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드 vs. 페라리'를 통해 순수한 열정 되찾기
나는 올해 23살, 대학교 3학년이다. 학교에서는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지만, 정확한 진로 혹은 원하는 직업에 대해 늘 고민하고 지냈다. 그런 와중에, 혜민 스님의 대표작인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고 잠시 생각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말하는 꿈이 아닌, 진정 내가 찾고 싶은 꿈을 꾸기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휴학을 결정하고, 학교가 아닌 새로운 경험을 누리고자 인턴 자리를 알아보았다. 잡플래닛, 사람인, 각종 구직 카페, 심지어 회사 건물로 무작정 찾아가 인턴 공고가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 끝에, 비싼 전시작품을 합리적인 월정액으로 빌려주는 스타트업의 인턴으로 입사했으며, 이렇게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입사일을 되돌아보자면, 온통 설레는 마음뿐이었다. 꾀죄죄한 학생의 티를 벗고 나름 세련된 직장인의 모습으로 갖추기 위해, 거울에 여러 가지 옷을 대보고 화장도 여러 번 덧칠하면서 나를 바꿔보았다. 새로운 오피스에 도착했을 때 나만의 책상을 마주했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나의 힘으로 얻었다는 사실에 자존감이 높아졌다.
기쁨의 순간도 잠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접하는 업무 형태였기에 나를 힘들고 당황케 하는 순간들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자존감이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사수의 말 한마디에 나는 고개를 자주 숙였으며, 더 잘하고 싶은 마음만 커져갔다. 따라서, 일보단 어른들과의 관계에 더 집중했고 그만큼 민감하고 어려운 부분이었다.
회사에서는 정제된 행동과 말을 해야 했으며, 어색한 오피스 분위기와 선을 넘지 않는 농담들이 나를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인턴이 끝난 후, 사회 무리 안에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나만의 뚜렷한 주관을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
몇 달 전 개봉한 영화인 <포드 vs. 페라리>를 보고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깨달았다. 평소 자동차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좋아하는 조승연 작가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관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줄거리를 짧게 요약하자면, 실화를 바탕으로 산업혁명 때 자동차의 대량생산 시대로 이끈 미국의 '포드'와 정교한 장인정신과 스포츠맨십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페라리'와의 경쟁에 대한 영화다. 기업을 넘어 국가 간 자존심을 건 레이싱을 하게 된 배경은, 당시 전 세계로 자동차를 공급하면서 성장하던 '포드'가 저렴한 승용차 외 스포츠카 시장에도 판매 영역을 넓히기 위해 '페라리'에게 인수 합병을 제안했고, 오래된 역사와 높은 콧대를 자랑하던 '페라리'는 이를 보기 좋게 거절했다. 그리고, 1923년 둘은 역사상 가장 오래됐고 거칠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소도시에서 열리는 르망이라는 경기에서 이 두 기업은 다시 만나게 됐다.
내 눈을 사로잡았던 부분은 주인공 캔 마일스와 이전 레이서인 캐럴 셸비 그리고 레이싱카인 GT40과의 캐미이다. 중대한 경기를 앞두고 레이서로서 변변치 못한 배경을 갖추고 있던 캔 마일스에 대해 모두가 그를 신임하지 않을 때, 캐럴 셸비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그를 믿고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그리고, 경기 직전까지 레이싱카의 브레이크가 계속 말썽을 부렸는데,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행하는 장면이 아직도 짜릿하게 기억이 난다. 레이싱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사회생활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잃어가는 것은 마음의 여유와 순수함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의 일원으로 가면을 쓰고 행동해야 하는 현실이 속상했지만 모두가 겪는 아픔이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마일스의 행동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 초반에는 그의 거친 행동과 고집스러움에 대해 '포드'의 부사장인 리오 비비는 그를 '사회 부적응자' 혹은 '지나친 순수함'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경기에 출전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의 꿈과 열정에 대한 굳은 신념 덕분에 그는 온전히 경기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포드'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착한 사람보단 단단한 사람이 되시고,
단단한 사람보단 지혜로운 사람,
지혜로운 사람보단 아는 걸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덕을 갖춘 사람이 되셔서
이 험난한 세상 잘 헤쳐나가시길…
<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중 (p.52), 혜민 스님>
어떨 때는 그 누구의 말도 무시한 채 나를 온전히 믿고 달리는 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일스는 레이싱에 대한 순수한 열정 하나로 쉘비에게 신임을 얻었고, GT40과 환상의 캐미를 보였다. 나는 그런 그를 닮고 싶다.
요즘 나는 진로 고민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서 천천히 알아가는 중이다. 진로에 대한 두려움을 시작으로 무심코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초반에는 나 스스로에 대한 좌절을 느꼈다. 아직도 미래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더 이상 실망하지 않고 마일스처럼 순수한 열정을 지키고 삶이라는 경주에서 용감하게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