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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Mar 18. 2021

영국으로 이사하며 나의 사고방식이 달라졌다

아웃소싱에서 DIY 중심으로

우리는 드디어 지난주에 베트남에서 온 이삿짐을 풀었다. 2020년 12월 베트남 집에서 짐 뺀 이후 임시 숙소 3번 (베트남, 한국, 영국)에 이어 마지막 이사다. 그전에 베트남 정착할 때도 해외이사 1번, 호치민 내 이사 2번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우리는 그야말로 프로 이사꾼이라 생각하고 (하지만 정작 한국 내에서 이사를 해 본 적이 없다..) 자신만만하게 덤볐지만 역시 해외 정착이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아파트가 살기 좋아요? 에 익숙했던 나, 맨땅에 헤딩


런던 근교 도시 지도

호치민에서 집 구할 때는 대부분 어느 아파트에 살지를 결정한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이 사는 동네는 대체로 정해져 있고,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아파트 또한 일부였으니. 그래서 오히려 집 구하는 데 있어서 동네 선택은 끝난 거고, 유닛만 잘 고르면 괜찮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 서울 생활도 비슷하겠지만 - 각자 직장과의 거리, 학군, 대중교통 접근성, 예산 등을 놓고 자신에게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남편 직장은 런던이 아니라서 굳이 인 런던을 고집할 필요가 없고,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출퇴근에 대한 중요도는 많이 낮출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니 학군 프리미엄은 낼 필요 없고, 자동차가 있어서 대중교통 접근성 또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걸로. 


임시 집 숙소가 있던 동네 (= 남편 회사 근처)는 런던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라서 주변 편의시설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학군이 좋은 곳이라 그런지 렌트 매물도 대부분 가든 딸린 하우스가 많았고, 렌트비도 비싼 편. 그래서 이 기회에 인 런던은 아니어도 런던 가까이는 가보자, 해서 서비튼(Surbiton)이라는 동네에 집을 구했다. 킹스턴 중심가와도 멀지 않고, 집 근처에 강이 있어서 산책하기도 좋고, 조용하고 아담한 곳이다. (집 이야기에 대해서는 언젠가 정리된 다음 다시...) 


환장하는 인터넷 신청 에피소드


집 계약 시작일은 3월 5일, 이삿짐 들어오는 날은 10일이지만 영국 일처리가 워낙 느리다고 해서 미리 인터넷을 신청하기로 했다. 인터넷 사업자가 어찌나 많은지 한참 가격비교를 한 뒤 가장 속도가 빠르다는 Virgin Media에 가입하기로 결정! 홈페이지에 가서 가입하고 정보만 넣으면 되겠지...? 는 개뿔. 개인정보 포함 3년 전 주소까지 싹 다 집어넣고 난 다음에야 간신히 설치일을 선택할 수 있는데 무려 3주 뒤인 3월 23일이 가장 빨랐다. 


전설의 3주 뒤 인터넷 설치

이 와중에 우편번호를 잘못 넣어서 정보를 수정하려는데 당연히(?) 플랫폼에서는 수정이 안되고 전화로 해야 하는데 또 당연히(?) 전화 연결은 바로 안 됨. 30분인가 걸려서 전화 연결하면 인도에 있는 콜센터에서 개인정보 확인 오조오억 번 거친 다음에야 수정할 수 있는데 여기서 알게 된 건 Virgin Media는 빠른 대신 따로 케이블 설치를 해야 한다는 점. 이전에 이 업체 인터넷을 쓴 적이 없으면 벽에 구멍을 내야 한다. 힘없는 세입자인 우리는 그냥 취소해 달라고 했고 생각보다 이건 아주 쿨하게 진행됨. (.... 뭐지) 


조금 더 환장하는 건 인터넷 설치가 23일에 된대서 데이터 쏴주는 동글을 미리 사려고 했는데 이것 또한 본인 확인 오조오억 번 하더니 결국 안됐다. (영국의 본인 확인 절차에 대해서는 다음에 따로.... 이것도 매우 혈압 오르는 일임) 


