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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Feb 15. 2023

영국에서 임신하면 초음파 언제 볼 수 있나요?

궁금하면서 불안했던 임신 초기 (1st trimester)

영국으로 돌아온 뒤 가장 답답했던 건 내가 원할 때 아무 때나 초음파를 보러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 영국에는 사설이 아니고서야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산부인과가 없고, 보통 GP(가정의학과)를 통해 상급병원으로 연결된다. 초음파 확인하고, 분만까지 모두 이 병원을 통해 진행되는 것. 


첫 미드와이프 미팅: 8주 차

'

보통 임신을 자연스럽게 확인하는 건 5-6주 차쯤일 것이다. 생리가 불규칙적인 사람은 조금 더 늦을 수도 있겠지만, 계획 임신이라거나 생리가 규칙적인 경우 혹시? 하면서 테스트기를 쓰고 임신 사실을 확인하는 게 일반적이다. 영국에도 Early Pregnancy Test Strip을 판매하고 있어서 좀 더 일찍 임신 사실을 알 수 있는 제품들도 있다. 


영국에서 구매 가능한 임신테스트기 종류

우리가 흔히 아는 플라스틱 막대기에 종이가 달린 것도 있고, 디지털로 정보가 나오는 것도 있고, 아니면 더 작은 스트립형태도 있음.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적당한 걸 사서 테스트해 보면 된다. 


이렇게 임신 확인을 한 뒤에 해야 할 것은 의료기관에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리는 것. 셀프 리퍼럴(Self Referral) 하거나 GP에 알리면 된다. 내가 사는 동네는 출산 병원을 정하고 홈페이지에서 셀프 리퍼럴했는데 개인정보와 마지막 생리 시작일 등을 넣고 기다리면 끝. 왜냐하면 첫 의료진 미팅이 8주 차에 있기 때문에 보통 임신 사실 알고 2-4주간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첫 미팅 일정과 시간은 영국 답게 편지로 온다는 점. 


우리는 한국에서 장거리 비행을 마치고 온 뒤이기도 하고, 한 번쯤은 사설 프라이빗 업체를 가보고 싶어서 중간에 스캔 업체에 다녀왔다. 여기도 산부인과는 아니고 약간 초음파 사진관(?) 같은 분위기... 뭐 어쨌든, 한국 산부인과에서 봤을 때는 강낭콩 같은 모양이더니 그새 뭔가 자라난(?) 모양이 돼 있었다. 반짝반짝 심장 뛰는 것도 보이고... 화질은 90년대 스티커 사진 수준. 


뭐가 뭔지 알아보기 힘든 영국에서 첫 초음파 사진


한국에서는 초음파 사진을 앱에서 모아 볼 수 있고, 심장소리도 들려준다고 하던데 여기에서는 사진관처럼 사진 추가로 인쇄하거나 그 외의 것을 요청하면 전부 추가 비용이 든다. 그래서 간단하게 아기 정보만 나와 있는 초음파 사진 딱 한 장 받아 들고 나올 수 있었다. 


내가 받은 노트


가슴 졸이며 기다리다가 8주 차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고 미드와이프(midwife)라고 한국어로 번역하면 '조산사' 정도가 되겠다. 임신 기간 중 의사보다 더 자주 보는 사람이고, 대부분의 문의는 이 쪽을 통하도록 되어있다. 첫 미팅이라 떨면서 갔더니 내게 준 건... A4 용지 사이즈만 한 노트. 각종 정보부터 미팅 기록 일지, 그 외 임신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기로' 쓸 수 있게 돼 있는 파일철이다. 그런데 커버가 종이라서 엄청나게 너덜거림.



그리고 분만예정일과 임신 몇 주차인지 계산하는 게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고 아주 아날로그 방식이었다는.... 이런 도구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엄청난 충격. 


여하튼 첫 미팅은 꽤 오래 걸렸는데 '이런 것까지 물어보나' 싶을 정도로 질문을 많이 한다. 일단 기본적으로 병력은 없는지, 약물 알레르기는 없는지, 영국에는 언제 왔는지, 기존에 유산 이력은 없는지, 임신 후 특이한 증상이 있는지 등등. 물론 파트너에 대한 정보도 묻는다. 유전될 만한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뭔가 리스크가 있다면 추가 검진으로 연결되는 것. 나는 동아시아인이라 당뇨 위험성이 있어서 임신성 당뇨 테스트를 28주 차에 잡아준다고 했다. (이후 엄청난 후폭풍이 올 줄은 몰랐지...)


