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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감독 Jul 27. 2017

나의 치즈케이크 이야기

일상의 소소함을 감사로 바꾸는 한 스푼의 주문



"언니, 커피 말고 또 먹고 싶은 것 있어?"

휴대폰 넘어 들리는 후배의 목소리가 경쾌하다.


"음..... 치즈케이크.....!!!"

하필 치즈케이크가 생각난 걸 보니 나는 그다지 경쾌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틀림없다. 지금 나는.



마음이 지쳤다 싶을 때, 이유 없이 우울할 때, 그것도 아니면 기분이 좋아지고 싶을 때 난 치즈케이크를 찾는다.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힘들어서 치즈케이크를 찾는 게 아니라 치즈케이크가 생각날 때 거꾸로 '나 오늘 힘든가?'라고 반문하게 되기도 한다. 정작 그렇게 주문한 치즈케이크를 몇 번 뜨지도 않은 채 스푼을 내려놓으면 주변 사람들의 타박이 쏟아진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치즈케이크 타령은 왜 하냐며. 어쩌면 난 치즈케이크를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치즈케이크를 살 때의 기분, 마주하는 순간의 기쁨을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조건 반사.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건 이십 대 때부터 이어져온 나의 오랜 습관이기도 하다.

 



스물네 살의 나는 러시아라는 춥고 낯선 나라에 머물고 있었다.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을 주눅 들게 하던 나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스멀스멀 한기가 느껴지던 나라, 신문 헤드 카피에서 '소련 붕괴' 같은 표현으로나 마주하던 나라에 산다는 건 그 나이의 나에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반공 포스터를 그리며 어린 시절을 보내온 세대들에게 남아있는 막연한 두려움마저 걷어내기에 90년대의 러시아는 너무나 춥고 낯설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몇 년에 한 번씩은 찾아가는 러시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에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으니까. 그저 그 어마어마하고 무서운(?) 나라에서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가난한 이십 대의 유학생에게는 채워질 수 없는 허기만이 존재했다. 배가 고팠던 건지 마음이 고팠던 건지 아님 그 둘 다 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러시아에는 거주하는 한국 사람 자체가 많지 않았고 한국 식당이나 식료품점은 더더욱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한국 음식은 고사하고 감자 1kg, 고기 한 근을 사려고 한두 시간씩 줄을 서는 게 당연하던 때였다. 재미있는 게 그 시절 러시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방에 스타킹이나 휴지, 볼펜 등을 챙겨 다니곤 했는데, 기차 티켓을 사러 갔다가 못 구할 경우 역무원에게 스타킹이나 휴지를 건네면 없던 표가 생기곤 하던 마법이 종종 통했기 때문이다. 요즘 유학생들에겐 625 때 얘기로나 들릴법한 이런 스토리들이 그 당시 우리에겐 매일매일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었으니 한국 음식점 식료품점을 꿈이나 꿀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참 힘들고 막막한 시절이었다.


그래서일까. 유학생이라면 한 번쯤 겪게 되는 향수병이 내겐 유독 지독하게 찾아왔는데 특별히 음식에 대한 갈망이 무엇보다 심했다. 조수미 씨가 쓴 책에 '호떡'이 너무 먹고 싶어 향수병에 걸렸다는 대목을 읽고 웃어젖히던 내 모습을 후회하고 반성했다. 엄마가 해준 돼지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며, 조갯살 넣은 쌈장, 차돌박이 된장찌개, 소고기 김밥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는 잘 먹지도 않던 떡볶이, 순대, 하다못해 붕어빵까지 사무치게 그리웠으니까. 다만 며칠만이라도 한국에 다녀오길 소망했지만,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도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뜨지 않는 나라에서 심지어 티켓 살 돈도 가지고 있지 않은 가난뱅이 유학생에겐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교회에 다니는 유학생 친구들이 날 어디론가 데려갔다. 도착한 곳은 시내에 위치한 유명 호텔이었다. 모두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아주 가끔씩 한국 생각이 나면 오는 곳이라며 초보 유학생인 나를 이끈 곳은 그 호텔의 커피숍, 5성급 고급 호텔에 있기엔 지극히 소박한 서울 어디에나 있을법한 평범한 커피숍이었다. 잠시 후 친구들이 주문한 커피와 치즈케이크 한 접시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예쁜 접시 위에 지금 생각하면 블루베리 시럽 같은 게 뿌려져 있던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어, 이거 한국 맛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게 김치도 아니고 된장도 아니고 수정과도 아닌 치즈케이크를 이국 땅에서 먹으면서 '한국 맛이다'라니... 아마도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이다'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여기, 꼭 한국 같다'가 그 순간 내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한국 같다... 그제야 친구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 시절 다른 러시아 식당들이나 가게와는 달리 깨끗하고 익숙한 분위기의 실내, 코 끝을 감돌던 커피 향, 그리고 재잘재잘 끝없이 쏟아내던 친구들과의 수다와 한 스푼의 달콤한 디저트.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누렸을 이십 대의 소박한 일상이 그곳에 있었다. 치열하지만 외롭고 가난했던 유학생에게 그리웠던 건 바로 그런 평범한 일상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그리웠던 건 차돌박이 된장찌개가 아니라 엄마였다는 걸, 떡볶이가 아니라 그 떡볶이를 함께 먹던 친구 들이었다는 걸, 붕어빵이 아니라 길거리 음식 포장마차가 늘어서있던 우리 동네 어느 길목이었다는 걸. 음식은 목메는 그리움이랑 닿아있다지. 그날 먹은 한 스푼의 치즈케이크는 그렇게 나를 잠시나마 한국으로 순간 이동시켜주었다. 우리 동네 단골 카페에서 친구들과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던 익숙한 어느 날인 듯.


그날부터 난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정도, 지친 마음을 달래려 친구와 함께 그 커피숍에 들리곤 했다. 누가 유명 호텔 커피숍 아니랄까 봐 가난한 유학생에겐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지만 그만큼의 가치는 분명 있었다. 그래 봤자 치즈케이크 한 조각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방인도 유학생도 아닌 디저트를 즐기며 친구와 마주 앉아 수다를 떠는 평범한 한국의 20대가 될 수 있었다. 춥고 낯선 그곳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 하지만 난 충분히 행복했고 만족했다. 그리고 그렇게 열병 같던 첫 번째 향수병을 털어냈다.




지금도 난 가끔 치즈케이크를 주문한다. 한 조각 한 스푼이면 충분한 나만의 주문. 예전 러시아에서의 치즈케이크가 서울에서의 평범한 일상으로 가는 주문이었다면, 지금의 치즈케이크는 외롭고 막막했던 타국에서의 삶을 견뎌내고 이겨낸 내 젊은 날을 불러오는 주문이다.  

그리고 기억해낸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순간은 너무나 평범하게 반복되던 나의 일상이었음을,

한 스푼의 치즈케이크 만으로도 행복해지기에 부족함이 없던 시간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 힘들고 막막했던 날들조차 지금은 또 다른 그리움으로 불러내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음을...


더 많은 걸 소유하고 누리면서도 감사를 잃어버린 날에,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 참을 수 없이 외로운 날에, 아무 의욕도 없이 무기력한 날에, 그냥 추운 날에, 그냥 무료한 날에... 괜찮다고, 또 잘 해낼 수 있다고 나에게 거는 한 조각의 주문.
일상의 소소함을 감사로 바꾸는 한 스푼의 주문.
나의 치즈케이크 이야기.




   

음식이 목메는 그리움과 닿아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서명숙 '식탐'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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