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죽음을 때때로 원망했던 사회생활을 위로하며
"너희 집이 부자야?"
"너희 집이 부자라서 일을 그렇게 하니?"
"정말 돈 많은 OO이도 너처럼 일 안 해"
회의실에 나를 데려간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일이 어려우면 헬스장 경리를 해"
"다들 널 뽑는 걸 후회하는 것 같아"
"너는 대리, 과장 성과급을 뺏어가는 존재야"
"지금이라도 가서 널 뽑은 건 실수였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말을 들은 날은 아빠 기일을 몇 주 앞둔 시기였다. 한 5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저 메시지를 반복 학습하듯 들었다. 그래서일까 그 말들은 잊히지 않고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공채로 들어간 회사기 때문에 명목 상의 수습 기간이 끝나고, 정규직으로의 전환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녀는 정말 날 자르고 싶어 했다.
그날의 실수는 과연 내가 이런 말을 들을 정도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담당하고 있던 업무에도 영향을 준 것은 없었으나, 지금까지 봐왔던 수많은 신입사원 중에 제일 마음에 안 들었고, 그 사원을 자신이 뽑았음에 후회스럽고, 그래서 저런 말로 내가 내심 자발적으로 나가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글쎄, 돌아봐도 저 말들은 어떠한 이유로도 이해되지 않는 말인 것은 확실했다. 왜 이렇게 그녀의 커뮤니케이션 언어는 어렵기만 했는지. 그런 어려운 커뮤니케이션은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돌아왔다.
그날부터였다.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업무적으로 잘 성장하고자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아닌, 스스로 쓸모없다는 생각을 인정해 버리는 순간이 올까 봐 일을 시작하게 된 게. 스스로 쓸모없다는 생각에 도착해 괴로워 퇴사한들, 내가 업에서 어떠한 일을 자신 있게 해 나갈 수 있을까. 뭔가 어딘가 망가져있는 사회인이 되어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내 업무적 능력에 대한 답답함에 대해서 내릴 수 있는 냉철한 평가는 모두 내뱉었지만, 그녀가 그날 내게 '너는 효용가치가 0이야'라고 한 말도, '옆에 있는 대리 과장님의 성과급을 뺏어가는 사원 존재 따위야'라는 말도, '모두가 널 뽑은 걸 후회하는 것 같아'라는 말보다 내가 상처를 받았던 건,
그날 아빠가 돌아가신 상황을 진심으로 원망했다는 것이다.
내 인생에 남을 상처가 되는 순간이었다. 1시간가량 둘만의 피드백 시간에 이뤄진 그 순간에, 남의 아빠 이야기를 두세 번 정도 반복해서 들었을 그때 즈음, 갑자기 억울했다. 아니, 남의 집 이야기가 왜 나와? 업무적인 피드백을 넘어서 인격적으로 모멸감을 느꼈다. 비굴한 감정이란 게 이런 거구나.
돈이 많은 애들도 너처럼 일을 안 한다며, 돈이 많아서 그런 거라면 그만두라는 말을 들으면서, 업무에 대한 피드백과 사적인 이야기의 경계를 무례하게 넘어 다니며 신랄한 피드백을 들으면서, 새삼 아빠가 없는 빈자리가 선명해졌고, 내가 아빠가 돌아간 사실을 진심으로 원망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말로 끝까지 내몰리는 순간에, 내 가족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사회에 발을 딛고 있는 그 순간이 슬퍼졌다.
분명 아빠와 내 일은 상관이 없었는데, 그 회의실의 50분 넘는 남짓의 대화를 거치면서 그녀의 프레임 속 나는 경력도, 돈도, 병원집 같은 집안도 없으니, 경제적 자유는 더더욱 없으니 열심히 일해야 하는 사원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녀가 내 아빠의 부재를 알고 악의적으로 하긴 말도 아니었고, 업무와 사회생활은 원래 관계를 논할 수 없다는 것 안다. 하지만 그녀가 날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안다.
