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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감독 Aug 08. 2017

배고픔과 목마름을 구별하는 것

나에게 서툴게 말을 걸다




어느 날, 습관처럼 켠 TV에서는 늘 그렇듯 '뻔하지만 새로운 정보'들을 전해주는 아침 방송이 한창이었다.

건강이 어쩌고 다이어트가 어쩌고 요리가 어쩌고 하는 아침 방송은 사실상 시청이 목적이라기보다 전쟁터로 출정하기 직전 집에서 마지막으로 치르는 게으름의 의식 같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침마다 전해지는 새로움으로 포장한 뻔한 정보들은 집을 나섬과 동시에 물거품처럼 기억에서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아마도 의사였던 것으로 기억되는 한 패널이 전해준 정보 하나가 계속 뒤통수를 따라다녔다. 내용인즉슨 '사람들은 종종 배고픔과 목마름을 착각한다'는 것이었다. 택시 안에서도, 회의 장소로 이동을 해서도 자꾸만 그 말이 떠올랐다. 사람이 배고픔과 목마름을 혼동할 수 있다고? 그래서 목이 말라도 음식을 찾게 될 수 있다고? 뒤통수를 뭔가로 얻어맞은 느낌... 계속되는 질문과 아직은 찾지 못한 답 사이에서 몇 번이나 그 내용을 되뇌었다. 아무래도 내 안의 무엇인가를 툭 건드렸나 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발견한 포털사이트의 다이어트 칼럼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배고픔과 목마름을 담당하는 우리 뇌의 시상하부에서 신체에 물이 부족하면 뇌가 착각해 배고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배가 고프다면 물 한잔을 마시고 10분 정도 기다려 보는 것도 영리한 다이어트법이라는 내용이었다. 


일단 궁금증은 풀렸는데 뭔가 개운하지가 않았다. 내가 배고픔과 목마름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다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하긴, 밥을 먹고 돌아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배가 고팠던 경험들은 내게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를 외치며 오밤중에 라면을 끓였다가 정작 배가 불러 그림의 떡을 만든 기억이라든지, 뱃속에 거지가 들은 듯 이유를 알 수 없는 허기에 시달리며 식탐의 노예가 됐던 기억 등등. 그런데 그 순간 내가 정말로 원했던 게 한 모금의 물일 수도 있었다니... 이건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뭐, 따지고 본다면 뇌가 착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데 그게 내 잘못 일리는 없다. 잘못이라면 그렇게 설계하신 분의 잘못이겠지. 그런데 나의 찜찜함 역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금방 밥을 먹고 돌아선 내가 또다시 음식을 탐할 때 왜 난 한 번도 의심하거나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일까. 나의 결핍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왜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고만 생각했을까. '뭐 먹고 싶어?'하며 친구들의 점심 메뉴 선택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내가 왜 정작 내 마음에는 관심을 쏟지 않고 살고 있는 걸까...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날 그 아침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가 건드린 게 바로 이 부분이었나 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남에게는 친절하고 나 자신에게는 불친절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배려심 많은 친구, 잘 들어주는 선배, 눈치 빠른 후배로 살고자 노력하는 사이 정작 나에게는 배려 없고 들어주지 않고 눈치코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간에 쫓기고 사람들에 치이고 피곤에 절어 고갈된 에너지를 나눠줄 여력이 없었다고 변명해보지만, 우선순위에서 제일 먼저 열외 시켰던 게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슬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내 마음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목이 마르다는 신호를 알아채지 못한 채 치킨을 꾸역꾸역 삼켜대게 하고, 몸이 쉬고 싶다는 신호를 알아채지 못한 채 더 치열해야 한다고 회초리를 드는 격이었을 테니. 그러니 아팠을 것이다. 설상가상 나는 그렇게 배탈이 나고 탈진을 하여 너덜너덜해진 나를 종종 한심하게 바라보기까지 했다. 이거야말로 갑질 중에 갑질이다. 그런데 내 잘못이 아니라니... 분명 나는 잘못하고 있었다.


비단 물과 음식의 문제만일까. 지나간 시간 속의 내 모습들을 떠올려본다. 얼마나 많은 순간 나는, 나의 결핍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엉뚱한 것들로 채우고 있었을까. 그 엉뚱한 것들은 여러 가지 가면으로 내 곁에 머물다 갔을 것이다. 때로는 집착했던 사랑의 가면으로, 때로는 욕심냈던 물건의 가면으로, 때로는 나를 혹사시켰던 일의 가면으로...


그게 전부인양 내가 매달렸던 그 가면들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느라 정작 그 뒤에 가려진 내 마음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순간 내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작은 온기, 작은 위로, 작은 인정이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 마음들을 느껴주고 토닥여주고 잘 흘려보내 줬더라면 나는 좀 더 맑은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돌봐주지 않은 마음들이 목이 마르다 아우성을 치는 줄도 모르고 외려 기름진 음식만을 탐했던 미련한 지난날... 그래서 나는 소화시키지 못한 음식들 때문에 자주 탈이 나곤 했으니까. 


더 이상은 목마른 나에게 목이 메는 음식을 처방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자는 데에 생각이 이르렀다. 한 모금의 물로 해결할 수 있는 갈증을 채우기 위해 기름기 가득한 음식들로 과식을 하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겠다.  죽는 날까지 실패하고 실수하는 게 사람인지라 이렇게 마음먹어봐야 하루도 못 가 꾸역꾸역 토할 때까지 라면을 먹어댈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조금 더 귀 기울이고 조금 더 들여다보고 조금 더 말을 걸어주는 노력을 반복하다 보면 나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복잡했던 생각의 흐름이 종착지에 다다랐는지 느려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갑자기 아침 방송에서 시작된 이 비약적인 생각의 전개가 어처구니없어 웃음이 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다더니, 내게 이 결론을 던져주기 위해 그날 아침 방송 패널은 화두를 던졌나 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했는지 갑자기 배가 고프다.

그런 나에게 매우 어색하게 말을 걸어본다.




"..... 혹시 목이 마른 건 아니지?"







PS: 귀한 깨달음을 주신 이름도 모르는 아침 방송 패널분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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