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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Dec 10. 2021

영국에서 집 구하기, 우리 집은 어디에?

40장짜리 렌트 계약서를 보고 충격 받았던 날의 기억

이 집에 이사 온 지 9개월, 얼마 전 집 계약 연장하면서 브런치에 집 구하는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전에 말한 대로 나는 베트남에서 집 구하기의 달인이 돼 있었고, 영국에서 집 구하는 것쯤이야 하면서 자신만만했지만...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더 늦으면 아예 기록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10개월 전 기억을 되짚어 소소하게 기록을 남겨본다. 


지역과 예산을 먼저 정한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내가 살 곳을 정할 때 가장 큰 조건은 바로 지역과 예산 (렌트비가 됐든 매매 가격이 됐든)이다. 요즘은 매물을 볼 수 있는 플랫폼이 워낙 잘 돼 있어서 하루 이틀 검색만 하면 대강 평균적인 시세는 알 수 있을 정도. 다른 분들도 많이 이야기했지만 영국에서는 보통 Rightmove 아니면 Zoopla를 많이 본다. 렌트 가격을 원화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가격인데 대체로 영국에서는 월급에서 상당한 부분을 월세에 지출한다. (또르륵...) 


지역은 대부분 직장 위치를 기준으로 결정하는데 요즘은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보편화돼서 중요성은 많이 떨어지는 듯. (그나저나 이렇게 재택근무 3년 차가 되다니.. 믿을 수가 없다) 센트럴 런던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면 대중교통 (기차, 튜브, 버스 등) 이 중요할 테고, 차가 있으면 그 중요성은 조금 낮춰도 되고. 그 외에도 아이가 있다면 학군, 차가 없다면 마트나 생활 편의시설 접근성도 중요하게 볼 수 있다. 운동 매니아라면 조깅할 만한 공원이나 코스가 있는지, 산책할 만한 녹지가 있는지도 포인트. 


조나단은 센트럴 런던으로 출근하지 않고 차로 출퇴근할 예정이었어서 센트럴 접근성은 조금 내려놓고 대신 Greater London 끝자락에 있는 지역으로 정했다. 또 의외로 초반 정착할 때 유용할 것 같아서 본 건 한국 식료품 바로 배송 가능 지역! 별거 아니지만 이런 소소함이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준다는 걸 베트남에서부터 경험해서 알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빠르게 뷰잉 신청


우리는 당시 정착을 도와주는 에이전시가 있어서 담당 직원을 통해 원하는 조건을 아주 세부적으로 이야기했었다. 어떤 지역에, 예산은 이 정도고, 집 크기는 이 정도는 됐으면 좋겠고, 방은 2개, 고양이 받아줘야 하고 등등. (의외로 고양이 때문에 뷰잉도 못한 집들이 꽤 많았다. ^^;) 그리고 rightmove 랑 zoopla에서 직접 마음에 드는 매물을 골라서 리스트업 한 뒤 담당 직원에게 전달했고, 그러면 그분이 알아서 뷰잉 날짜를 잡아줬다. 그래서 하루에 3~5개를 보고 이틀 뷰잉 끝에 지금 사는 곳을 잡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덕에 정말 편하게 집을 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 모든 걸 해야 한다면 직접 그 매물 올린 부동산에 전화해서 뷰잉 하고 싶다 이야기하고 일정 조율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 보는 눈이 다 똑같기 때문에 괜찮은 집은 뷰잉 하고 싶다 말하는 순간 이미 나간 경우도 정말 흔하다는 점... 심지어 우리는 담당 직원분이 뷰잉 일정 잡아줘서 그 장소에 도착했는데 그 사이 나갔다고 한 적도 있다. (....) 


