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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피그 bonopig Oct 25. 2023

나 홀로 일본 소도시 여행하기-기타큐슈(4)

시모노세키 에이비엔비


한국의 인천 영종도와 비슷한 작은 섬, 기타큐슈 끝자락에 있는 시모모노세키에서 휴가를 보내려고 찾아왔다. 올해 추석 연휴는 길어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기 쉽기도 했다. 저렴한 비용에 사람이 드문 곳을 찾다가 익숙한 기타큐슈를 검색하게 되었다.  





시모노세키역은 고쿠라역에서 JR전철을 타고 30분 남짓 걸린다. 시모노세키로 향하는 전철 시간은 30분마다 있어서 멍 때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전철에서 내려서 역으로 나와 보니, 호스트(할아버지)가 픽업 시간에 딱 맞춰서 서쪽출구에 도착한 것 같았다.   





숙소는 시모노세키역에서 차로 10분여 정도 떨어진 산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에어비엔비 호스트(할아버지)는 인사를 한번 하신 후 아무 말도 없이 운전만 하셨다. 처음에 느낀 인상은 친절함과는 다소 멀게 느껴졌고,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시크하셨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아니면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해서 그런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에어비엔비 후기가 너무 좋아서 여행 전에는 걱정이 없었지만, 막상 도착하니 걱정과 불안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 잘못 온 거 아니겠지?   





하지만 걱정은 잠시였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불안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실내는 현대식과 일본의 전통적인 문화가 섞인 멋스러운 2층 주택이었고, 호스트의 개성과 취향이 돋보이는 공간이었다. 이 멋진 주택에서 혼자 3일간 묵는데, 1박에 단 3만 원대밖에 비용이 들지 않았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게스트가 없어 나 홀로 이 주택을 3일 동안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체크인 한 오늘 오스트리아 부부가 체크아웃을 해서 혼자 3일 동안 머물게 된다고 호스트분께서 말씀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심심할까 봐 약간 걱정되는 듯한 말투였던 것 같다.  


운전할 때는 시크하고 약간 무서워 보였던 호스트(할아버지)였지만, 처음 본 사람이라 서로 긴장했을 뿐 매우 친절하셨다.    





일본 여행을 10번 이상 다녀본 경험이 있지만, 고급 료칸에 묵은 이후 이렇게 깔끔하고 모든 게 갖춰진 숙소는 처음이었다. 비용도 너무 저렴하고, 먼지 하나 없는 깔끔함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에어비엔비에서 숙소를 예약할 때, 숙소 사진이 해상도도 낮고 별로였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안 했었는데, 후기가 좋은 이유를 이제 깨닫게 되었다.    





외관은 실내보다 다소 투박한 시골 주택 같은 느낌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문 앞에서 청소기를 고치시거나 가만히 앉아있곤 하셨다. 숙소에서 블라인드 스위치를 만지다가 그만 망가트렸는데, 바로 말씀드리니 조용하게 수리도 하고 가셨다. 일본에서는 수리비용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어서 엄청 고민하다가 말씀드렸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이 말씀하셔서 안심이 되었다.


체크아웃할 때 알게 된 사실인데(체크아웃 후 역으로 데려다주실 때는 말씀이 아주 많으셨다.), 이 집은 10년 정도 되었고 원래는 아이 3명과 같이 사는 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도 하고 결혼도 해서 현재는 두 분 이서만 지내고 계신다고 한다. 원래 가족들이 살았던 곳이어서, 일본 가정집 느낌이 물씬 난 것 같다. 손주도 있는데 중학생이라고 하며, 웃으시며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고 하셨다. 이 부분에서 무심하면서도 애정이 가득한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한국에는 서울에 놀러 와본 적이 있으시고, 한국 음식도 잘 드신다고 했다. 명동은 후쿠오카의 하카타 같이 비슷한 대도시 느낌인데, 도쿄느낌은 아니었다고 하셨다.


관광지도 알려주셨는데, 시모노세키 야마구치에는 온천도 유명하다고 한다. 대신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해서 렌트를 권하셨다. 부산 사람들이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에 자주 놀러 오는데 보통 가족들 단위로 놀러 와서, 이곳 에어비엔비에 하루만 묵고 렌트차로 온천 여행을 많이 간다고 하셨다.  


체크아웃할 때 돼서야 친숙한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던, 시크하지만 친절하셨던 할아버지(한국 아버지들이랑 비슷한 것 같다).    





