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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Oct 12. 2021

유부녀가 영국에서 데이팅 앱 써본 썰

여사친 찾습니다, 범블(Bumble) BFF

나는 기혼 여성이다. 그것도 결혼 6년 차. 소개팅도 살면서 몇 번 안 해봤고, 마지막 소개팅 이후 연애해서 결혼했으니(...) 나의 가장 최근 소개팅은 8년 전인가, 7년 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TMI지만 나의 마지막 소개팅 이야기는 여기에) 내가 한창 연애를 할 때는 데이팅 앱이 그다지 흥하지 않았었고, 활발히 사회생활을 할 때라 소개팅 받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느껴질 때였다. 


그러던 내가, 영국에 와서 데이팅 앱을 설치했다.


상황만 보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가정의 평화를 깨는 어그로처럼 보이지만, 이성친구를 사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귀하다는 '동네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였다. 밑도 끝도 없이 데이팅 앱 찾아서 설치한 건 아니고, 올해 초 클럽하우스에서 알게 된 친구 부부와 만나서 밥을 먹었는데 이걸로 동네 친구들 만났다는 후기에 덥석 시도해 본 것. 쓰고 보니 참 요즘스러운 만남이네, 클럽하우스로 알게 된 친구를 영국에서 만나서 범블을 시도하다니. 뭐 여하튼 그렇다. 


(참고) 실제 나의 범블 앱에 나오는 화면은 개인적인 내용 (상대방의 사진, 개인정보 등)이 너무 많아서 범블 홈페이지나 기사에 나온 이미지로 대체합니다. 


Bumble BFF


1) 프로필 작성


애초에 데이팅 앱 사용 경험 자체가 없어서 첫 시작은 어색했다. 일단 내 프로필과 매력적인 사진을 잔뜩 올려야 한다. 그리고 나의 정보를 입력하는데 결혼 상태, 자녀 유무, 별자리, 거주지, 출신지, 코로나19 백신 접종 여부 (ㅋㅋㅋ) 등등 아주 다양한 정보를 넣을 수 있다는 점. 가짜 계정을 막기 위한 인증 프로세스도 있고, 자기소개가 막막한 사람들을 위한 100문 100답스러운 질문들도 있다. (BFF랑 하고 싶은 것은? 이라든가 요가 vs 하이킹 이라든가...) 


2) 스와이프 


그다음에는 내 앞에 쌓인 프로필 카드를 계속 스와이프 하면 된다. 왼쪽은 선택 안 함, 오른쪽은 선택함! 처음에는 밑에 스크롤 내리는 게 있는지 모르고 '아니 얼굴만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지?' 싶어 무한 왼쪽 스와이프 (= 선택 안 함)를... 


Bumble BFF 소개 영상


사실 이 서비스 만든 사람들은 그걸 의도했는지도 모른다. 얼굴 보고 첫인상만 보고 바로 선택할 수 있게! 초반에는 기획이 좀 잘못된 것 아닌가 했지만 손목에 건초염 올 만큼 수천번 스와이프를 하고 나니 (이 표현은 이전에 타인의청춘 작가님이 쓰셨던 건데 여기 인용합니다 ㅎㅎ) 그제야 알게 됐다. 외모가 예쁘고 못생기고 가 아니라 몇 초면 대략 느낌이 온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눈에 띌 수 있게 고양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메인 사진으로 올려두었다. (ㅋㅋㅋㅋ) 


일단 나는 클럽 또는 파티 같이 가자는 친구들은 나랑 잘 맞지 않을 것 같아 제외하고, 브런치 또는 카페 탐방을 갈 친구 구한다거나, 동물을 좋아하거나, 우리 동네 친구 찾는다는 메시지가 있으면 오른쪽 스와이프 (=선택함)를 했다. 내가 그런 것처럼 대부분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이 서비스를 시작한 사람들이 많았다.  


3) 매치 + 채팅 


이렇게 좌우 스와이프를 열심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매칭이 뿅하고 된다. 그 다음은 채팅을 통해 서로 알아가면 되는데 24시간 내에 아무도 말이 없으면 그 만남은 다시 대화할 수 없는 사이로 돌아간다는 점... 그래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먼저 말을 걸어야한다. 


