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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Apr 29. 2021

세 번째 자가격리, 그리고 영국발 입국자

또다시 14일의 시간이 지나갔다

지난 2월, 영국으로 출국했지만 동생의 결혼식이 있어서 다시 한국에 왔다. 나를 포함해 가족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으나 여력이 되는 한 가보는게 좋겠다는 판단. 다행히 영국집에 정착도 어느정도 됐고, 영국에서 한국 오는 직항 비행기는 없지만 경유편은 남아있고, PCR 검사만 받으면 인천공항까지 가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듯 했다. 


D-3: 영국에서 출발 전 PCR 검사

예전에는 위험 국가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만 PCR 음성확인서가 있어야했지만 이제는 해외입국자 모두 필요하다. 출발 시간이 아니라 출발일 기준 72시간 이내에 받으면 돼서 생각보다 여유는 있는 편. 검사 결과 나오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출발 3일 전 검사를 받으면 안전하다. 



나는 영국의 드럭스토어 체인 부츠(Boots)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집에서 가깝고, 슬롯 예약과 변경이 수월해서 좋았다. 한국은 대부분 의료시설에서 PCR 검사를 진행하는 반면 여기는 사설 업체가 하도 많아서 (SNS에 광고도 엄청 나옴) 잘 찾아봐야한다. 듣기로 히드로공항 드라이브 스루 검사가 가장 저렴하고 결과도 빠르게 나온다는데 거기까지 가기가 귀찮으니 그냥 가까운데서 하는 걸로. 


* Boots 코로나 검사 예약

https://boots.recova-19.com/


면봉 끝이 어마어마하게 컸음


나름 PCR 유경험자라 자신만만하게 들어갔지만 면봉보고 기절초풍할 뻔 했다. 한국에서는 분명 얄상했는데... 여기서는 끝이 새끼손톱만한 거였고, 면봉 하나로 목 훑고 코까지 집어넣는다. 일단 그자리에서 구역질 몇 번하고 눈물 줄줄 흘리다가 결국 하나 버리고 다시 도전. 지금 생각해보니 그 검사해 주는 사람이 진짜 요령이 없었던 것 같다. 


결과는 다음날로 넘어가는 새벽에 이메일로 왔다. 한국 입국할 때 필요한 정보들이 다 있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한숨 돌린다음 본격적으로 출국 준비 시작! 


D-Day: 비행기 탑승

앞서 말한대로 영국에서 한국 들어오는 직항 비행기가 없다보니 경유편으로 예약해야 한다. 그 중에서 나는 경유 시간이 가장 짧은 핀에어 선택! 헬싱키 공항에서 2시간만 기다리면 되고, 헬싱키 - 인천 구간은 비행시간이 짧은 편이라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헬싱키에서 무민 아이템을 건질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


헬싱키로 가자

히드로 공항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락다운인데 다들 어디 가는걸까 싶지만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니까... 그런데 체크인 할 때 PCR 음성 확인서와 declaration form '있는지만' 확인하고 내용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 (.....) 거기다 보안검색하는데 턱스크 한 사람들, 거리두기 하라고 의자에 둔 팻말 치우고 붙어 앉은 사람들, 공항 밖은 락다운이라 실내 취식 안되는데 공항 내 카페에서는 밥 먹는 사람들까지... 영 불안해서 나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구석에 앉아있다가 비행기에 올랐다. 다행히 핀에서 앱에서 좌석 선택을 할 수 있길래 사람 없는 제일 뒷쪽으로!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서 피곤한 나머지 비행기에서 내내 잤다. 


헬싱키 공항, 무민 카페는 문을 닫았네...

경유 시간이 혹시라도 빠듯할까봐 걱정했지만 비행기는 내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고, 게이트는 바로 옆이라 전혀 걱정할 게 없었다. 내가 탄 비행기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내렸는데도 헬싱키 공항은 히드로 공항과 다르게 사람이 너무 없어서 엄청나게 조용했다. 조명, 난방도 제대로 안 켰는지 으슬으슬 추웠고 게이트 앞에 있는 사람 다 합쳐봐야 2-30명 됐을까.... 대부분 유럽 각지에서 온 한국 사람들처럼 보였다. 


