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노세키에서 먹은 음식들
에어비엔비를 예약했을 때 좋았던 점은 숙소 바로 옆에 호스트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숙소가 산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 깜깜한 밤에는 카페에서 식사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3일 동안 머문 기간 중 2일 정도가 카페 휴무날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음식점을 찾아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그중 시모노세키 첫날에 먹은 가라아게 가게인 '藤家'가 기억에 가장 남는다. 가게 이름은 숙소에서 가까운 가게를 찾다가 지도에서 찾아서 영문이나 한글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 가게는 숙소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테이크아웃만 가능하고 조리시설만 있는 작은 가게였다. 40대로 보이는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남자 사장님은 덩치가 조금 있지만 키가 왜소하고 쑥스러움이 많아 보였고, 뜨거운 기름에 많이 얼굴이 닿아 있어 항상 얼굴이 불그스름한 것 같았다. 여자 사장님은 외부인이라도 매우 친절하게 맞이해 주며, 메뉴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치킨을 기다리는 동안 뻘쭘하게 있는 나에게 작은 마을에 혼자 놀러 온 내가 신기한 듯 말을 걸어왔다. 처음에 중국인이냐고 물어 한국인이냐고 대답하니, 부부는 얼굴색에 화색이 돌며 부부 중 남편이 한국을 매우 좋아하며 하루에 2~3시간을 한국 드라마를 본다고 했다. 보통 일본 여성들이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본 남성들도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건 처음 들은 것 같다. 남자 사장님이 제일 좋아하는 배우는 박서준과 박민영 그리고 아이유였다.
여자 사장님이 남자 사장님을 놀리며 한국어를 해보라고 부추겼지만, 쑥스러움이 많으신 남자 사장님은 발그레 웃으시며 치킨만 튀기셨다. 여자 사장님은 드라마는 맨날 보면서 한마디도 못해요~라며 남자 사장님이 귀여운 듯이 놀리셨다.
작은 마을인데도 한류가 퍼져있는 점이 놀랐다. 아마 서로 놀랐을 것 같다. 작은 마을에 혼자 놀러 온 외국 여자 그리고 그 작은 마을에도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을 좋아하는 치킨 가게 사장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국을 좋아하는데 한 번도 놀러 가보질 못했다고 했다. 코로나 엔데믹이 되어 드디어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을 하려고 했었는데 딸이 아이를 가져서 가게 되지 못해서 아쉽다고 했다.
친절한 작별인사를 받으며 숙소로 돌아와 치킨을 먹었다. 조금 전 나누었던 대화가 따뜻하고 재밌어서 그랬는지, 맥주와 치킨을 혼자 먹어도 외롭지 않았다. 현지인과 뜻밖의 대화를 하는 건 여행의 즐거움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둘째 날 아침에는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la.famille'라는 빵집을 방문했다. 이 빵집은 초등학교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오후가 되면 빵이 다 떨어진다는 리뷰를 보고 아침 일찍 산책 겸 나갔다. 처음에는 가정집으로 보였는데, 모퉁이를 돌고 나서야 빵집인 것을 알아차렸다. 내부는 굉장히 작아 2평 남짓한 크기에 테이블 없이 빵만 진열되어 있었다.
빵집 주인에게 추천받아먹은 카레빵. 카레가루가 씹히는듯할 정도로 엄청 진한 카레 맛이 났다. 겉은 크로켓처럼 거칠 거리고 안은 부드러운 카레로 채워져 있었다. 밥이랑 먹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역시 한국인은 빵보다 밥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지방에 가면 농협마트가 있듯이, 일본도 지방에는 주차를 많이 할 수 있는 대형마트가 곳곳에 있다. 이곳은 'アルク 彦島店'라는 마트이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보여서 잠시 들렀다.
이것저것 구경하던 차 아마 사케(あまさけ)라는 술을 처음 보았고, 단(あま 달다) 술(さけ 술)이라고 생각해서 바로 집었다.
처음 보는 사케이기도하고, 달짝지근한 사케라는 생각이 들어 저녁에 마시려고 하고 구매했다. 냉장고에 차게 두고 저녁 먹을 때 꺼내서 얼음을 잔뜩 넣고 컵에 부어보니 사케가 아닌 식혜였었다. 검색해 보니 일본 식혜는 아마자케라고 하는 것 같았다.
맛은 알갱이가 없고 목 넘김이 매우 좋은 달달한 식혜맛이었다. 한국 식혜를 먹을 때 밥알갱이를 남기고 먹는 습관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알갱이가 없이 물만 있는 식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호박 식혜만큼 달달해서 일본에 가면 꼭 다시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 음료를 파는 곳이 한정적인 것인지, 편의점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고 다른 마트에 가서도 찾지는 못했다.
둘째 날 점심은 20분 정도 걸어 'ふく田' 후쿠다라는 가게를 방문했다. 점심에는 도시락 형식으로 만들어 주문대에 올려놓으면 현지 사람들이 많이 사가는 형식인 것 같았다.
내부에 들어가니 오픈시간이 막 지나서 인지, 손님 중에는 나 혼자 앉아있었다. 자리에 앉자 여자 사장님은 점심 메뉴는 정식으로 나오며, 1,100엔 세트와 1,600엔 세트가 있고 양이 다르다고 설명해 주었다. 하루종일 다양한 메뉴를 먹고 싶었기 때문에 양이 적은 1,100엔 세트와 생맥주 한잔을 주문했다.
옆에서 빵을 정리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말을 거셨는데, 이 가게의 주인인 줄 알고 대화를 이어갔지만, 대화가 끝난 후 보니 단지 빵만 배송하러 오신 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지역 사투리를 많이 섞어서 그런지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잘 듣지 못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말을 걸어주시는 분들은 공통적으로 내가 외지인이고 여자 혼자 온 것이 신기하고, 이 작은 마을에 외지인이 오는 건 드물고, 이곳에 묵을 숙소도 없는데 어떻게 왔는지, 왜 왔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해하시는 것 같았다.
