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느끼던 거지만 초등교사 집단에 흐르는 기류는 매우 수구적입니다. 다른 집단도 다 비슷할 거라고들 하는데, 전 초등교사 집단이 적어도 한국 평균보다는 훨씬 더 수구적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6월 14일(토) 오후 2시, 고 현승준 선생님 추모 집회에 다녀왔습니다. 전교조, 교총, 교사노조연맹이 공동 주관했고, 교사와 교육계 고위 관료와 여야 정치인들이 참석해 발언을 했습니다. 뜻깊은 말들이 많이 나왔죠. 아쉬운 건 이게 정말 교사들만의 일처럼 느껴졌다는 겁니다. 교사들 외에는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심지어 교사들 자신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기류가 집회 현장에 만연합니다.
제가 알기로 어느 업계든 노동자가 모종의 부조리한 관행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주목을 받게 되면, 여러 단체의 연대와 지지 성명이 따르게 됩니다. 그런데 교사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것이 꽤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경우에도 기이하리만치 다른 노동 단체의 연대와 지지 성명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이게 교사집단의 수구적 성향과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교사는 교육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고자 거리에 나설 때마저도 자기네 뜻이 정치논리에 오염되지 않기를 바라고, 이 학처럼 고고한 생각을 온-오프라인에서 공공연히 드러냅니다. 만약 민주노총이 교사의 죽음에 연대 성명을 낸다고 하면 정치 집회로 변질될 것을 우려해 가장 먼저 들고일어나 반대할 사람들이 바로 교사들일 거예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아주 많은 교사들이 자기네가 노동자라는 자각이 없습니다. 믿기 어렵지만 정말로 본인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들에게 교사는 아주 숭고한, 그럼에도 사회에서 비참하게 버려진, 정체불명의 무엇입니다.
초등교사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면 이러한 생각들은 더욱 공고해집니다. 일부 회원들은 교권 회복, 악성 민원인 강력 처벌, 교사 처우 개선만 된다면 나머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고, 대선 정국에서 이 같은 주장은 특정 후보의 그럴싸한 교육 공약과 맞물려 커뮤니티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요. 전 또 이렇게 되묻고 싶어요.
당신이 세상의 정의에 관심 없는데, 세상이 왜 당신의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우리가 다른 노동자들의 죽음에 관심 없는데, 왜 다른 노동자들이 우리의 죽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우리가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약자와 소수자의 삶에 관심 없는데, 어떻게 상처받은 이들이 우리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것이 우리의 목소리가 밖으로 울려 퍼지지 못하는 현실의 뼈아픈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밖 세상에 관심 없는 이들이 내는 교권 회복의 구호는 필연적으로 공허해집니다. 우리는 교사이기 전에 민주주의자이고, 차별과 폭력의 반대자이고, 약자와 소수자의 연대자여야 합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이 거대한 조류에서 벗어나 오로지 교사의 권익만이 이 사회의 유일한 문제라는 식으로 대응한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외로울 거예요.
애정을 가진 집단이 더는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소한 걱정을 끄적여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