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내성적이었던 학창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고 난 뒤에는 그렇지 않은 척 소심했다. 낯을 가린다고 밝히면 많은 이들이 의외라고 생각할 정도로 필요에 의한 사회성을 길렀다. 그러나 속으론 정말 편한 몇 사람을 제외하곤 사람을 상대하는 거의 모든 순간에 전쟁을 치렀다.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를 받거나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상처 받는다거나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였다거나 하는 일은 극히 적었다. 대신 타인의 기분을 지나치게 염려했다. 이 말을 하면 저 사람이 기분 나빠 하진 않을까, 왜곡해서 받아들이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완곡한 표현으로 방어했다.
배려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답답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나’의 마음엔 생채기가 남는 일이 종종 생기곤 했다. 내가 배려하는 만큼 상대가 배려하지 않으면 실망했고, 이만큼이나 조심했는데도 내 마음을 오해하면 서운했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스스로에겐 다정하지 못했으므로 보호받지 못한 마음이 날을 세우기도 했다. 이토록 무심한 주인을 만나 가끔 우울에 빠지곤 하는 마음에 미안했다.
사실은 소심한 사람이라는 고백을 길게도 했다. 나는 이런 스스로에 대해 지나온 시간에 비해선 턱없이 덜 자랐다고 느끼곤 했다. 그 정도 일들을 겪었으면 좀 더 대담해져야 맞는 것 아닌가, 그렇게나 사유할 기회가 많았는데 좀 더 어른스러워야 하는 것 아닌가. 나의 미성숙을 발견할 때마다 저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고 자책은 자연스러운 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보다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나는 인복을 타고난 것 같아.”
자주 하던 말이었다. 주로 스스로를 가엾다 여기던 날들이 길었으나 그런 내가 부유하다 느끼는 유일한 부분이 바로 주위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다 나열하기도 힘들지만 내가 괴로울 때마다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단 한순간도 혼자 버텨낸 적은 없었노라고 말해야 할 만큼. 그 감사의 기억은 아주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때 별 볼 일 없는 나의 재능을 믿어주시고 여기저기 글짓기 대회를 함께 다니며 작은 가슴에 꿈을 심어주셨던 영어 선생님은 아직도 당신 기도의 첫 번째에 내가 있노라고 말씀하신다. 고등학교 때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내 우울함을 세심히 살피셨던 담임선생님은 수학여행비를 몰래 챙겨주셨다. 대학교 때 두세 개의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는 사정을 아셨던 교수님은 오갈 곳이 없었던 내게 당신 가족들이 출국하신 1년간 지낼 수 있도록 거의 관리비만 받고 아파트 방 하나를 내어주셨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첫 발령지인 기관에서도 배울 점 많고 인간적인 상사를 만나 존중받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
어쩜 이리도 인복이 많았는지. 그 외에도 수많은 은인들이 있었지만 덕분에 살아왔음을 늘 생각하고 있음에도 살가운 제자, 후배, 친구가 되지 못했다. 이유는 늘 똑같았다.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하고 싶은데, 덕분에 이만큼이나 잘 지냈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간 받은 도움에 비해 지금의 내가 초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날 도와준 사람들에게 잘된 모습을 보여 뿌듯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때 보살펴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고 싶었다. 내 지금 모습이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시시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날 숨게 만들었다. 숨을 때마다, 숨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마음이 아무리 무겁다고 해도 당당하게 나설 용기는 나지 않았다.
당당하지 못한 모습이 죄송스러워서 나서지 못했다는 말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허울 좋은 변명이 되었다. 비로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 나는 미뤄둔 숙제를 하듯 고마운 분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그간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도 함께였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난다.
“사유하고 고민한다는 것, 그것만으로 너는 특별하단다.”
“주연아, 행복하니? 그걸로 됐다.”
돌아온 대답들에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는지 깨닫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 말들은 놀라운 힘으로 스스로 신경 쓰지 못했던 내 마음에 쌓였을 서운함을 서서히 녹여주었다. 그들이 내게 마음을 써주었던 것은 내가 아주 뛰어난 사람이어서도, 내게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내가 대단히 성공할 것을 기대하고 베푼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작 그들이 걱정했던 것은 내가 타인의 기대를 염려하느라 돌보지 못한 내 마음이었다. 그들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며 자책하는 내 모습 자체를 특별히 여겨 사랑했으며, 그저 내가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사유하고 고민했는가. 그렇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기로 했다. 그 뒤론 고민이 부족했던 것에 대해선 반성하고 자책할지언정 오랜 시간 사유한 뒤 내린 결정이라면 스스로를 보듬어주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고민했는가에 대해 집중하자 타인의 눈치를 보는 일이 줄었다. 내 사유의 깊이와 그것을 통해 내린 결정이나 행동에 조금 더 확신을 가져보기로 한 것이다.
지금 ‘내’가 행복한가. 타인의 기대나 기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하기 위한 선택을 늘려가기로 했다. 이것이 내게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혹시나 다른 사람이 불편해하진 않을까, 내게 실망하진 않을까, 하고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는 염려증을 앓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내 마음을 외면할 순 없다. 나를 살게 한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도 다름 아닌 나의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은 더욱 그렇다. 나를 살게 한 어른들에게 감사를 담은 글을 쓰고 싶었는데 나로 산다는 것에 대한 단상으로 이어졌다. 나를 살게 한 이들이 나로 살게 만든 것으로 마무리하면 되겠다. 나는 행복해져야 할 이유가 많다.