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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Dec 25. 2024

작은 돌봄에 소홀해지지 않기를

강석희 외,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 돌베개, 2024

'돌봄'이라는 테마를 다룬 소설집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를 보았다. 일곱 편의 단편이 담겨 있고, 각각의 색깔이 아주 다르다.


'돌봄 소설집'이라는 낯선 타이틀에 잠시 인터넷을 뒤적였다. 올해 내가 모르는 사이 돌봄에 관한 어떤 큼지막한 이슈가 지나간 적이 있던가.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슈가 없었던 게 아니라 관심이 없었던 거였다.


세상이 매 순간 돌봄을 주고받는 사람들로 복작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부러 시간 내어 들여다보지 않은 데에는 별다른 핑계나 변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내 일상은 호화롭지 않지만 적당히 아늑하고, 나는 내가 지닌 온기를 좀처럼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에게 인색하지 않지만 따뜻하지도 않은 상태로, 나는 나에게 주어진 무탈한 하루하루를 당연한 내 몫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런 상황에 소설 일곱 편을 읽었다고 해서 곧 돌봄을 실천하게 되리라 여기지는 않는다. 나는 다만 이런 소설들이 나오기까지 누군가에게 있었을 시간과 공간과 그것들을 채운 관계를 상상해 본다. 뭔가를 읽을 때 자주 해오던 일이고, 그만큼 익숙한 일이다. 겨우 그 정도의 일을 하면서 의미 있는 변화와 실천이 따라붙기를 기대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다 알면서도, 이것들을 읽고 상상하는 동안 나라는 사람이 손톱만큼이라도 더 쓸만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걸 자각한다. 내 속에서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강석희의 「녹색 광선」의 도입부에서 '나'는 이모를 만나러 가고 있다. 만남은 시작부터 삐걱댄다. 장소를 명시하지 않은 약속은 여름의 무더위와 맞물려 금세 짜증으로 이어진다. 10시 정각에 보기로 했던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난 시각은 그로부터 30분쯤이 흐른 뒤다. 허술한 약속은 예상치 못한 시차를 만들어내고, 이 시차는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며, 이 마음의 동요는 두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돌보게 만든다. 모든 게 오차 없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관계에는 돌봄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나'는 사랑받는 데 실패한 뒤 섭식장애를 갖게 된 고등학생이고, 이모는 블로그에 기만적인 일상을 올리는 지체/청각 장애인이다. 둘은 다름산의 캠핑장에서 만나 채운사까지 함께 오른다. (다름산과 채운사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며 각자의 필요를 알맞게 채울 수 있는 건, 그들이 모두 다른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중에 비가 오고, 우산을 구하러 달리다 넘어지고, 함께 절밥을 먹고,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에 가는 문제 때문에 밖에선 조금 먹는다는 이모와 함께 화장실에 가고, 볼일을 마친 이모를 먼저 보낸 뒤 혼자 좁은 화장실 칸 안에서 먹은 걸 다 토해내려다 뜻밖의 인스타 알림을 보게 되는 모든 순간들에 돌봄이, 서로를 신경 쓰는 이들의 흔적이 숨처럼 들어 있다.


김다노의 「낙원」은 악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악어는 배은망덕하고 파렴치하다. 그들에게 돌봄은 말 그대로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고 있다는 최소한의 자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도통 돌봄을 받을 줄 모르고, 행할 줄은 더더욱 모른다. 악어에게 남은 관심사란 오로지 가까운 이를 향한 위협과, 그를 통한 부질없는 생의 일회적 연장일 뿐이다. 그런 삶을 사는 아버지들과, 그런 아버지에게 묶인 어머니들과, 그런 절망에 저당 잡힌 수많은 '나'들에 관한 이야기다.


백온유의 「샤인 머스캣의 시절」은 극심한 식품 알레르기 때문에 밀가루, 계란, 우유, 치즈, 크림, 갑각류, 견과류를 모두 먹을 수 없는 '지우'와 그런 지우를 바라보는 '희지'의 이야기다. 이런 구도에서 돌봄은 눈에 띄는 약점을 지닌 아이를 위해 일방적으로 베풀어지는 것으로 이해되기 쉽고, 그렇기 때문에 지우와 같은 이들은 자주 돌봄의 객체로 간주된다. 이야기는 반대로 지우와 같은 약자가 제 주변의 사람들을 얼마나 섬세하게 돌보는지, 그 과정에서 그들의 배려가 당연하게 강제되거나 사회적 압박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얼마나 잦은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위해준의 「바코드 데이」는 생체 바코드를 통해 자신과 잘 맞는 짝을 찾을 수 있는 기술을 중심 소재로 다루는 SF다. 이 세계에서 바코드를 통해 커플 인증을 받은 인간들은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는데, 재난 발생 시 대피소에 우선 입장할 수 있는 것도 그 혜택 중 하나다. 그러니까 이 세계는 싱글보다 커플의 목숨값이 더 비싼 대우를 받는 곳이고, 이러한 설정은 내게 최근 수년간 한국 정부와 지자체가 내놓은 일련의 형편없는 출산/결혼 장려 정책들을 떠올리게 한다.


전앤의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는 축구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에이스인 '유진'은 반대항 축구 경기에서 자책골을 넣은 뒤 자신의 오른발이 작아졌다는 걸 알게 된다. 설상가상 단짝 '남주'와의 관계도 소원해지면서 유진은 자연스레 혼자가 된다. 자랑거리였던 오른발이 한순간 고민거리로 변해버린 뒤, 유진은 그간 축구에 빠져 살피지 못했던 제 주변 사람들의 면면을 비로소 꼼꼼히 돌아보게 된다. 이 돌아봄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자기 돌봄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이야기는 당연하다 믿은 것이 당연해지지 않는 순간의 당혹감을 경유하여 돌보는 마음의 본질을 인상 깊게 드러낸다.


최영희의 「귀여워지기로 했다」에는 두 기의 로봇과 로봇의 소유주인 '다유'가 나온다. 흥미로운 점은 '므두셀라'와 '제프'라는 이름을 가진 두 로봇이 일종의 딜레마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둘은 하나의 핵심 부품을 공유하기 때문에 동시에 작동할 수 없다. 하나가 깨어 있을 동안, 다른 하나는 잠들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므두셀라'는 오래전부터 다유네 가족의 연대기를 촬영하여 기록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이 로봇의 핵심 부품이 망가지자 다유는 저렴한 중고 로봇을 구입해 부품만 빼서 갈아 끼우기로 한다. 이때 구입한 로봇이 단종된 전투 로봇 '제프'인데, 제프는 전투 로봇이라는 살벌한 용도에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며 사고를 치기 시작한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다유는 제프의 행동 이면의 동기를 하나씩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는 정말로 아름답고 소중한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해준다.


황보나의 「가방처럼」은 '희연'을 잠시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는 엄마의 말에서 시작된다. 희연이 외할머니 집에 가야 하는 이유는 어른들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는 사이가 좋지 않고, 외할머니는 치매에 걸렸다. 이틀 전에는 희연과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 '수현'이 학교 교실에 불을 지른 일로 뉴스에 나왔는데, 엄마는 희연이 그 사건과 어떤 식으로든 엮이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외할머니 집에 떠맡기듯 보내진 희연은 정작 외할머니와 어떤 일상도 공유하지 않다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자신이 내내 그의 관심과 돌봄의 온기 안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날은 춥고 시국은 엄중하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작은 돌봄에 서로 소홀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연말에 이런 책을 읽고 이런 감상을 적는 게 모쪼록 의미 있는 일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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