신기한 경험은 여기에서 한국 여성분들도 많이 매치됐다는 점이다. 내가 사는 동네가 런던 한인타운과 가깝기도 하고 삼성, LG 유럽 오피스와 멀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내 또래 여성분들이 꽤 있었다. 영어로 말할 때는 티키타카 잘 안되던 것이 한글로 하니 어찌나 편하던지...! 그렇게 4-5 분하고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 집에서 딱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사는 동네 친구, J님을 만났다. 




범블을 쓰다 보니 이 서비스가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보통 데이팅 앱의 대명사는 틴더(Tinder)로 알고 있는데 이 서비스는 어떻게 흥한 걸까. 범블 창업자 휘트니 울프 허드는 틴더 공동 창업자였는데, 틴더 마케팅 부사장이었던 당시 사내 성희롱과 차별 문화를 지적하며 회사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퇴사했다고. 그 후 나와서 만든 게 범블이고, 범블은 여자가 먼저 24시간 이내에 메시지를 해야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호우!) 그리고 무려 상장회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범블을 쓰면서 '아 이런 기능은 없나...?', '이런 기능 있으면 좀 더 편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은 모두 유료 서비스라는 점. 잘못 스와이프 해서 돌리는 기능이라든지, 필터를 좀 더 자세하게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이라든지, 나를 선택한 사람을 볼 수 있는 기능이라든지, 아니면 스와이프 무제한(?!) 할 수 있는 기능이라든지... 무료로만 써도 지장은 없지만 돈을 쓰면 확실히 더 편해진다는 점에서 설계가 참 잘 돼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이건 틴더도 비슷) 


데이팅 기능은 안 써봐서 (... 쓰면 큰일 남) 잘 모르지만 어디서 들은 후기에 따르면 여자가 먼저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시스템 때문에 인내심 없는, 빠르게 원나잇 스탠드 하려는 남자 비중이 적다고. 그리고 친구 찾기 모드(BFF: Best Friend Forever),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모드(Bizz)가 따로 있어서 여성들이 원하는 소셜 액티비티가 뭔지 잘 알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락다운으로 자만추가 거의 불가능해지다 보니 이런 서비스가 더욱 흥하고 있다는 점. 



인간관계에는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다


해외 생활하기 전에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거의 없었다. 나는 늘 학교든 직장이든 조직에 속해있었고,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인간관계가 알아서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같은 조직에 있는 사람들이니 애초에 비슷한 사람들이고, 공통점이 많고, 애써 맞추려고 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러다 조직을 떠나 외국에 나와보니 이제부터는 꽤 많이, 정말 많이 노력해야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작위적일 필요는 없지만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하고, 관심과 호의를 보여주고, 이야기했던 내용을 기억해서 다시 물어봐주고. 적고 보면 별 것 아닌 거 같아도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다 놓아버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조직이라는 울타리가 없으니 나와 완전히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순간도 온다. 


요 근래 범블뿐 아니라 다른 채널을 통해서도 새로운 사람들을 연달아 몇 번 만나고 (또는 온라인에서 대화를 하고) 나니 다른 의미에서 소개팅을 시작한 기분이었다. 나를 소개하고, 대화가 끊어지지 않게 답변하고, 관심사가 무엇인지 찾아보고 등등. 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지만 동시에 재미있는 일이기도! 코로나 시대에 집에서 남편, 고양이하고만 있다 보니 말주변이 줄었다는 걸 새삼 깨닫기도 했다. (....) 


베트남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영국에서도 소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길 바라며 :) 



생각나서 덧붙이는 에피소드 몇 가지


남편도 범블 BFF를 시도해봤는데 남자들은 BFF를 앱에서 찾고 싶어 하지 않는지, 아니면 범블 앱이 좀 더 여성향이라 그런지 프로필 카드가 금방 바닥났다. 그리고 남자들은 동네에서 같이 축구 볼 사람을 간절히 원하는 듯... 

범블은 얼마 전 전 세계 직원 모두에게 1주일 강제 유급휴가를 줬다. 이유는 번아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엄마들의 틴더로 불리는 피넛(Peanut)이라는 서비스도 있다. 임신, 출산, 육아 과정에 같은 관심사와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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