텅 빈 비행기와 일출

예상은 했지만 아무도 없는 비행기. 과장 보태서 말하면 손님보다 승무원이 더 많은 것 같은 느낌... 나는 내 앞 옆 뒤 아무도 없는 자리를 선택해서 앉았는데 덕분에 누워서 올 수 있었다. 예전에는 공항 갈 때마다 사람 많고, 비행기는 꽉 차있고, 항상 시끌벅적했었는데 이렇게 텅 비어버리다니. 그래선지 기내식은 선택의 여지 없이 그냥 한 종류로 통일이었다. 생각없다고 안 먹었다가는 큰일날 뻔, 이게 시설 들어가기 전까지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식사였다. 


D+1: 자가격리 전 시설격리

불과 세 달 전이었는데, 베트남에서 한국 올 때와 달라진 건 내게 '영국발 입국자' 딱지가 붙었다는 것. 비행기에서 내려서 첫 번째 검역 관문 데스크에 선 순간 내가 이미 영국에서 출발했다는 걸 담당자분이 알고 계셨다. 흘깃 보니 테이블에 영국발 입국자 리스트가 있었음... PCR 음성확인서 제출하면 하나하나 꼼꼼히 대조해서 체크하고, 여권에 PCR 제출자, 그리고 영국발 입국자 스티커를 붙여주신다. 아, 그리고 검은색 종이가 들어있는 목걸이도 득템. 정확한 분류는 모르겠지만 내/외국인, PCR 제출 여부 등에 따라 목걸이 색이 달라지는 듯. 


그리고 이제 무한 대기가 시작된다. 자가격리 앱 확인하고, 짐 찾고 나오는 거 다 해도 30분 안 걸렸는데 영국을 포함해 브라질, 남아공에서 온 사람은 하루 시설격리를 해야한다. 몇 명 그룹으로 모아서 데려가야하다보니 사람 채워질때까지 기다려야하는 것. 처음에는 짐 찾고 나오는 출구 바로 바깥 쪽에서 기다렸다가 그 다음에는 인천공항 가장 끝에 있는 게이트까지 가서 또 대기했다. 시간 대략 재 보니 총 1시간 반 정도 기다렸던듯. 


히드로 공항 출발해서 인천공항 내리기 전까지의 약 16시간보다 여기서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일단 담당자 동행없이는 화장실도 갈 수 없고, 심심하다고 편의점 돌아다닐 수도 없고, 대기시간 중에 물 외에 음식 섭취는 일절 제한된다. 나는 혼자 온 거라 괜찮지만 어린 아이데리고 오시는 분들은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호캉스 하러 온 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갈 시설을 선택할 순 없다. 버스 탄 다음 방송 듣고 아는거지... 나는 다행히(?) 명동 당첨! 많은 후기에서 듣기로 인천공항 근처, 명동, 용인 시설 중에 한 군데 간다고 하던데 명동이면 선방했다. 


그래 내가 생각한 면봉은 이렇게 얄상한거였단 말이지...

인천공항 착륙이 8시 반 정도였는데 시설 도착하니 12시 정도. 수능 시험 대형으로 널찍하게 거리 둔 책걸상에 앉으면 내 앞에 또 PCR 검사 키트가 기다리고 있다. (....) 이제까지 PCR 검사는 야외에서 워킹스루로 하거나, 아니면 방 안에 혼자 들어가서 하는거였는데 여긴 2-30명이 한 번에 그 자리에 앉아서 검사를 받음. 물론 입국자를 제외한 모든 담당자들은 방호복을 입고 있다는 점... 


앞서 말한대로 우리는 호캉스를 온 게 아니기 때문에 방도 어떤 방인지 알 수 없다. 나는 그냥 평범한 비즈니스 호텔 1인실이었는데 성인 한 명이 혼자 하루 지내기에는 아주 괜찮았다. 밥 나오기 전까지 배고플까봐 간식 챙겨주시고, 간단한 어메니티까지 다 갖춰져 있었다는 점. 게다가 이 모든게 무료로 제공된다. 