이 숙소의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1인실임에도 불구하고 침대가 2개가 있었다. 아마 사람들이 예약을 많이 했었어도, 1인이 예약했다면 각 방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을 것 같다. 숙소를 구경하다가 다른 방은 모두 잠겨있었지만 다락방은 문이 열려있었는데, 다락방도 같은 인테리어의 침대가 2개가 놓여있었다. 예약할 때, 다락방으로 할지 이 방으로 할지 고민했었는데 해가 더 잘 들어올 것 같은 이 방을 선택한 게 다행이었다.



   


사진에서도 느껴지듯 마루 바닥이 굉장히 깨끗하다. 들어오자마자 실내에서 신을 수 있는 실내화를 주셨는데,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반들반들했다. 할아버지는 청소시간이 매일 정해져 있으신 것 같았다. 내가 없는 시간에 오셔서 3일 내내 조용하게 청소를 하시고 가셨다. 호스트의 노부부의 역할을 보니 할아버지는 청소와 에어비엔비 관리, 그리고 할머니께서는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서 음식을 하며 카페 운영을 하시는 것 같았다.   






벽지 때문에 다소 촌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보면 방이 매우 깨끗해서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진상에는 왜 이렇게 나오는지 안타깝다. 체크인할 때 반키를 주시는데 혼자 묵었기 때문에 잠그지 않고 다녔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특히 외국인 남자)이 있었다면 보안을 더 신경 쓰며 자유롭게 집안을 다니지 못했을 것 같았다. 또, 여자 혼자 묵었기 때문에 밤에 너무 무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정말 좋았다.    

숙소는 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어, 방 안에서는 온 마을이 한눈에 보였다. 한국의 시골에는 고층의 아파트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시모노세키 마을은 전반적으로으로 단독주택과 낮은 맨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1층 화장실에서는 바로 보이는 닭장이 바로 보이는데, 처음에는 닭들이 엄청 커서 놀랐고, 두 번째는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에 놀랐다. 화장실에서 바로 닭장이 보이기 때문에 볼일을 볼 때는 블라인더를 닫고 봐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닭들과 아이컨텍이 부담스러움).   





밤에는 닭장이 보이지 않지만, 낮에는 닭들이 푸드덕푸드덕거리고 있다. 닭장이 옆에 있어서 그런지 화장실도 자연 친화적으로 느껴졌다.   





1층에는 욕조가 있는 목욕실과 화장실이 있고, 2층에는 샤워실과 화장실이 배치되어 있었다. 목욕실과 샤워실 모두 충분한 수건과 발수건 그리고 샴푸, 린스, 칫솔 등 호텔 어메니티보다 좋은 퀄리티의 물품들이 제공되었다.



   


배려가 돋보인 부분 중 하나는 방안에 있던 얇은 수건이었는데, 아마 배게 위에 깔기 위한 것으로 주신 것 같았다. 호스트가 세심하게 제공하는 이 모든 것들이 이곳으로 여행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일본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인 청결하고 세심함, 이런 부분 때문에 계속 여행을 오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일본도 불청결한 숙소도 많다.    





10월 초에 방문했는데도 시골이라 그런지 해가 저물면 주변에 불빛이 없어서 캄캄한 어둠만 보였다. 시골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와 어둠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항상 돌아왔다. 낮에도 길거리에는 사람을 보기 어려웠다. 혼자 3일 동안 잔다고 생각하니 조금 무섭다고 호스트(할머니)분께 말하니, 웃으시며 "여기에 찾아올 사람이 없어요. 안심해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숙소에서 묵은 첫날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원래 숙소 바로 옆에 있는 호스트(할머니)께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저녁을 해결하려고 계획을 했었는데, 3일 동안의 여행에서 2일(화~수)이 카페 휴무인걸 도착하고 알게 되었다. 나름 파워 J로 계획을 완벽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휴일을 확인하지 못한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집에서 멍 때리고 있던 나에게 호스트(할아버지)께서 "지금 한국어 공부 중인데, 같이 차라도 마시지 않겠어요?"라고 제안을 해주셨다.


한국어 공부? 속으로 어떤 말이지 생각을 하고 "곧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원래부터 일본 아줌마들에게는 한류가 인기 있었던걸 알았지만, 이 시골에의 한류라?! 정말 한국 문화가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하며 숙소 옆 카페로 향했다.  