그다음 sky라는 다른 업체에 인터넷과 TV 신청을 했는데 집주인이 위성 신호 받는 접시(진짜 여기서는 dish라고 했음) 설치를 허락하지 않아서 TV는 또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됨. 당연히 또 플랫폼에서는 취소가 안되고 20분 걸려서 연결된 전화에 얘기했더니 정말 천만다행으로 인터넷은 접시 없어도 된다고 한 것. 그리고 여기는 설치 기사가 오는 게 아니고 라우터 택배로 보내주면 내가 셀프 설치하면 된다고 했다. (할렐루야!) 약속한 시간에 라우터가 오는 게 관건이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이삿날 딱 맞춰서 라우터가 와서 인터넷은 아무 문제없이 잘 쓰고 있다. 


베트남에서 보낸 짐 + 영국에서 짐 풀기 = 대환장


앞서 말한 대로 집 계약은 5일부터 시작이고 짐은 10일에 들어오니 그전에 야금야금 임시 집의 짐을 우리 집에 옮겨다 두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러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이사할 때도 기간을 살짝 오버랩 해 두는 게 좋을 듯. 


갑분 빙고, 어마어마한 캣타워, 짐 다 풀고 난 다음의 모습


여하튼 대망의 짐 들어오는 날. 너무나 감사하게도 우리 격리할 때 밥솥 갖다 주신 남편 동료의 아내분께서 짐 정리를 도와준다고 하셨다. 아침 일찍 이삿짐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도착했더니 이미 업체 직원들이 와 있었음.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집이 계단 별로 없는 2층이라 (= 천고가 높지 않다는 뜻임) 짐 못 나른다고 말하지는 않았다는 점. 


호치민에서 살던 집은 약 90 스퀘어미터 정도. 똑같이 2 베드룸이지만 여기는 60 스퀘어미터 정도 되니까 크기가 2/3로 줄었다. 일단 박스를 전부 집에 들여놓고, 업체 직원들이 박스 번호를 불러주면 나는 저 빙고판에다가 체크한다. 환장하는 건 베트남에서 내용물을 너무 대강 써놔서 (clothes, bedding, cat stuff 이 정도가 끝)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서랍장은 안에 내용물 빼지 않은 채로 바로 박스로 패킹해서 엄청나게 무거웠고, 대충 아무 데나 놓고 풀기 시작했는데.... 가구 조립할 때 쓰는 부품들이 다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아서 가구 조립을 할 수 없었다. 


아이고야


뭐 결국 나중에 찾긴 했지만 온갖 짐이 한데 다 뒤섞여서 뒤죽박죽. 이 와중에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건지 침대에는 왕창 큰 스크래치가 생겼고, 서랍장은 삐걱대고, 사운드바 리모컨이 실종됐다. (....) 이걸 또 보상받으려면 청구 시스템을 타야 하는데 그 시스템 또한 환장하는 디자인. 이건 3달 이내에만 하면 된다고 하니 차근차근해보려고 한다. 


세탁기가 일주일째 말썽


이삿짐을 풀고 차근차근 정리는 잘 되어가는데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이 집에 빌트인 되어있는 세탁기다. 이삿짐 풀던 날 빨래부터 해야지 하고 나름 세탁조 클리너 넣고 돌리고, 그다음 수건 돌렸다가 기겁... 곰팡이 찌꺼기가 수건에 다 붙어서 나온 것. 이 세탁기 이렇게는 도저히 못 쓰겠다 하고 부동산에 리포트했지만 그때가 금요일이라 당연히(?) 주말 내내 연락이 없었다. 


또르르...