뷰잉 할 때 최대한 꼼꼼히 확인하기


한국이나 베트남에서는 대부분 아파트에 사니까 '아파트 후기'라는 게 있는데 여기는 신축 고층 빌딩에 사는 경우가 많지 않다. 내가 보는 매물마다 컨디션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는 점. 나는 그래서 집 들어가는 입구부터 다 동영상으로 찍어놨었다. 뷰잉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구글맵 현 위치 캡처는 기본. 눈에 보이는 거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데 에이전트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 주차는 어디에 하는지 (지정된 장소가 있는 경우도 있고, 카운슬에 퍼밋 등록해서 길에 주차하는 경우도 있고), 주차 공간은 넉넉한지 

- 난방은 어떤 방식인지 (가스 히팅이 효율이 높음)

- 창은 이중창 (double-glazed) 인지 (이중창 아니면 난방 효율 떨어짐) 

- 화장실 환기 방법 (습기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있든지 환풍기가 있든지 해야 함) 

- 쓰레기 버리는 방법 


등등. 


우리 부부는 주방 기구가 워낙 많아서 주방 수납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또 수도꼭지는 구식이 아닌 레버형을 선호했다. (안 그러면 매번 양쪽 수도꼭지 틀어야 함) 바닥은 전체 카펫보다는 나무 바닥이었으면 좋겠고, 플랫인 경우 건물이 너무 크지 않았으면 했다. 참, 1층( = Ground Floor)은 무조건 제외. 어떤 집은 엄청 깔끔한데 렌트비가 저렴해서 가 보면 반지하인 경우도 있었다. (ㅋㅋㅋ) 


한국에서는 아파트가 대부분 남향이기도 하고 남향을 워낙 선호해서 다들 그 방향을 엄청 보는데 호치민은 1년 내내 여름이라 남향이나 서향집 들어가면 너무 더워서 힘들다. 영국에 와보니 집마다 방향이 중구난방. 1년 남짓 살아보니 영국은 해가 짧아서 오히려 살짝 서쪽을 향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 집 거실은 북동쪽, 주방과 화장실은 남서쪽을 보고 있는데 거실은 좀 춥지만 물 쓰는 화장실과 주방에 햇빛이 잘 들어서 맘에 든다. 


그리고 영국 와서 느낀 건 길 하나마다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는 것. 아주 소소한 건데 지금 우리가 사는 집 길은 차 한 대가 적당히 속도 내며 갈 수 있는 정도인데 바로 옆 길은 길 양 옆으로 빽빽하게 주차가 돼 있어서 움직이기 쉽지 않은 정도였다. 그리고 밤에 가보면 어떤 길은 다닐 만한데 바로 옆 길은 분위기가 좀 험악하다든지... 그래서 뷰잉 갔을 때 집 인근 환경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마음에 드는 집은 빨리 오퍼 넣기, 레퍼런스 체크, 계약, 인벤토리 체크
feat. 영어 독해


앞서 말한 대로 사람 보는 눈이 다 똑같아서 괜찮은 집은 정말 빨리 나간다. 우리는 지금 사는 집 보자마자 오퍼를 넣었고, 당시 2-3팀 정도 더 있다고 했었지만 다행히(!) 우리가 이 집을 계약할 수 있었다. 오퍼를 넣으면 이제 레퍼런스 체크를 하기 시작하는데 정말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싶을 정도로 개인정보를 많이 넣는다. 


한국이나 베트남에서는 신분증 외에 다른 정보는 보지 않았던 거랑 매우 대조적. 우리는 플랫폼을 통해서 개인정보를 입력했는데 여권, 비자(BRP)는 기본이고 3년 이내 주소랑 집주인 연락처, 연봉계약서까지. 가장 중요한 건 이 렌트비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인가, 라는 점. 일단 세입자를 들이면 함부로 내보낼 수 없기 때문에 들이기 전에 아주 꼼꼼하게 확인하는 듯. (베트남에서 3주 만에 나가라는 얘기 들었던 그 순간이 갑자기 스쳐 지나가네...) 그리고 우리는 고양이가 있어서 고양이 프로필 (나이, 외출냥인지 여부, 중성화 여부 등)도 받아갔다. (ㅋㅋㅋ)


갑자기 영어 독해 시간, 계약서 40장

이제 레퍼런스 체크가 끝나면 계약서가 온다. 세상 이렇게 긴 렌트 계약서는 처음 받아봤다. 40장... 영어 시험장에 앉은 것처럼 한 장 한 장 꼼꼼히 읽어봤는데 여기 나온 표현들이 일상에서 쓰는 것들이 아니라서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도 거의 다 뻔한(?) 내용들이어서 이상하다 싶은 건 없었지만 중간중간 '아니 이런 것까지?' 스러운 것을 발견하기도. 