카페를 들어가서 소개를 받으니, 호스트(할머니 71세)와 외부인인 80대 할머니, 그리고 제일교포 3세 한국어 강사분이 계셨다. 먼저 케이크를 권하셔서 한국에서는 생크림 보다 드물게 보이는 단호박 케이크를 골랐다. "칸코쿠 데와 메즈리시 이 케-키 데스, 가보챠(단호박) 케-키데 오네가이시마스"라고 내가 말했다. 단호박 케이크가 드문 케이크냐고 물어보셔서 그렇다고 말하니 매우 놀라시는 눈치였다. 케이크도 먹는 문화가 참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다. 냉동 케이크였는지 조금 차가웠지만, 금세 녹아 입에 들어가니 부드럽게 녹았다. 케이크와 같이 대접받은 커피는 깔끔하고 차가운 아이스커피였다. 가볍고 산미가 없어 케이크랑 잘 어울렸다.  





케이크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주에 1일 1시간 정도 한국어 공부를 이 카페에서 하신다고 하셨다. 히라가나 대신 가타카나로 발음기호를 적으며 공부하시는 80대 할머님은 한국어 발음이 꽤 좋으셨다. 아마 제일교포 3세 한국어 강사분이 가르쳐주셔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할머님은 가타카나 발음으로 적은 한국어는 읽을 수 있지만 한국어로 대화를 하기에는 어려워하셨다. 자꾸 배워도 까먹는다고 하셨다.


제일교포 3세 강사님 덕분에, 모르는 일본어 문장이 있어도 수월하게 대화가 가능했다. 시모노세키는 원래 섬마을이었는데, 인천의 영종도처럼 다리가 생겨서 다른 지역과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시모노세키에는 제일교포도 많고, 한국어 공부도 많이 한다고 한다.  


대화 중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일본은 젊은 세대 보다 나이 든 할머니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신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과는 정 반대인 문화인 것 같아서 매우 신기했다.


80대 할머님께 한국 드라마를 자주 보냐고 여쭤보니, 바빠서 드라마는 못 보신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병원도 가고 운동도 하고 교회도 가야 해서 바쁘시다고 했다. 중간에 할머님께 전화가 왔을 때, "나 한국어 공부 중인데, 한국 사람이 갑자기 왔네." 라며 대화를 신나게 하셨다. 그 모습이 왠지 귀여웠고, 나중에 나도 나이가 들면 바쁘게 사는 할머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80대가 돼도 배움의 열정이 있고, 다른 나라 문화에 관심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내 주변의 할머니들은 노인정에 가시거나 TV를 보시거나, 손자 손녀 걱정을 하며 밭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데 말이다.


또, 호스트(할머니)께서는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지 않느냐?라고 나에게 물었다. 자신의 나라(일본)는 영어도 배우기 싫어하고 발음도 이상하다고 말했다. 어느 뉴스에서 UN관련된 일이 있었을 때 일본 기자가 영어발음을 하는 걸 보고 "저게 무슨 발음이야?"라고 일본 사람들끼리도 수군거렸다고 한다.  


내달 11월에는 세분이서 부산으로 여행을 가신다고 한다. 시모노세키항에서 밤에 출발해 부산항에 아침에 도착하는 배를 타고 갈 수 있다고 했다. 호스트(할머니)께서는 쉬는 시간일 때는 카페 TV에 KBS를 틀어놓고 한국 방송을 계속 보시고 계셨다. 일본에서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대단한 것 같이 느껴졌다.  


이번 여행은 가까운 듯 먼 일본에 조금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현지인과 가끔 대화를 주고받을 때가 있는데, 특히 관광지가 아닌 조금만 벗어난 일본 마을에는 사람들이 매우 친절하게 말을 건다. 관광지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다 보니 불친절한 사람도 많고 가끔 혐한인가? 의심되는 사람들도 많다. 


잠시나마 혼자 여행에서 묵언수행을 할 뻔했던 나를 재밌는 경험을 하게 해 주셔서 감사했던 여행이었다.



    


제일 오랜 시간 있었던 1층의 거실. 그리고 3일 동안 내 지정석이 된 의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른 의자에는 앉지 않았다. 70인치 이상으로 보이는 TV에 유튜브도 연결되어 있어서, 이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책도 보면서 휴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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