일본 가정식 느낌의 1,100엔 정식. 새우튀김, 도미조림 등 전체적으로 음식은 간장 베이스에 매우 달고 매우 짭짤한 맛이었다. 된장국에는 고기와 당근이 들어있고 맛은 토마토 맛도 조금 났다. 창의적인 음식인가?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그중에 맛있었던 반찬은 도미조림이었는데 신기하게 한국식 돼지갈비 양념맛이 났다.
최근 단백질 섭취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본 정식은 대체로 단백질이 풍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식에 항상 빠지지 않는 계란찜과 생선이 눈에 보여서 그런 것 같다.
전체적으로 맛은 그냥 그랬지만 맥주와 함께 먹기에는 괜찮았던 것 같았다.
음식맛이 생각보다 그냥 그래서 마음속으로 점수를 마이너스를 주고 있는 찰나, 식사가 마칠 때쯤 무료 디저트가 나왔다. 크림뷔렐레라니, 그 순간 마이너스 기분이 사라지며 바로 플러스가 되었다. 역시 마이너스 감정에는 단음식이 최고인 것 같다. 산미 없고 시원한 아메리카노와 같이 먹으니 기분이 한순간에 좋아졌다.
둘째 날 저녁에 찾은 대만식 중국 음식점(峯味閣)이다. 3일 동안 있는 내내 시모노세키 마을에 있는 음식점들은 거의 가본 것 같다. 그만큼 이 지역에는 가게들이 많이 없다. 구글 리뷰가 좋아서 브레이크 타임 이후 저녁 시간에 방문했다.
중국음식이라서 그런지, 지방이라서 그런지 메뉴 가격이 대체로 너무 저렴했다. 요리 2개가 880엔이라니, 한국돈으로는 8천 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중국음식에 술이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해서 주문하려고 보니, 맥주는 역시나 비쌌다. 일본에서 생맥주가 비싼 이유가 뭘까? 마트에서 파는 위스키는 엄청 저렴한 일본인데 말이다. 맥주를 마실까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하이볼을 하나 주문했다.
하이볼을 주문하니 땅콩이 같이 나왔다. 기대했던 건 조금은 달달함이 있는 하이볼이었는데, 위스키만 잔뜩 들어간 하이볼이었다. 거의 위스키에 물만 조금 탄 것 같았다. 한국의 하이볼에 너무 익숙해져있었나 보다. 독한 술을 잘 못 마시는 나는 조금 후회하며 땅콩과 같이 홀짝홀짝 마셨다. 다음에는 츄하이나 진저 하이볼을 주문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음식은 구글 리뷰에서 많이 본 형식대로 주문했다. 북해도식 야키소바와 계란 볶음밥. 두 개 메뉴 합해서 880엔이다.
야키소바는 한국식의 울면(한국에서 울면을 먹어보진 않았다)이랑 비슷한 요리로 보였다. 재료들은 물렁물렁하지만 면은 야키소바의 딱딱하고 덜 익은 면이었다. 해산물 맛이 많이 나서 술이랑 꼭 같이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다. 리뷰에서는 현지인의 칭찬이 자자했는데 내 입맛에는 맛있는 않았다. 현지인 맛집이라고 해서 꼭 성공하지는 않는 것 같다.
계란볶음밥은 철판에 볶은 것처럼 약간 탔지만 고소하고 맛있었다. 다만, 이틀 동안 매운 음식을 먹지 못했더니 김치가 매우 먹고 싶었다. 30대가 되면서, 외국에 나가게 되면 한국음식을 종종 찾게 되었다. 20대 초반에 엄마와 함께한 해외여행에 한국 음식을 찾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매콤하고 시원한 한국 짬뽕이 그리워진 밤이었다.
셋째 날 방문한 스시집(和処 とらや). 숙소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이날은 다행히도 숙소 옆 카페가 문을 열어 간단하게 나폴리탄을 주문해서 먹고, 저녁에 맥주와 함께 초밥을 먹으려고 했다.
현지 스시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천천히 저녁을 보내고 싶었지만, 해가지는 오후 5시 30분이 넘어가면 깜깜한 시골 마을로 변해서 숙소로 가는 길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포장해서 숙소로 가져가게 되었다.
작은 마을의 작은 스시집. 저녁 시간이 되면 웅성웅성 시끌시끌하며 맥주와 스시를 먹는 사람들로 붐빌 것 같았다.
브레이크 타임이 끝난 저녁시간이라, 가성비 좋은 스시를 먹지는 못하고 조금 비싼 가격의 초밥을 스시를 왔다. 런치로 먹으면 정말 저렴한 가격에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포장된 스시 위에는 같이 마실 녹차 가루가 등봉 되어 있었다. 미쳐 보지 못하고 숙소에 있는 녹차를 미리 타버린 후에 알게 되었다.
두툼한 회와 함께 정갈하게 담겨있는 스시들. 저녁에 먹을 초밥을 못 먹고 냉장고에 넣어놓고 아침에 먹어서 그런지 맛은 크게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역시 스시도 맥주와 함께 먹어야 하나보다.
시모노세키에 다시 놀러 간다면 이제 내 동네처럼 손쉽게 찾아갈 수 있는 가게들이 생겼다. 에어비엔비에 숙박하면서 느낀 점이 있는데, 에어비엔비의 슬로건과 꼭 맞는다고 느껴졌다. 새롭고 낯선 여행지에서 현지인처럼 살아보았던 경험은 조금 외롭고 단조롭더라도, 일회성 관광이 아닌 그 지역을 여행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