주황색은 의료용 폐기물 봉투, 흰 색은 도시락


이 곳에 나처럼 위험국가에서 와서 하루 시설 격리하는 사람들도 있고, 격리면제서 받고 왔지만 PCR 검사가 필요해서 있는 사람, 또는 자가격리를 할 수 없는 외국인들도 같이 있었다. 그래서 하루 세 번 식사 나올 때 한국어 / 영어 / 중국어 / 일본어 4개 국어로 방송이 두 번씩 나오고, 쓰레기 버릴 때도 방송이 나온다. 시차 적응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식사를 제 시간에 하는건데 시설격리 하루 하는 동안 방송이 워낙 쩌렁쩌렁 나오기도 하고 이 밥 때를 놓치면 뭘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챙겨먹다보니 (단기시설격리 하는 곳으로 음식 배달 이런건 안됨) 평소보다 훨씬 수월하게 시차적응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 검사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면 자가격리 장소로 이동 가능, 아니라면(...) 쭉 여기 있어야하는데 14일 간 호텔 격리는 정말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친구가 베트남으로 아기랑 같이 특별입국 했는데 그 친구 생각이 많이 났다. 얼마나 힘들었으려나... 


결과 통보는 호텔 방 안에 있는 전화로 받는다. 다음 날 아침 밥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음성이라는 반가운 전화가 왔고 후다닥 나갈 준비를 했다. 원래 퇴소는 9시지만 본인의 준비가 다 끝났고 픽업 올 사람이 와 있으면 바로 나가도 된다고 이야기 해 주신다. 


난 자가격리 장소가 (본가가 제주) 제주도라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한다. 처음에는 시설에서 제공하는 셔틀타고 인천공항가서 다시 김포공항 가는 셔틀버스를 타야하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김포공항까지 방역택시를 타도 된다고 하셔서 나는 바로 방역택시 타고 김포공항으로 이동. 그리고 그 택시 안에서 제주도 내려가는 비행기를 예매했다. 


김포공항에 도착한 나는 최대한 거리두기를 하려고 했지만... 평일인데도 사람이 너무 많아 사실상 불가능. 대신 화장실도 안 가고 음식도 안 먹고 구석에 있다가 체크인 카운터에 해외입국자라고 말한 다음 비행기 제일 뒷자리를 배정받았다. 


제주공항에 도착하면 해외입국자 신고 할 수 있는 부스가 있다. 거기에 문진표를 쓰면 워크스루 선별진료소로 안내해주시는데 다행히 나는 그 전 날 시설격리 하는 동안 검사 받고 나온거라 안 해도 된다고 하셨다. 만세!제주 집에 오는 것도 엄청 오랜만인데 이렇게 와야하다니... 마중 나온 엄마를 만났는데도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서, 차 안에서도 대각선 뒤에 앉아 바로 집으로 갔다. 


D+2 ~ D+15: 제주도 집에서 자가격리
흔한 자가격리자의 일상


자가격리 기간은 나름 평화롭게 보냈다. 엄마가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 밥을 올려다주고 (...ㅠㅠ) 뜨개질하고, 운동하고, TV도 보고. 간만에 본 한국 홈쇼핑 채널이 어찌나 재밌던지 나도 모르게 주문할 뻔. 시차적응한다고 첫 일주일은 비몽사몽하면서 보냈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표 건강밥상


나는 본가 2층 방에서 자가격리 한 거라 엄마가 식사를 올려주면 최대한 남김없이 다 먹고 (다들 알겠지만 자가격리 기간 중 음식물쓰레기 배출 안됨) 수저는 내가 화장실에서 씻는다. 혼신의 노력으로 쓰레기 최소화... 그래도 나름 유경험자라고 이렇게 노하우가 있다니. 


격리 하는 동안은 아무렇지 않았는데 해제 전 검사를 앞두고 또 걱정이 몰려왔다. 이게 여러 번을 해도 적응이 안되는 게 코로나 검사하고 결과 나오기 전까지 '혹시...?'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게다가 그 때는 동생 결혼식이 코 앞이라 만에 하나 내가 양성으로 나오는 순간 혼주인 엄마아빠가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기 때문에 결혼식 참석을 못하는 상황... 


감사합니다 ㅠㅠ


다행히 해제 전 검사도 음성! 이 날 9시 반엔가 검사하러 나갔는데 4시간 만에 결과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덕분에 남은 격리 시간을 편히 보낼 수 있었다는! 


옥상에서 풍경보며 바람도 쐬고


이 시국에 국경을 넘는게 쉽지는 않지만 영국에서 온 거라 절차가 조금 더 복잡했다. 그래도 공항, 시설격리 했던 호텔, 자가격리 담당 공무원 분들, 보건소에 계셨던 직원 분들까지 모두 친절하게 안내해주셔서 큰 어려움 없이 격리를 마칠 수 있었다는 점! 


다음 한국 방문 때는 자가격리 없이 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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