그리고 나는 경험하지 못했는데 영국에서는 미드와이프 첫 미팅 때 남편(혹은 파트너)과 동행한 경우 혼자 있을 때 '혹시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거나 원치 않는 임신인지' 물어본다고 한다. 의학적으로 산모와 아이의 신체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산모의 정신적 건강과 안전도 챙겨주는 느낌. 


만약 원치 않는 임신인 경우 어떻게 할까, 찾아보니 영국에서 낙태(임신 종결)는 오롯이 산모의 결정으로 가능하다. (The decision to have an abortion is yours alone.) GP에 이야기해도 되고, 카운슬링해 주는 기관들도 있음. 파트너나 가족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으면 해도 되지만 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라는 게 NHS 가이드다. 심지어 16세 미만 미성년자인 경우 부모에게 이야기하라고 의료진이나 카운슬러가 권고할 수는 있으나 그럴 권한은 없다고. 


10주 차 이전이면 약물로, 그 이상인 경우 수술적 방법을 쓰는 듯. 임신 종결에 대해 쓸데없이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보다 이렇게 의료기관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게 훨씬 나은 방법이지 않을까. 


https://www.nhs.uk/conditions/abortion/


이것도 입덧인가요?
 

조금 울렁거리기는 했어도 잘 먹고 잘 지냈습니다

임신 초기의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보면 '이것도 입덧인가요'라는 질문이 정말 많다. 그만큼 임신 증상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고, 극심한 정도도 너무나 천차만별. 다행히 나는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구토가 심각하거나, 냉장고 문만 열어도 구역질을 하는 정도는 아니었고 은은하게 숙취가 있는 것처럼 울렁거리는 정도? 그것도 저녁 이후에만 그래서 영어로는 Morning Sickness라고 하는 말이 무색하게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는 매우 잘 지냈다. 한국에서 받아 온 입덧약이 있어서 한 알씩 먹으니 꽤 견딜만했다. 


임신 초기 당시 여름이라 영국의 맛있는 과일을 죄책감 없이(!) 신나게 먹었다는 사실. 마트에서 파는 방울토마토 한 팩이 250g인데 한 번 열면 그걸 거의 다 먹었고, 납작 복숭아가 철이라서 한 번에 2-3개는 기본으로 먹었다. 날이 더워서 뭔가 시원하고 상큼하고 그런 게 엄청 당겼던지라 비빔국수나 김치말이 국수도 자주 해 먹었던 듯. 


나갈 때는 임산부 배지 착용


의외로 힘들었던 건 에어컨 없는 대중교통을 타거나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 당시 영국 날씨는 대대적인 폭염이 휩쓸 때라 건강한 일반인도 힘들 때기는 했지만, 나는 유독 인구밀도 높은 곳을 가기 힘들어했다. 다행인 건 내가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어서 아주 괴롭지는 않았다는 점. 


공식 첫 초음파: 12주 차


내가 다니는 킹스턴 병원 (Kingston Hospital)

임신 기간은 크게 3개의 분기(Trimester)로 나뉘는데 첫 번째 분기의 끄트머리에 가서야 분만할 병원에서 초음파를 볼 수 있다. 이 날 처음으로 병원에 가서 뭔가 잔뜩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겉으로 보기에 배가 하나도 나오지 않은 초기 임산부였지만 대기 공간에는 만삭 임산부들도 많고, 예약을 하고 왔음에도 응급 환자들이 있으면 하염없이 대기 순번이 밀리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을 기다렸을까, 내 순서가 와서 첫 초음파를 보는데 이 날 들은 이야기는 '오늘부로 분만예정일 (Due Date)은 고정된다'는 것이었다. 아주 천천히 태아의 길이, 목투명대 두께, 각종 장기들을 살펴보는데 거의 30분 가까이 소요됐다. 그리고 이 날은 1차 기형아 검사를 위한 혈액 채취도 진행됐고 결과는 또 영국 답게 편지로 보내준다고... 


다행히 1차 기형아 검사 결과까지 포함해서 모든 게 다 정상이라는 편지를 받았고 그 후 우리는 태명을 지었다.


처음 봤을 때 도토리만 해서

토끼해에 태어날 아이라서

고양이 도미와 라임을 맞추기 위해서 


헬로, 토리

12주 차 당시 5cm 남짓한 이 친구는 '토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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