이렇게는 살 수 없지, 하고 세탁소에 세탁 맡기자 하고 침구랑 수건 잔뜩 들고 갔다가... 몇 개는 그 자리에서 도로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에서 세탁 서비스는 진짜 가격 안 보는 것 중 하난데 여기서는 엄청 고급 서비스였던 것. 이불 하나 빠는데 25파운드인데 돈 좀 더 보태면 저렴한 이불 하나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하고 최소한으로 빨아야 할 이불이랑 수건만 맡기고 내가 받은 영수증, 87파운드... 


그리고 또 참을 수 없던 우리는 직접 패킹 청소에 나섰다. 다행히 집에 락스 성분의 세정제가 있었고, 그걸 희석해서 키친 타월에 적신 다음 패킹에 끼워놓기로 한 것. 놀랍게도 반나절이 지났더니 패킹이 꽤 깨끗해졌고 한 번 더 같은 작업을 반복한 뒤 세탁기를 돌릴 용기가 났다. 


마음 한 구석에 약간의 의심이 있던 우리는 양말이랑 더러운 바지만 살짝 넣고 돌려보자 하고 세탁기를 돌림. 신나게 탈수를 하던 그 순간.... 주방에 있던 전기가 다 나가는 소리가 났고 두꺼비집이 내려갔다. 참고로 빌트인이라 세탁기는 멀티탭에 꽂은 것도 아니고 벽에 꽂혀있음. 다른 가전은 쓰지 않고 있던 상탠데... 두꺼비집을 올려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또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집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와서 플러그 퓨즈를 갈았지만 (기술자가 아니고 직접 오신 게 킬링 포인트) 세탁기 전원은 들어와도 여전히 문이 열리지 않았다. 목요일인 내일 기술자가 온댔는데 과연... 한 번에 해결될지. 저 안에 들어있는 양말은 어떤 상태려나. 


한정적인 나의 시간과 체력 배분하기


베트남에서는 이런 일이 터지면 가장 먼저 사람을 부른다. 플러그에 들어가는 퓨즈라든지, 수전이라든지, 뭐 기타 등등 집에 관련된 물건을 찾기가 어렵기도 하고 (베트남어로 뭔지 모르니까) 대부분 아파트에는 매니지먼트 오피스에서 잘 처리해 준다. 또는 외부 기술자를 불러도 되는데 그게 워낙 익숙하기도 하고, 여러 번 부른다고 해도 가격 부담이 크지 않아서 내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점. 물론 그 업무의 퀄리티나 소요 시간에 대해서는 장담하지 않는 걸로... 


책장을 조립해봅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짐 정리부터 (참고로 베트남에서도 이사 업체가 정리를 해 주지는 않고 나는 따로 청소 업체 써서 정리까지 다 시켰음) 가구 조립, 가전 문제 해결, 청소 등등. 눈만 뜨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이케아에서 가구 사 와서 (배달 아님, 직접 가서 픽업함) 하나하나 다 조립하느라 스쿼트 200번 한 것처럼 허벅지에 근육통이 있다. 

검은 옷 세탁세제


대신 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작은 손잡이 하나, 책장 선반에 끼우는 받침대, 전구 하나까지 쉽게 구할 수 있고 옵션이 다양한 편. 빨래할 때 쓰는 세제가 이렇게 다양한 건 여기 와서 또 처음 봤다. 게다가 영어만 쓰는 곳이니 번역의 압박이 없는 것도 장점. (영어는 나만 잘하면 됨....)


여기에서 밸런스가 중요한 게 한 번에 다 끝내겠다고 무리하다가는 몸살로 직행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지금 우리 집은 먹는 것, 자는 것, 씻는 것 정도만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컨테이너 박스 푼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지만 걸레질은 아직도 못한 게 바닥을 치울 수가 없어서 그렇다. 또 베트남이었으면 이불이랑 침구랑 수건이랑 싹 다 세탁소에 맡겼겠지만, 여기서는 그랬다간 물건 값보다 세탁비를 더 내야 할 수도 있다. 


결론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알아서 잘 해야한다. 그리고 일주일째 열리지 않는 세탁기를 보면서 조급해하지 않는 건 베트남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언젠간 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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