인격적인 모멸감에 회사라는 공간에서 아빠의 기일이 자꾸 감정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아빠가 없어서 그런 말을 그냥 마냥 듣고 있는 것 같고, 그런 말을 들었음을 들어도 화내 줄 집안의 어른 한 명이 없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 말을 내가 들었던 것을 알면 가장 위로와 살이 되는 조언을 해줬을 사람이 부재했다. 왜 빨리 돌아가셔서 이렇게 사회에서 내몰리는 순간에도 빈자리를 느껴야 하는지, 쉽게 뭉개져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한다니. 빨개진 눈에 차오르던 잠깐의 눈물. 하지만 더 슬펐던 것은 아빠가 없는 빈자리를 느껴 선뜻 그만둬서는 안 된다는 냉정한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미 상처를 받았대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빠의 기일에 회사를 그만두고 산소에 간 딸이 되고 싶지 않아서, 아빠 앞에서는 사회생활을 어엿하게 하고 있는 사람이고 싶어서, 진짜 그만둔다고 하면 아빠를 욕되게 하는 걸까 봐, 그리고 가족들이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미생을 경험해봐야 돼"
이전 직장에서 팀장님이 인턴사원이던 나에게 했던 말이다. 신입사원이 미생처럼 일해야 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그분의 말대로 나는 미생에서의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성장하는 걸까. 왜 하필 그게 나여야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방식으로도 성장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인간적인 온정이 없는 팀 분위기와 상관없이 아빠의 존재를 진심으로 스스로 원망하게 된 날, 집에 돌아가는 버스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짓.밟.혔.다... 아빠의 죽음을 미워한 내가 너무 스스로 어리게 느껴지고 한편 불쌍했다. 타지에서 아빠의 위독한 사실을 듣고 아빠의 죽음을 처음으로 직면하며 올라오는 버스에서 참 많이 울었던 것처럼 나는 참 많이 훌쩍거리면서 광역버스를 타며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 없는 집을.
사회생활에서 아무것도 없는 0을 성장점이 아닌 손해점으로 보는 사람이라면 내 아빠가 돌아가신 상황은 개인사가 아닌 약점이 될까. 아빠가 돌아가신 상황이 약점이자 그림자처럼 보일까 봐, 회사에서는 그 뒤로 개인사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사람의 프레임이란 참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아니까.
왜 아직도 아빠가 돌아가신 상황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했는지 안타깝다. 그리고, 축하의 샴페인 앞에서 아빠에게 미안해했던 나를 돌아가 안아주고 싶다.
언젠가 팀에서 사업을 연간 비딩을 수주했을 때, 그것을 기념하는 회식을 했다. 그날은 아빠의 제사였다. 아빠의 제사에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을 보던 그 순간. '현실 자각 타임'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걸까. 사회생활에서 집에 일이 있다고 말할 마음의 여력조차 없을 만큼 사회생활을 순탄하게 만들고 싶었던 그 순간이 지나고 나니 나에게는 상처가 됐다. 모두의 사회생활은 고난과 역경이 많지만, 때로는 그 상황에서 스스로를 제일 내몰았던 것이 자신임을 깨달으면 그 순간들은 스스로가 낸 상처로 더 오래 남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했다. 샴페인을 보면서 아빠는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집에 가는 길 또 미안해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죄송해요. 하지만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제사는 매년 돌아오고, 아빠는 주말에 더 많이 보러 가면 이해해주실 것 같은데, 그걸 진짜 이야기할 수가 없었어.
시간이 흘러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은 회사를 자발적으로 그만뒀다. 그녀에게 더 이상 회사는 효용가치가 충분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의 기준으로 똑같이 회사를 내쳐냈다. 작년의 기억은 이제 현재가 아니라, 같은 회사 공간에 있었던 기억의 영역이다.
다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돌아가서 나를 안아주고 싶다. 아빠의 빈자리 대신, 아빠의 자리가 줬던 행복감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었잖아. 교훈이 나의 긍정적인 태도로 남아 지금 나를 구성하고 있으니까, 내가 잊지 않는 한 사람은 진짜 죽은 것이 아니다.
힘든 시기에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 하면서 다시 봤다. 사각지대에 몰려, 누구도 도움도 받지 못하는 지안이(아이유 역)에게 처음으로 따듯한 사람이 되어주는 아저씨 동훈(이선균 역). 나는 이렇게 내몰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보듬어줄 수 있는 드라마 아저씨의 이선균 같은 존재로 사회에 남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사람이 무엇보다 귀하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