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뜻대로
한인타운 대표 한식집「정원가든」간판 아래에는 다 바랜 조그마한 글씨로 ‘무한 리필 삼겹살 레스토랑’이라 쓰여있었다.
「야! 씨발, 고기 빨랑빨랑 갖다주지 말라고 했잖아! 노, 빨리빨리! 천천히 갖다주라고, 천천히!」
장민수는 고기 먹다 말고 흐름이 끊긴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똥이 더러워서 피할 뿐이었고, 장민수는 잠깐 똥 취급을 받아도 쩐(錢)만 많이 들어오면 그만이었다.
한국인 손님과 한국인 사장 사이에 끼이는 건, 필리핀 직원들에게 지랄 같은 일이었다. 사장은 어떤 때는 빨리빨리, 어떤 때는 천천히 천천히 이렇게 두 번씩 말하는 탓에 늘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결국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았다.
고기를 더 시킨 손님은 빤히 주방 쪽을 들여다보았고, 고기를 다 준비해 놓고도 발을 떼지 못하는 직원은 애꿎은 철판만 손톱으로 긁었다.
필리핀 직원들에겐 한국 손님들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왜 고기를 받으면 불판에 한꺼번에 다 부어 버리고 바로 더 달라는지. 그러고 나서 다 먹지도 않고 남기면, 또다시 들들 볶이는 건 직원들이었다.
민수는 일하는 것도 아니면서 늘 분주했다. 뭔 형님, 누님들은 날마다 찾아왔고, 오면 테이블마다 찾아가 술 받아 마시느라 바빴다. 그럴 때면 직원들은 어설픈 한국어로 낮게 속삭였다.
「아 씨부랄, 어쩌라는 건지.」
「돼지 쉐끼.」
이날도 어김없이 ‘어이, 장 사장’이 찾아와 이 지리한 잔소리를 끝내주었다.
‘어이, 장 사장’에게도 어엿한 이름이 있다. 하지만 직원들은 저희끼리 그냥 ‘어이, 장 사장’으로 불렀다. 그는 장민수에게 인사할 때 ‘어이, 장 사장!’하며 손을 흔들었고, 필요한 게 있을 때는 ‘어이― 장 사장―’하고 불렀다. 거의 모든 표현 앞에 ‘어이, 장 사장’을 붙이기 때문에 굳이 다른 이름이 필요 없었다.
「어이― 장 사장, 고기 좀 팍팍 내와!」
「아하―이 참, 형님 그 장 사장 소리 그만 좀 하시라니까.」
장민수는 불판에 고기를 한가득 부은 후 집게 질을 했다. 하지만 곧 맞은 편 청년이 능숙하게 집게를 달라고 하자 엉겁결에 넘겨주었다. 손이 빈 김에, 자리에 앉은 민수는 느물거리는 웃음으로 번영회 회장에게 고개를 까닥하며 인사했다.
「누님, 오랜만입니다?」
「그러게, 오랜만이네. 누가 번영회에 쌍판대기를 저언혀 안 비춰서 말이야.」
「에이 누님, 제가 거기 껴서 뭐 합니까? 서로 불편하기만 하지.」
「에헤이, 장 사장! 고깃집, 마사지, 노래방, 가게를 세 개나 하면서 코빼기도 안 비쳤단 말여?」
‘어이, 장사장’이라 불리는 성철은 이렇듯 남의 속을 뒤집는 데가 있었다.
「형님은 뭐 여기서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모르면 가만히나 계셔요. 번영회의 그 고상한 동포들은요, 제가 마사지랑 KTV 한다고 끼워주지도 않아요.」
「끼워주지 않기는 저가 혼자 꽁해서는.」
한인타운 상인회 번영회장 기숙이 구시렁대며 소주잔을 꺾었다. 그가 잔을 내려놓자마자, 고기 굽던 청년이 싹싹하게 잔을 따랐다.
민수의 눈은 화제를 바꿀만한 적절한 거리를 찾아 방황했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소주 따르는 청년에게 머물렀다.
「못 보던 얼굴들인데 누군지 소개나 해주시죠, 누님.」
「아, 그래. 손님들 모셔놓고 정신이 없네, 참. 이쪽은 크리스티나 수녀. 전에도 몇 번 본 적 있을 거야, 우리 봉사하러 갔을 때.」
피부가 뽀얀 크리스티나 수녀가 한국식으로 정갈하게 고개를 숙이자, 장민수는 반사적으로 엉덩이까지 살짝 들어가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예. 처음 뵙겠습니다.」
「….」
크리스티나 수녀는 말없이 그저 빙긋 웃어 보였다.
「크리스티나는 한국말 못해.」
민수는 영어를 잘 못한다. 그래서 멋쩍은 듯이 고개를 맞은 편 청년에게 돌렸다.
「아, 그럼… 이쪽은…」
「고기부터 좀 드시죠? 형님. 이거 다 타겠네요.」
민수는 그의 능숙한 우리 말에 놀랐다.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은 어딘가 한국인다우면서도 이질적인 빛깔이 감돌았다.
「애가 좀 싹싹하지? 군대까지 갔다 왔다더니 한국 사람 다 됐나 보더라고.」
민수는 기숙의 소개에 놀랐다. 그가 군필자라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다윗입니다. 드시고 천천히 얘기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