁니다. 반쪽짜리 초대장을 받은 순간부터 둥이의 마음속에는 어떤 완벽한 초대의 이미지가 그려졌던 것이죠. 아쉽게도 기대는 번번이 엇나가고 밤은 깊어갑니다. 그때 또 다른 집이 나타납니다. 그 집 역시 기대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있지만,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친구들의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둥이가 문을 두드리자 곰 아저씨가 나옵니다. 친구들은 용기 내어 말합니다. “저, 혹시…… 우리를 초대해 주지 않을래요?”, ”우린 벌써, 초대받을 준비가 다 되었어요.”


이 이야기가 독자에게 안기는 감동은 저 '초대받을 준비'라는 표현 안에 함축적으로 들어있습니다. 초대받을 준비를 한다는 건 결국 타인의 세계에 들어가 함께 어울리고 싶다는 말이고,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라도 문을 두드려보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둥이와 토루와 샤로는 누가 누구에게 보냈는지도 모를 초대장을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초대장이 반쪽짜리라는 걸 알면서도 용기를 낸 것이죠. 기대와 다른 현실에 실망할 때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내 근사한 순간을 만들어 내는 결말은 그래서 더 감동적입니다.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에서 먼저 길을 나서는 인물은 들쥐 샤로입니다. 이번에도 세 친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차례로 만나게 됩니다. 작은 폭포에서 신나게 놀 생각에 잔뜩 설렌 샤로와 토루에게 둥이는 뜻밖의 말을 건넵니다. 잃어버린 여름 조각을 찾아야 해서 놀 시간이 없다는 것이죠. 그 말을 들은 샤로와 토루는 둥이와 함께 여름 조각을 찾아 나서기로 합니다.


여름 조각을 잃어버렸다는 게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건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둥이가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무언가 사라진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고, 그걸 찾는 과정에서 친구들과 끝내주게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는 것이죠. 여름 조각을 찾느라 작은 폭포에서 놀 수 없다던 둥이는 바로 그 여름 조각을 찾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작은 폭포로 놀러 갑니다. 이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그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고, 그건 어린이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거예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논 둥이는 결국 반짝이는 여름 조각들을 찾게 됩니다. 그건 어쩌면 한여름의 즐거움이 깃든 추억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어쩌다 한번 둥이를 기다려요」의 이야기도 길에서 시작됩니다. 토루가 가을 오솔길에 접어들자 샤로가 나타나고 둘은 너른 바위로 소풍을 갑니다. 바위 위에는 둥이가 앉아 있는데, 왠지 그 모습이 평소와 달라 보입니다. 둥이는 혼자 가만히 앉아서 첫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명한 가을날 첫눈을 기다리는 둥이의 모습도 친구들에겐 낯설지 않습니다. 둥이가 계절마다 하루씩 꼭 첫눈을 기다린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지 않을 무언가를 혼자서 기다린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죠. 토루와 샤로는 둥이의 기다림을 앞당기기 위해 숨바꼭질 놀이를 시작합니다. 둥이는 같이 놀고 싶은 마음에 움찔거리지만 이내 잘 참고 버텨냅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지난해와 지지난해에 첫눈이 외로웠던 둥이를 먼저 찾아와 줬기 때문입니다. 그런 둥이의 사연을 누구보다 잘 아는 토루와 샤로는 결국 둥이를 억지로 끌어내는 대신 함께 기다려주기로 합니다. 둥이는 첫눈을 기다리고, 토루와 샤로는 첫눈을 기다리는 둥이를 기다리는 겁니다. 결국 어린이의 세계란 이렇게나 비효율적이고, 그래서 더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이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희망을 품기 전 기억해야 할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