당시 락다운 기간이라 계약서는 어떻게 사인하나 싶었는데 2020년 코로나 시국답게 계약서는 모두 전자서명으로 했다. (feat. DocuSign) 모든 페이지에 사인을 넣어야 하고, 고양이 관련 계약서도 따로 있음. 


인벤토리 체크, 47장.. 


계약이 끝나고 입주 전에 인벤토리 체크라는 걸 하는데 이걸 또 대행해 주는 업체가 있어서 현재 집 상태를 아주 꼼꼼하게 기록한 문서를 또 보내준다. 이건 워드로 47장. 이걸 보고 빠진 게 있는지 확인하고, 입주하고 7일 이내에 뭔가 잘못된 게 있으면 얘기를 해야 한다. 다행히(?!) 세탁기가 7일 이내에 고장 나서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님을 인정받았고 지금은 새 세탁기가 와서 아주 잘 쓰고 있다. 


이렇게 집 찾는 것부터 입주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3~4주 정도. 한국에서는 집 보러 다닐 때 최소 2-3달 전에는 다녔던 것 같은데 영국에서는 너무 일찍 보러 가면 바로 이사 올 수 있는 다른 세입자 후보에게 밀린다. 그리고 한국과 베트남에서 계약은 엄청 빠르게 진행된 반면 여기에서는 레퍼런스 체크도 해야 하고, 확인해야 할 부분이 많다 보니 시간이 좀 더 걸리는 편. 



쉽지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금 사는 곳에 들어와서 이사도 하고, 조금씩 우리 취향에 맞게 집을 꾸미기도 하면서 계약을 1년 더 연장하게 됐다. (덕분에 이사를 안 해도 돼서 너무나 행복!) 우리는 지금 사는 곳에 매우 만족해서 가급적이면 이 동네에 계속 살고 싶은 마음이다. 


어쩌다 보니 해외이사를 여러 번 하며 살고 있는데 집 구할 때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자주 한다. 경험이 쌓이면서 내가 원하는 생활상이 더 또렷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과연 진짜 우리 집은 어디에 있을까? 


입주 전과 후

 


FYI

거주자 통계 볼 수 있는 곳 https://www.streetcheck.co.uk/

내가 살 동네 거주자들의 통계를 매우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어떤 유형의 집에 사는지, 연령은 어떤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심지어 인터넷 속도까지 나옴. 우리 동네는 보니 1-2인 가구가 대부분이다..!


범죄 통계 볼 수 있는 곳 https://www.police.uk/pu/your-area/


우편번호 넣으면 어떤 유형의 범죄가 보고 됐는지, 어떤 상태인지까지 알 수 있다. 동네 비교하기에 매우 유용. 


영국에서 집 렌트하기 가이드 https://www.gov.uk/government/publications/how-to-rent

부동산에서도 보내 준 자료인데 렌트에 대한 정부 가이드가 아주 상세하게 잘 나와있다. 예를 들면 보증금(deposit) 은 얼마를 줘야 하는지, 계약 기간은 최소 얼마 이상으로 잡아야 하는지 등등. 세입자가 내야 하는 돈과 절대 청구해서는 안 되는 돈에 대해서도 나와있어서 이것만 제대로 확인하면 사기당할 일은 없는 걸로. 참고로 영국에서 세입자는 부동산에 줘야 할 돈이 1도 없다. (복비는 집주인만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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