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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Feb 10. 2023

한국 여행 갔다가 임신 확인하게 된 썰

건강검진하려다가 다른 초음파를 보고 왔네

내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영국에서가 아니라 놀랍게도 작년에 잠시 한국에 방문했을 때였다. 그것도 건강검진 풀스캔을 앞두고 있었는데 혹시나 해서 써 본 테스트기가 양성 반응을 보인 것.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코로나 키트 두 줄도 본 적이 없어서 어안이 벙벙했다. 정말 두 줄이라고? 시차 적응이 안 돼서 뭔가 잘못 본 건 아니겠지 생각했지만 멍 때릴 시간도 없고 일단 건강검진센터에 전화해서 예약해 둔 검사를 모조리 취소해야 했다. 흑흑... 아주 간단한 피검사, 소변검사 정도만 가능하고 엑스레이나 내시경은 나중에 받을 수 있게 처리해 주셨다. 


한국 가는 경유 비행기 안에서 신나게 와인도 마셨는데 


이 날 이후 우리는 혼돈이었다. 건강검진이야 그렇다 치고 당장 산부인과를 가야 하나, 비행기에서 와인 마셨는데, 커피는 계속 마셔도 되나...? 가족들에게는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블로그 보니까 다들 임신테스트기 매일 확인하던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거지 등등. 지금 돌이켜보니 와 정말 너무 기쁘다! 행복하다! 는 생각보다는 당혹감이 컸던 것 같다. 그야말로 '어떻게 하지'의 연속... 


일단 차분하게 생각을 해 보니 우리가 한국에 머무르는 시간은 약 2주 남짓이고 당시 나는 계산기에 따르면 임신 4~5주 차 정도였다. 한국에서도 너무 일찍 병원에 가면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고 불안함만 늘어나니 6주 차 정도에 가보라고 권고하는데 나는 시간이 없어서 병원 방문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가족들에게 알려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아주 오랜만에 한국에 방문한 것이고, 양가 부모님은 이 소식을 들으면 정말 기뻐하실 텐데 영국 돌아가서 말씀드리면 뭔가 아쉬울 것 같다는 게 이유. 그래서 공식 발표(?!) 전 확실한 의학적 근거(??)를 위해 가까운 병원에 찾아가기로 한 것. 적어도 영국보다는 병원 접근성이 뛰어나니까. 


임신 확인을 위한 피검사와 초음파


맨 처음에는 초음파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이기 때문에 피검사를 하러 갔다. 요즘 임신테스트기가 워낙 잘 나오고 정교해서 금방 두 줄이 나온다는데 병원에서 피검사 수치로 임신 여부를 확인해 준다. 물론, 이 피검사 결과로 임신 진단을 내리지는 않고 임신 극초기에 두 줄을 본 뒤 불안한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장치인 것. 역시 한국에서는 스피드가 예술, 피 뽑고 20분 안에 의사 선생님을 만나 피검사 수치를 들을 수 있었다. 이때 피검사 숫자가 적힌 종이 한 장과 두 줄 나온 테스트기 말고는 내 몸은 임신을 체감할 수도, 기댈만한 근거도 없다는 게 정말 불안했었다. 


1cm도 되지 않는 아기집, 그리고 공식 서류

그로부터 며칠 뒤에는 초음파를 보러 산부인과에 갔다. 둘이 같이 산부인과에 온 건 이번이 처음. 남편도 나도 뭔가 어색했지만 병원에서 워낙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셔서 금방 마음이 편안해졌던 기억. 하지만 초음파 결과 내 예상대로 아직은 너무 작아서 임신 '진단'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원래라면 2주 뒤에 다시 와야 하는데 그전에 우리는 출국하기 때문에 출국 직전 한 번 더 오기로 예약하고 병원을 떠나려는 순간, 수납하고 나니 데스크에서 서류를 한 장 준다. 이게 뭔가 했더니만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해 주는 서류. 이걸 가지고 국민행복카드 바우처를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아니 선생님 아직 임신이라고 확정하기 어렵다고 하셨는데요....!) 여하튼 임신 확인이 된 이후 바우처를 신청하면 바우처 금액 내에서 임신/출산 관련 진료비를 쓸 수 있는 것! 대한민국 만세!


그 후 두 번째 방문에서 난황을 확인했고, 준비성이 뛰어난 (= 원체 걱정이 많은) 나는 미리 입덧약을 처방해 달라고 말씀드려서 한 통 받아왔다. 


가족에게 언제 말하는 것이 좋을까


만약 우리가 영국에서 임신 사실을 알았다면 어느 정도 더 시간이 지나 좀 더 확실해지고 나서 말씀드렸을 것이다. 애초에 영국에서는 임신 8주 이전에는 의료진을 만날 기회가 없고 공식 첫 초음파가 12주 때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영국에서의 임신, 출산 관련 내용은 추후 따로 차근차근 기록할 예정!) 그렇게 한참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양가 부모님께 직접 말씀드려야겠다 결심한 건 가족들이라면 혹시나 우리가 생각하는 슬픈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를 충분히 위로하고 걱정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아주 소소하게 공식 발표 이벤트를 준비해서 양가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순간! 우리는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인스타에서 많이 본 대로 작은 상자 안에 임신테스트기 두 줄 나온 걸 넣어서 선물이라고 드렸는데... 우리 엄마아빠 세대에서는 임신테스트기를 써보지 않으셨던 것(....) 아... 임신테스트기가 이렇게 상용화된 게 얼마 안 된 거구나.


공식 발표(!) 후 선물 받은 꽃다발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 상자를 열자마자 즐거워하는 모습이나 놀라는 모습 - 건 없고 '이게 무엇인고?' 하는 부모님들의 모습과 정적이 집을 채웠다. 그래서 결국 말로(!) 설명드리고 나서야 상황을 깨닫고 뒤늦게 환호하던 부모님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우리 예상대로 정말 기뻐하셔서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보건소에 가서 임산부 등록

잠깐 한국에 여행 와서 신나게 놀다 가야지!라고 생각했던 계획에는 - 아예 못 지킨 건 아니지만 - 얼떨결에 임신 확인과 몇 가지 행정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추가됐다. 임신확인서가 나왔으니 보건소에 가서 임산부 등록을 할 수 있었고, 앞서 이야기한 국민행복카드 바우처 신청도 가능. 하지만 카드가 오기 전에 출국을 해야 해서 바우처는 아직까지 1원도 못 썼다...


이때 나는 친구들과의 약속도 정말 많았는데 아쉽게도 친구들에게는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다른 건 괜찮아도 술 안 마실 핑계를 만들어야 해서 잠시 진땀 뺐던 기억... 다행히 본격적으로 입덧이 시작되거나 몸이 힘들어지기 전이어서 평소와 다름없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또 걱정이 남아있었다. 영국까지 다시 장거리 비행을 해야 하는 것. 의사 선생님 말로는 비행기 타는 거 자체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혈전 발생 위험 때문에 그런 것이니 자주 움직여주라고. 그래서 의식적으로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고 기내를 걸어 다녔고 무사히 다시 영국 집에 도착했다. 


이 날 이후 우리 부부의 임신 여정은 모두 영국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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